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에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역할과 과제(下)

그렇다면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풀어나가야할 과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연합정치의 시도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여러 개 존재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퇴행을 비판하고 이를 막는 한편 제1야당과는 차별화된 정책으로 한국사회가 방향전환을 해야할 대안을 제시하는 이중의 역할을 의미있게 수행해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차이가 있는 여러 정당들이 통합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연합정치가 필요하다. 이 연합정치는 총선 시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 속에서, 더 나아가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수권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까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연합정치를 가로막는 악법조항을 폐지하기 위한 활동, 연합정치의 경험을 쌓는 것 등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연합정당 결성을 가로막는 이중당적 금지조항을 페지하기 위한 활동(입법요구, 헌법소송 등)이 필요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입에 발판이 됐던 1인 1표제 위헌 결정도 진보정당의 헌법소송 제기로 이뤄냈던 결실이었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연합정치를 가로막는 장벽을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합정치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2024년 총선에서부터 그런 연합정치의 경험이 축적되면 좋을 것이다. 또한 2026년 지방선거에서는 각 지역 차원에서 다양한 연합정치의 시도들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에도 지역구 후보단일화 정도를 해 왔던 경험들은 있지만, 그 이상의 연합정치를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지역차원의 연합정치는 지역정당(local party)과도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정당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정치결사체를 의미한다. 지역정당이 지방선거에서 전국정당들과 경쟁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지역 차원의 연합정치 주체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나 엔 코뮤(Barcelona en comu)’처럼, 진보적인 소수정당들과 시민사회가 지역정당과 같은 형태의 선거연합을 구성해서 집권에 성공한 사례를 한국의 현실에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지역에서부터 출발하는 수권세력화

민주노동당 국회 진입이후 20년이 흘러가는 동안,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몇 가지 관성에 빠진 점도 있다고 본다. 그 중에 하나는 수권세력으로서의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점이 있다.

정당이 사회운동단체와 다른 점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정치권 내에서 대변하고, 자신이 약속한 정책들을 관철시키는 것이 소명이라는 점이다. 일종의 권력참여가 필요한 것이다. 권력참여의 방식에는 단독집권도 있지만, 연립정부에의 참여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당이라면 당연히 권력참여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수권세력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정당은 비전과 정책을 토론하고 다듬고, 당원 및 지지자들과 소통하고 조직하고, 공직후보자와 당직자(정책전문가 포함)처럼 정당에 필수적인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수권세력화를 한다는 것은 정당이 내놓는 비전과 정책이 그 정당의 지향을 담아냄과 함께 현실가능성, 대중적인 설득력 등을 갖춰나간다는 것이고, 그 당에서 배출하는 공직후보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준비를 갖춰 나간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수권세력화를 한다는 것은 선거구도에서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충분히 인식하고 인정할만한 구도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포함한다. 현재의 선거제도에서는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거대양당을 제외한 제3의 대안이 되는 ‘3자구도’를 만들어 내야만 유권자들로부터 대안세력으로 인정받기 쉬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연합정치를 통해서 그런 구도(간명한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중앙당 차원에서 그런 구도를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지역차원에서라도 수권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선거구도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정치개혁 선도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준연동형이 유지될지 병립형으로 퇴행할 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 관계없이 정치제도 개혁논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정치제도 개혁이 사활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대중적인 활동을 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거대양당간에 소모적인 정쟁이 계속될수록 정치제도 개혁은 거대양당의 강성지지층을 제외한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꼭 진보적인 유권자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정치에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소수정당이 정치개혁을 해 낼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 아닌가?

다만, 지금은 선거제도 뿐만 아니라 큰 틀의 개혁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제 자체를 뜯어고치는 것을 포함해서 정치제도-헌법개정의 큰 그림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의 경우에는, 제주에 맞는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활동도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 몇가지 의제와 접근법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 민심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 : 지방선거에서부터 일당지배 또는 양당 나눠먹기를 깨자. 공천=당선인 선거로는 우리 삶에 필요한 정책을 논의할 수 없다. 국민들 다수는 다당제를 통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원한다. 비례성을 보장하면서도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권역별-개방명부 비례대표제같은 대안도 있다.

- 정당의 자유, 주권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당제도 : 지구당 부활, 지역정당 인정, 이중당적 금지 조항 철폐

- 제왕적 대통령이 없는 ‘분권형 대통령제’ :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고, 대통령 권력을 견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를 하면서 일관성이 없는 정책으로는 불평등과 생태위기, 전쟁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최소한 국무총리 국회 추천(또는 선출)제 도입, 감사원 독립기관화(또는 국회 이관), 대법원/헌법재판소 구성의 독립성 확보 등이 필요하다. 

- 국민 직접 참정제도 실현 : 국민발안, 국민소환제도 도입,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추첨제로 뽑힌 시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 검찰심사회(일본) 또는 기소배심(미국) 제도 도입, 배심재판 확대, 주민소환/주민투표/주민발안 제도의 실효성 강화

- 연방제와 풀뿌리 기초지방자치 강화, 불합리한 중앙집권 폐지 : 광역 시·도를 대표하는 대의구조(지역대표형 상원) 마련, 제주의 경우 헌법에 근거한 특별자치, 기초지방자치단체 부활, 낙하산 행정부지사 폐지(행정안전부 공무원이 행정부지사로 내려오는 것 폐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공사를 제주도민에게로 등등.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여러모로 참 어려운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추가하면, 지역에서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일상적인 당원 교육과 함께, 지역의 의제에 대해 조례/예산/계획으로 개입하는 정책적·정치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민조직이나 시민운동의 활동과 정당의 활동은 다를 필요가 있고, 정당은 정당에게 맞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이 주민운동이나 시민운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이 선거 때에만 비전과 정책으로 표를 달라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정당은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을 정책적·정치적 이슈로 풀어내고, 조례/예산/계획과 같은 정책수단들을 활용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정책적.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주민조직·시민사회와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지역 내부에서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연대해서 일상적인 정책·정치적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것이 선거 시기의 연합정치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2024년, 2025년에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이 조례제·개정, 예산감시와 예산개혁, 지자체 차원에서 수립·집행되는 여러 계획들에 대한 검증 등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승수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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