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말 생크추어리의 민낯/기자수첩] ④말의 낙원은 어디?
“돈 버는 주체가 책임져야…그나마 관계 당국 개선 움직임 다행”

국내 유일의 말 생크추어리로 유명세를 탄 임의단체가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버림받거나 도축 위기에 놓여있는 퇴역 경주마를 곶자왈 보호구역에서 돌본다는 취지인데 실상은 이와 거리가 먼 자연환경 훼손, 각종 영리 행위 등의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제주의소리]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의 이면을 조명하며 ‘말(馬)의 고장’이라는 타이틀 속 가려진 제주의 미흡한 퇴역 경주마 보호 체계의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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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퇴역 경주마를 외면할 때 이들을 거둬 자연상태에 방목, 보호한다는 민간 단체가 나타났다. 마침 때는 퇴역 경주마에 대한 복지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시기였다.

경주마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말 산업 단체도, 말의 고장을 자처하면서도 말 복지에 대한 기반은 미흡했던 지자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우리나라 최초 말보호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됐고, 그간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개인이 해냈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 “아프고 말라가는 말들이 있어요” 제보로 시작된 취재

그런데 1~2년 뒤부터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조된 말들이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비쩍 말라가고 있다는 방문객들의 뒷말이 나오면서다.

[제주의소리]에 제보해 온 복수의 방문객들도 오랜 기간 말을 키워오며 말의 지상낙원과도 같은 곳이 있다는 방송 보도를 보고 한걸음에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대가 완전히 어긋났다고 했다. 말에게 있어 집과도 같은 마구간, 추위와 눈비를 피할 기본적인 공간조차 없었다고 푸념했다.

건초와 함께 살찌우게 하는 비교적 저렴한 비육용 소 사료를 먹이는 모습도 봤다고 했다. 사람 이상으로 말을 대하는 이들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구조된 말 위에 올라타 입산이 금지된 오름 한 바퀴를 돌았는데, 초지가 아닌 임야에서 말들이 풀을 몽땅 뜯어 먹어 길에는 가시덤불뿐이었다고 떠올렸다. 또 A 대표가 그곳에 죽은 말들을 묻은 사실을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제보자들은 경주마로 은퇴 또는 도축 위기에서 구조된 말들이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있을 거란 기대가 와장창 무너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비슷한 우려들을 표했다.

“말은 오래전부터 사람에 의해 길러져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해도 사람의 개입 없이는 살 수 없다.”
“드넓은 초지에서 방목돼 자유를 만끽한다 해도 최소한의 관리와 케어가 필요하다.”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내 뼈가 앙상한 말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독자
지난해 8월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내 뼈가 앙상한 말들(퇴역 경주마 ‘아다지오’로 추정되는 오른쪽 말)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독자
2022년 8월 온라인카페에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A 대표가 올린 게시글. 아다지오는 90여 일만에 건강을 되찾은 듯했으나 1년 후인 지난해 8월 사진(기사 첫번째 사진) 속 아다지오(추정)는 다시 건강이 악화된 모습이다.
2022년 8월 온라인카페에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A 대표가 올린 게시글. 아다지오는 90여 일만에 건강을 되찾은 듯했으나 1년 후인 지난해 8월 사진(기사 첫번째 사진) 속 아다지오(추정)는 다시 건강이 악화된 모습이다.

더 나아가 말의 고장 제주에서 퇴역 경주마를 비롯한 불법 도축 현장에서 구조된 말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월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센터 측은 봉사는 따로 받지 않고 있다며, 홀스테라피 언급하면서 후원금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5만원을 내고 직접 현장을 찾았다.

먼저 A 대표로부터 말 생크추어리를 구축하게 된 배경을 들었다. 그는 연간 1800마리의 경주마 중 1400마리가 사라진다고 했다. 대다수는 개와 고양이 간식으로 만들어지고 일부는 불법 도축된다고 했다.

A 대표는 성적 부진으로 뛰지 못하는 퇴역 경주마들을 육포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법 도축 현장에서 마주에게 값을 치르고 한 마리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렇게 구조된 말 39마리와 위탁 마 11마리 등 약 50마리를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에는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로 구조돼 보호하던 중 안타깝게 죽은 말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 대표는 43만평 일대를 빌려 사용하고 있는데, 더 넓은 공간에서 300마리 이상의 구조된 말을 보호하고 싶다는 계획을 들려줬다.

자연휴식년제 도너리오름 자연 훼손 기사 보도 이후 찾은 현장. 불을 피운 흔적인 화로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곤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다.
자연휴식년제 도너리오름 자연 훼손 기사 보도 이후 찾은 현장. 불을 피운 흔적인 화로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곤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다.

현장에 다녀온 후에도 제보자들이 제기한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곶자왈은 말을 보호하는 데 적합한 공간인가 △아픈 말들에 대한 치료가 제때 이뤄지고 있는가 △후원금은 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첫 번째, 자연 훼손에 대한 정황은 현장 확인과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SNS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후원금의 사용 내역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개인 후원자와 말을 위탁 보호하며 그에 대한 관리비를 보낸 동물보호단체들 역시 정확한 사용 내역을 알지 못 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말을 보호하는 데 적합한 곳인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축을 임의로 방목할 수 없는 보전산지이자 임야, 본인 소유가 아닌 땅에서 말들을 ‘무단’ 방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잘못된 일이다. 설령 좋은 취지였다 해도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관계자가 사료를 배급하는 모습. 사진 제공=독자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 관계자가 사료를 배급하는 모습. 사진 제공=독자

덧붙여 곶자왈말구조보호센터에는 말들이 비와 눈, 추위, 더위로부터 피할 수 있는 마방(마구간)이 없다. 말들에게 있어 마방은 집과도 같다.

