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윤여일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오영훈 도정, 법원 판결 존중 정책방향 수정해야”

고시 무효 판결의 이유

“피고가 2017. 7. 13. 제주특별자치도 고시 제2017-248호로 한 공공 하수도 설치(변경) 고시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이하 모두 판결문에서 인용함)

2024년 1월 30일,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수석부장판사 김정숙)는 월정리 주민 등 6명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공공하수도 설치(변경) 고시 무효 확인' 행정 소송에서 원고 측 주장을 인용해 '고시무효'를 선고했다. 무효. 참으로 지난한 두 음절이다. 그만큼 이 판결문을 공들여 읽을 필요가 있다.

이 판결의 배경을 거슬러 올라보자. 오랫동안 논란이 된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은 하수 처리량을 현재 하루 1만2000톤에서 2만4000톤 규모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동부하수처리장은 2007년 1일 처리량 6000톤 규모로 완공되었고, 2014년에 1일 처리량 1만2000톤 규모로 증설되었으나, 불과 3년만인 2017년 1일 처리량 2만4000톤으로 제2차 증설 계획이 수립되어 지금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동부하수처리장이 완공되어 가동이 시작된 2007년에는 월정리에 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용천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당시에는 무관해 보였던 이 두 가지 사안이 최근에야 연관성을 드러내며 결국 위의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2022년 10월 17일, 월정리 마을회, 비대회, 해녀회가 제주지방법원에 ‘공공하수도 설치(변경) 고시 무효확인 청구 소송’ 소장을 제출할 때 그 핵심 내용은 “도는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신청서에 부지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용천동굴이 아닌 600m 거리에 있는 당처물동굴만 기재했을 뿐 아니라 수질·악취·오수 등에 대한 언급 없이 단순히 건축물 등을 개축하는 행위로 허가를 신청하는 위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즉 하수처리장 증설을 위한 서류 작성 과정에서 동부하수처리장에서 보다 가까운 동굴(용천동굴)은 누락하고 먼 동굴(당처물 동굴)만 기재했으며, 하수처리장이 동굴에 미칠 수 있는 피해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 고시는 무효라는 것이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도 그 과정에서 회피되었다. 1년 여의 심리 끝에 법원은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판단의 시간은 길었지만, 판결문의 소결은 명료하다.

“따라서 이 사건 고시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누락한 하자가 존재하고, 이러한 하자는 중대·명백하므로, 이 사건 고시는 무효이다(이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고시의 위법함을 인정하는 이상, 원고들의 나머지 주장에 대하여는 더 나아가 살피지 않는다)”

원고 측이 주장한 것들

마땅히 거쳤어야 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한 중대한 하자가, 원고들의 다른 주장에 대한 검토는 필요치 않을 만큼 ‘무효’로 판결하기에 명확하고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고들의 주장은 무엇을 주장했을까. 판결문에는 다음처럼 항목들이 정리되어 있다.

가. 구 문화재보호법 및 구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등 허가 절차에 관한 규정 위반
나.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다. 비례의 원칙 위반
라.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
마. 세계유산협약 위반
바.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위반
사. 건축 절차의 불법성

이 중 ‘나’ 항이 법원 판결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그밖에 ‘가’, ‘마’, ‘바’, ‘사’ 항도 모두 절차상의 위법 사항과 관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라’ 항의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은 무엇일까.

“라.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와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는 1996년경 월정리 마을회 임원진들에게 2025년까지 이 사건 하수처리시설의 처리용량을 최대 12,000㎥/일로 운영할 것이고, 추가 증설은 없을 것이라고 확약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고시는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된다”

이 항목은 이제껏 월정리 주민의 반대운동이 오염 저감에 환경기초시설의 확장을 거부한다며 님비(NIMBYism)로 내몰리기도 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하수처리장은 쓰레기 처리장, 화장장,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등과 함께 님비 현상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지역기피시설이다. 이런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오염과 악취, 사회적 낙인과 지가하락 등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외부효과 때문에 이런 시설의 입지 선정 과정에서는 해당 지역의 공동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곤 한다. 그러나 월정리의 경우 이미 하수처리장이 건설되었으나 ‘라.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에 따른다면 약 30년 전 당시 도지사가 증설은 없으리라던 과거의 약속을 이후 제주도정이 저버리고 반복해서 증설하려는 데서 빚어진 문제라는 점에서 님비의 관점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님비라는 낙인에 갇혀 있던 월정리

행정 당국의 입장에서는 하수처리장이 지역기피시설이기에 입지를 찾아 새롭게 지으려 하면 해당 지역주민의 반발이 예상되고, 신설을 위한 시간과 재정의 비용이 크기에 기존 하수처리장 시설을 개선해 처리량을 증대시키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그런데 동부하수처리장의 하수 처리량 규모를 10년 사이(2007~2017)에 4배로 늘리려고 한 것은 이곳이 관할하는 인근 지역(구좌읍·조천읍 등)의 인구 증가 때문만이 아니다. 구좌읍·조천읍의 인구는 10년 동안 불과 6160명이 증가했을 뿐이다. 이보다는 제주도 관광객수가 2007년(가동 시작) 543만명→2014년(1차 증설 완료) 1525만명→2017년(2차 증설 계획 발표) 1639만명으로 크게 늘었으며, 삼양과 화북처럼 멀리 떨어진 도시 지역의 하수를 비상시 이곳으로 유입해서 처리하겠다는 방침 때문이다. 이는 제주도 차원에서는 공공성의 외양을 취하지만 월정리 주민에게는 타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부담을 전가하는 것으로 여겨질 여지가 크다.

