[특별기고] 한국에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역할과 과제(上)

2024년 총선을 앞둔 한국정치의 상황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함과 반민주적 행태(검찰정권으로서의 속성, 언론의 자유 후퇴 등), 거대야당의 무능함(윤석열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지도 못하고 문제해결능력도 부재)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흔히 제3지대로 불리는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주체들은 거대양당에서 이탈한 그룹들이다. 이준석, 이낙연, 금태섭, 양향자, 미래대연합 같은 주체들이 ‘제3지대’로 묶여서 불리워지는데, 이들은 대부분 거대양당에서 정치를 시작하고 정치적 수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거대양당에 환멸과 실망을 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에 오랫동안 ‘거대양당체제로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생태적 위기, 남-북관계와 위협받는 평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정치를 해온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존재감이 약한 상황이다. 총선을 앞두고 연합정치를 통해서 활로를 모색하자는 제안들도 이뤄졌지만, 진보적인 소수정당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길을 찾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거대양당에서 이탈한 ‘소위 제3지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해 왔던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결국 거대양당 구조로의 회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경험이기도 하다. 현재의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유지된다고 한들, ‘준연동형’은 불안정한 반쪽짜리 선거제도이므로, 결국 진보적 소수정당을 제외한 ‘제3지대’는 다시 거대양당구조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진정한 제3지대라고 할 수 있는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길을 잘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있다.

# 불평등과 생태위기, 위협받는 평화 등 의제 선도하고 ‘정책중심 정치’ 만드는 역할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거대양당이 담아내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정치에 반영될 수 있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보수 쪽에서는 이런 소수정당들이 장기간동안 의미있게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절박함의 차이일 수도 있다.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담아내고자 하는 목소리들은 기존의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는 목소리들이고, 기존의 정치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무상급식같은 의제들을 사회적 의제화하는데 성공했고, 일정한 성과들을 냈다. 이런 ‘의제를 선도하는 역할’은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여러 의제들을 정치영역에서 다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왜 이런 노력들이 현실화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국민들로부터 이런 노력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평가받지 못하는가? 라는 것은 단지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의제와 정책 중심의 정치를 가로막는 장벽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승자독식-거대양당 중심의 선거제도, 승자독식의 국가-지방 권력구조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승자독식과 거대양당에게 유리한 선거제도하에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원내에서 교섭단체가 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원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협상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다. 한국의 국회는 원내교섭단체들간의 협상에 의해 회의일정, 회의안건 등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거대양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거나, 거대양당이 소수정당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절실한 사안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에게 협상력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발의하는 법률은 대부분 제대로 논의조차 못 되고 폐기되기도 하고, 예산심의 등에서도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기 어려웠다. 

비례성이 낮은 선거제도로 인해 다당제 정치구조가 형성되지 않다 보니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연립정부 참여도 불가능해 왔다. 그리고 대통령의 실정은 제1야당의 반사이익으로 돌아가다보니, 진보정당은 대통령이 잘하든 못하든 정치적 기회를 잡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정치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거대양당의 동향을 중심으로 보도를 하다보니,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제기하는 의제와 정책들은 정치뉴스의 메인이 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의제를 선도하고 정책중심 정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상태가 고착화되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입 이후 20년이 되었는데도,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정치적 존재감이 커지지 않은 이유에는 이런 정치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 다당제-연합정치가 가능한 정치제도 창출

물론 진보의 입장에서만 다당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보수의 입장에서도 단일 거대보수정당이 보수의 정치적 목소리를 독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소수정당들 입장에서는 다당제 구조가 정착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훨씬 더 절박하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대변할 목소리들이 절박하고, 실현해야 할 과제들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다당제가 가능한 정치제도를 위해서 전력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원내에 들어간 소수의 의원들이 열심히 의정활동하는’ 방식으로는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자기 의제와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원내교섭단체 정도가 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려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10%의 정당득표를 하면 10%의 의석이 보장되어야,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자기 의제와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때부터 선거제도 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입도 1인 2표제(지역구 1표, 정당비례 1표)로 국회의원 투표방식이 바뀐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나 절실하게 선거제도 개혁 등 제도개혁 과제에 전력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말 진보적인 소수정당의 정치인들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정당의 이해관계,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얼마나 전력을 다해 왔는가? 라는 것에 대해 돌아보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정당만이 아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운동은 과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왔는가? 이것을 대중적인 요구로 내걸고 광범위한 행동을 조직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과거의 ‘병립형’ 제도로 퇴행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기자회견 정도 외에는 뚜렷한 대응 움직임이 없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의 경직된 정치제도가 진보적인 소수정당들간의 연합정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의 정당법은 이중당적 금지라는 독소조항을 두고 있다. 이 조항은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2년 12월 31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든 조항이다. 즉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든 정당법에서는 “누구든지 2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조항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조항이다.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당연합(연합정당)을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정치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억누르고, 국민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억압하는 조항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

이처럼 다당제 구조를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확보하는 것과 연합정치를 가로막는 악법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진보적인 소수정당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현실적으로 거대양당이 이런 제도개혁을 스스로 할 리는 없기에, 이런 제도 개혁을 위해 앞장서고 전력을 다하는 것이 진보적인 소수정당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 

# 윤석열 정권과 ‘이중의 역할’

한편 윤석열 정권이라는 정치적 상황에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권은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지향하는 가치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정책을 내놓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행태, 검찰출신들이 핵심요직들을 차지하고 수사·감사를 국정운영의 수단으로 삼는 듯한 행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정당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이다. 뿐만 아니라, 감세정책, 규제완화, 남-북간의 긴장 격화정책, 원전확대 정책 등도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가치나 정책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문재인 정권 시절부터 누적되어 온 문제들도 있고, 이는 제1야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 수도권 일극집중의 강화, 신공항·도로 등 토건사업의 확대 등은 문재인 정권 시절부터 누적되어 온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한편으로는 윤석열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퇴행을 비판하고 이를 막는 한편, 제1야당과는 차별화된 정책으로 한국사회가 방향전환을 해야 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중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제3지대를 창출해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정치적 발언력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에게 불리한 언론환경 등이 제약요인이다. 그러나 제약요인을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승수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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