반면, A 대표는 “사람을 독방에 감금시키는 것이 최악의 처벌 중 하나이듯 말도 혼자 지내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은 말에게 있어 삶을 위협받을 만큼의 최악의 처벌이 아닐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은 넓은 초지에 방목해야 하며 충분한 먹이와 물이 항상 준비돼야 한다. 말은 하루 평균 3시간에서 4시간의 수면을 갖고 그 외의 시간은 하루종일 풀이나 열매, 나무 껍질 등을 섭취하며 하루 최대 25km를 이동한다. 말을 감금하고 격리시킨다는 것은 자연에서의 다양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없애는 것이며 이동하고 싶은 욕구, 무리와 어울려 지내고 싶은 욕구, 자유를 갈망하는 타고난 본능 억제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정마다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방목하고 기르는 방식에 대해 잘못됐다고 따질 수 없다. 정확한 부분을 짚고 싶다면 전문가들을 초청해 영양상태를 보여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말 수의사, 말 영양학 전문가, 선진 농가로 뽑히는 목장 관계자, 동물보호단체, 환경단체 등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문제를 진단하고자 했다. 의견이 모아지는 부분도 있었으나, 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A 대표가 거듭 강조한 말이 있다.

인간의 시각으로 말을 볼 것이 아니라, 말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것. 그는 또 드넓은 세렝게티를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이 비를 맞거나, 먹이를 잘 먹지 못했을 때도 안타깝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기에 자신들이 구조한 말들을 곶자왈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있다고 했다.

취재를 거듭할수록 A 대표의 말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정말 인간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게 아닐까. 평생을 집안에서만 자란 반려견, 반려묘들의 자유를 위해 자연에 풀어놨을 때 반려동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평생을 마사에서 자란 말들을 자연에 풀어놓기만 했다고 과연 말들은 행복해할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말로 돈 버는 주체들이 책임져야…퇴역 경주마 복지 구축 움직임 고무적

제주도에 따르면 2022년 경주마(더러브렛) 1269마리 중 1121마리(88.3%)가 제주에서 생산 등록됐다.

또 같은해 1327마리의 경주마가 퇴역했다. 1327마리 중 461마리(34.7%)가 폐사했으며 429마리(32.3%)가 승용으로, 175마리(13.1%)가 번식용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241마리(18.1%)가 도축됐다.

경주마의 적정 수명은 약 20년이지만, 대개 2~4살이 되면 은퇴한다. 오로지 인간을 위해 죽을 힘으로 달리다 성적이 부진하면 또 다른 갈림길이 그들 앞에 놓인다.  운이 좋으면 승용마로 전환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도축되거나 사료화된다.

결국, 퇴역 경주마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말을 생산하고 경주산업, 넓게는 말산업을 이끌어온 제주도와 한국마사회, 말 산업계에 돌아간다.

다행히 올해부터 퇴역 경주마 복지를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제주도는 제6차 제주 말산업 육성 5개년(2024~2028년) 종합계획을 수립하며 “국내산 경주마의 생산, 공급의 전진기지로서 퇴역 경주마 휴양목장 조성사업을 추진해 복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5년간 총 30억1600만원을 투입해 퇴역 경주마 휴양목장 조성과 용도 다각화(승용) 등으로 말 복지를 개선하고 말 전염병 모니터링 강화로 방역관리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한국마사회 말복지정책협의회 구성에 따라 ‘학대 말 응급구호체계’ 등 말 복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도 ‘말 복지증진 추진 협의체’를 구성, 지난 2월23일 첫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퇴역 경주마 등 취약한 말 복지 실태조사 방안, 학대받은 말에 대한 보호체계 구축, 퇴역 경주마의 승용 전환 지원, 말산업 종사자 복지인식 제고 등이 논의됐다. 

농식품부는 협의체를 통해 정부 차원의 말 복지 증진대책을 상반기 내 수립하고 신규 예산 확보 등 정책 추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가 말산업 특구로 지정된 지 10년을 맞았다. 이제라도 관계당국이 말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이다. 말의 고장을 자부하는 제주도로서는 도민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체감 가능하도록 더욱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본의 아니게 곶자왈 말구조보호센터가 타깃이 됐다. ‘생크추어리’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관계 당국이 손 놓고 있던 영역에 민간에서 먼저 ‘퇴역마 보호’를 자처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했기 때문에 당시 매스컴이 주목했고, 방송 등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탔다. 취지가 공감됐기에 개인이나 동물 애호.보호단체에서 선뜻 후원금을 냈을 터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운영을 하면 될 일이다. 불법이 아닌 합법의 영역에서, 취지에 공감한 후원자들에게 후원금의 쓰임새를 알려주며 센터 운영을 투명하게 하면 된다.

퇴역마 구조를 명목으로 ‘관광 목장’,  ‘오름(곶자왈) 개발’을 꿈꾸고 있었다면 이는 후원자들에 대한 배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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