그런데도 님비는 월정리 주민들이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던 낙인의 언어였다. 그 효과는 무엇이었던가. 첫째, 월정리 문제를 월정리에 국한시키고, 월정리 싸움을 ‘월정리 vs. 그 밖의 제주도’의 구도로 떠올리게 함으로써 월정리를 고립시켰다. 둘째, 제주도 차원에서 하수 처리가 시급한데 자신들의 앞바다만 지키겠다고 억지 부린다는 식의 ‘지역 이기주의 vs. 공공성’이라는 구도를 형성했다.

비례의 원칙

월정리는 님비라는 언어에 갇혀 왔다. 이것이 월정리 투쟁에서 큰 제약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원고 측이 주장한 ‘다’ 항의 ‘비례의 원칙’이 중요해 보인다.

“다. 비례의 원칙 위반
이 사건 고시에 따른 이 사건 하수처리시설의 증설은 제주의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 개발만을 앞세우는 것으로 그 목적의 정당성이 없고, 제주시 구좌읍 및 조천읍의 인구 변화나 이 사건 하수처리시설의 평균 유입량 등을 고려하면, 수단의 적정성 및 피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 사건 고시로 인한 환경권, 재산권 등의 침해가 이 사건 고시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크므로,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이 주장은 절차적 문제를 짚은 항목들(‘가’, ‘나’, ‘마’, ‘바’, ‘사’)이나 제주도정이 마을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항목(‘라’)과는 다른 의의를 갖는다. 그간 월정리를 속박해온 ‘월정리 vs. 그 밖의 제주도’라는 구도에 비춰본다면, 동부하수처리장 문제가 월정리만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환경권 등 보편적 가치와 결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 이기주의 vs. 공공성’ 구도에 비춰본다면, 행정기관이라고 공공성을 독점할 수는 없다는 항변으로 들린다.

다만 이번 사법부에서 ‘비례의 원칙’은 판단 사항이 아니었으며, 사실 이는 법리보다 가치의 영역이다. 앞으로 시민과 행정이 정치적으로 구성해야 할 과제이다. 이를 물음으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동부하수처리장 갈등은 월정리를 넘어서 제주도 차원에서 공공성 신장에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가.

ⓒ 황용운
ⓒ 황용운

민관갈등의 민민갈등으로의 이전 

그런데 오영훈 도지사는 이 물음을 받아안기보다 외면하려는 듯하다. 법원 판결 이틀 뒤 “판결에 대한 분석 후 항소 절차를 밟겠다”, “1심 패소로 공사를 중단하는 건 무리이다”, “공사가 위법해 아예 무효인지에 대해서는 법리적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일부 주민들의 공사 중지 요구와 관련해 마을의 공식입장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주민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라고 논평했다.

여기서 주민 간 갈등이란 아마도 ‘월정리 미래발전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마을회 임원들과 해녀회를 비롯한 반대 진영의 주민들 간 갈등을 의미할 것이다. 즉 이번 판결에 도지사가 불복하면 제주도정 대 월정리라는 민관갈등이 아니라 민민갈등이 고조되리라고 언론들은 내다본 것이다. 오영훈 도지사의 “일부 주민들의 공사 중지 요구와 관련해 마을의 공식입장이 아닌 것으로 안다”는 발언 또한 마을의 공식입장을 대변할 마을회는 이미 원고 측에서 빠졌으며, 이번 판결 시점에 원고는 6인의 해녀 등에 불과하다고 판결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사실 그간 제주도정도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에 나섰다.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월정리 마을 단위 특화개발사업’이라는 상생방안을 제시했지만, 공사 강행을 전제로 한 행정 행위는 오히려 마을 내에서 분열을 초래했다. 그 사이 이장은 마을총회를 소집해 월정리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직권으로 월정리 미래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제주도정과의 협의에 나섰다. 당시 총회에서 해녀들의 발언은 봉쇄되었으며, 협의체 구성 결정과 이후 협의의 진전 가운데서도 반대 입장을 고수한 해녀들은 마을 내에서 점차 고립되어갔다. 지난 2023년 6월 20일 제주도정과 월정리 마을회의 공동회견 이후 월정리 갈등은 봉합되었고, 심지어 월정리 문제는 갈등해소의 사례로도 선전되었지만 실은 민관갈등이 민민갈등으로 이전되었던 것이다.

민민갈등이기에 해녀, 즉 반대하지만 힘 없는 민(民)은 삶터인 마을에서 내몰리고 있었고, 그들의 신음소리는 마을 바깥으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법원 판결 이틀 뒤인 2월 1일, 그들은 제주도의회 기자회견장에 모여 만세를 외치며 모처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무효와 만세. 너무도 지난한 두 음절이다. 그런데 같은 날, 오영훈 도지사는 공사 강행 입장을 밝힌 것이다. 법(法)을 따르지 않는 관(官)의 태도로 민(民)과 민은 얼마나 더 다투고 괴로워 해야 하는가.

ⓒ 황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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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화의 가치

여기서 다시 그 물음으로 돌아오자. 동부하수처리장 갈등은 월정리를 넘어서 제주도 차원에서 공공성 신장에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가.

그 단서는 해녀회의 주장에 있다. 2023년 6월 15일, 월정리 해녀회와 오영훈 도지사 간의 간담회가 어렵사리 성사되었다. 이 자리에서 해녀들이 요구한 첫 번째 사항은 이것이다.

“제주시 동지역에 위치한 삼양처리분구를 월정처리구역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동부하수처리장은 조천읍과 구좌읍 관내 하수처리만 담당한다”

이 요구사항은 동부하수처리장이 관할하는 구좌읍과 조천읍 이외에 삼양 등 도시지역 하수는 맡지 않는다는 내용이며, 따라서 분산화의 방향을 시사한다. 소규모 하수처리장을 여러 곳에 만들어 하수를 되도록 해당 지역에서 처리하자는 것이다. 애초 동부하수처리장의 하수 처리량이 많이 늘어난 까닭은 광역하수시설을 통해 넓은 지역의 하수가 모여들었기 때문이고, 두 배 규모 증설 계획도 삼양과 화북 지역의 5만 인구가 배출하는 하수를 이곳에서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도시 지역의 환경 부담을 농어촌인 월정리에 지우는 계획에 반발이 일어나고 분산화의 요구가 터져나온 것이다.

소규모 분산화 정책은 과연 바람직한 대안일까. 장점으로는 이송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운영 비용과 함께 장거리 관로에서 하수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낮아진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하수처리장 신설을 위한 입지를 물색하기가 쉽지 않고, 신설에 따른 초기 비용도 큰 부담이다. 다만 여기서는 소규모 분산화가 하수 정책으로서 지니는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기보다 이 대안이 ‘오염자 부담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 원칙은 크게 두 가지 의의를 갖는다. ① 공정성: 오염자가 오염으로 인한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그 비용이 타 지역의 성원에게 전가되는 것을 방지한다. ② 오염 감소: 오염 물질을 발생시키는 지역에서 그것을 스스로 처리하게 함으로써 오염자의 환경 민감도를 제고해 오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유도한다.

공공성을 키우는 길, 인정과 수정

제주사회는 여러 환경 갈등을 겪어왔다. 그 고통 속에서 얻는 것도 있었다. 최근 일만 보더라도 송악산 유원지 건설 계획을 끝내 막아낸 활동은 ‘외자 유치를 통한 무분별한 개발을 이제는 멈추자’, 선흘2리 동물테마파크 건설 저지 노력은 ‘제주도 생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동료시민들에게 보냈다. 끈질긴 제2공항 반대 운동을 거치며 ‘환경수용력’이 제주도 환경담론의 주요 논점으로 부상했고, 비자림로 확장을 막아내려던 시민들의 노력은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월정리 문제가, 거기서 비롯된 월정리 갈등이, 그 갈등마저도 힘겹게 얻어내야 했던 월정리 투쟁이 제주사회에 건넨 새로운 화두는 ‘분산화’이다. 월정리 문제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더 이상의 떠넘김을 거부한다’, ‘자신이 저지른 오염은 자기 지역에서 책임지자’, ‘그로써 환경 민감도를 키우자’는 메시지를 제주사회로 보냈다. 이제 관건은 법원의 판결을, 월정리 문제의 메시지를 행정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오영훈 도정에 바란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월정리 문제를 제주도 차원의 공공성을 키우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이 바람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실은 특별한 것이다. 우리는 곳곳에서 관이 법을 외면하고 민을 무시하는 행태를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이 입안한 사업은 어떻게든 추진된다. 하지만 공공성은 공공기관이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과의 길항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갱신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기관의 결정은 옳으며, 따라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통념이자 관행을 고수하는 한 혁신 행정을 선전해봤자 퇴행적이며, 협치를 외쳐보았자 권위주의일 뿐이다.

한국의 행정가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오영훈 도정을 향한 바람은 특별한 것이다. 인정과 수정. 그로써 민주주의를 바라는 행정가의 진정한 치적을 만들길 바란다.


#윤여일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까지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 있는 동안 지역 문제와 공동자원에 대한 실천적 현장 연구에 힘을 쏟았다.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썼다. '지키는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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