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새벽의 공기는 상쾌하다.지저귀는 참새소리도, 까치의 짧은 음폭도 휘파람새가 길게 뿜어대는 소리보다 더 후련하게만 느껴진다. 거짐 십리 길을 걸어 학교를 오가다 멱을 감던 그곳이 역시나 반가왔다. 마삭줄이 노송을 휘감고 가을인 양 빨갛게 물들인 이파리들이 흥미롭다. 낫을 들고 보리밭 첫머리에 앉으면 코피 줄줄 흐르던 기억이 새삼스럽다.보리 베다 게으름이
며칠 전, 쌀이 떨어졌다고 소롯길을 이용해 마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멀구슬나무에 꽃이 무더기로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아뿔싸~ 카메라를 들고 나오질 않았습니다. 어쩌면 좋죠?집에 쌀을 사다놓고 나가자고 해도 말다고 고개를 흔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걸으면 된다는 것이지요.그러지 않아도 잠이 모자라 죽겠는데 잠자지 말
지난 토요일, 수목원엘 다녀왔습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진리는, 이곳 식물의 세계에서도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었고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뿜어져나오는 향기에 몸둘 바를 몰라 코를 벌름거리며 그 출처를 찾았지만 끝내는 그냥 돌아서야 했습니다. 수목원으로 들어서는 길, 가로수란 직책으로 태어나 제몫을 다하고 있는 벚나무 아래 동
겨울의 끝에서 생각나는 꽃 복수초무시무시한 복수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 '복수초'하지만 그 느낌과는 달리 부유함과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 '복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 꽃을 정월 초하룻날 선물 받으면 건강 하게 일년을 보낼 수 있다고 하여 일본에서는 윗사람에게 드리는 정초 선물
산딸우리 아부지께선 그냥 '틀'이라 부르셨습니다.어릴 적, 벌초를 가실 때면 도시락으로 들고 가셨던 차롱보다는 작은 '동그랑착'이라 불리던 그 그릇에 듬뿍 따 담아 오시곤 했지요.유독 벌초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그 어린 시절을 더듬으며 몇 알 입에 넣고 오물거려 보았습니다.똥꼬리라 불리던 찔레순도, 국수나무 새순도 유채동도 어린
내 이름은 야고, 억새에 기생하는 1년생 식물입니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작용을 하지도 못합니다. 억새의 영양분을 뺏아먹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욕하지는 마세요.내가 아무리 억새의 영양분을 뺏아온다한들 저 예리한 무기를 지닌 나의 주인 억새는 꿈쩍도 안합니다. 나도 그리운 이가 있습니다.한 발자욱 밖으로 내밀어 외도하고도 싶은데,
세월의 한 끝 부여잡고 기다리는 이 있습니다.고향의 지킴이 되어 기다리고 있을 이목을 빼면 저 멀리 오시는 님 행여 먼저 뵐까,설레임 층층이 배꼽에 쌓아 봅니다. 이 길 따라 어서 오세요. 고향어귀에서 이제나 저제나 맞을 준비, 설레임마저 아름답습니다. 꿈을 꾸던 밤송이도 옛이야기 꺼내들고 뭉게구름 청아한 노래소리 들려주는 곳 그 향기 짙은 고향 땅에 내려
생강과의 다년초. 줄기의 높이 50~ 100cm. 줄기의 모양 역시 생강과 비슷함. 땅속줄기는 옆으로 뻗고 잎은 두 줄로 어긋맞게 나며 여름에 담황색의 꽃이 핌. 열대 아시아 원산으로 각지에서 채소로 재배되며, 화수(花穗)·어린잎·땅속줄기는 향미료로 쓰임. 줄기의 즙은 식중독 해독제로도 알려져 있다. 야생도 있지만 대부분 재배를 하
넝쿨이 아무리 뻗고 뻗어도 많이 피지 않습니다. 언제나 보면 서너송이씩만 피고 지고 또 피는 시계꽃. 상사화의 일종으로서 석산 혹은 꽃무릇으로 불립니다. 상사화에 대한 애절한 전설은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불리는 상사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차이점을 구태어 든다면, 상사화는 이파리가 지고 난 다음 8월에 피며 이 꽃무릇은 9월에 꽃이 피
야고에 미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전.지난 주 일요일에 이웃마을 저수지 둑 억새밭에 가 보리라 맘 먹었는데 태풍영향으로 너무 많은 비가 내려 감히 우산들고서 나설 염두가 나질 않았습니다.죽을려는 나를 보고 남편이 측은했는지 야고를 잔뜩 찍어다 주긴 했지만 실체를 봐야만 했습니다.급기야 다시 맞은 일요일 어제...마당의 꽃무릇과 시계꽃 괭이밥을 선두로
가을들판 차고더운공기 번갈아가며 고행을 거듭,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님을 맞기 위한 수행이었습니다. 1수행이 거듭될 수록 나는 더욱더 붉은빛에 가까와졌고 혹여 그냥 지나치실 님, 외면하지 마옵소서.2여기 함초롬히 앉아 내내 당신을 기다렸습니다.3지나간 계절 모진풍파 견디었는데, 뒤에선 다가 올 추위가 위협하고 있음에 행여 당신 못 만날까,4 그냥 지나치심
지난 9월 9일 토요일.퇴근하고 나서 친구와 도서관으로 가는 길입니다.점심을 굶은 친구에게 점심을 사 먹이고, 역시나 내 눈을 벗어날 수 없는 숨결이 있었습니다 도심의 한 복판에.꽃과 나비이 가을이 다하기 전에 못다한 사랑 실컷 나누렴아. 주차해 놓은 사이로 까치콩(편두)이 참말로 고운 모습이었습니다 개망초 역시도 똘망똘망 고운 눈빛이었구요꽃등에 가까이 날
나의 시댁은 쇠소깍을 끼고 앉은 서귀포시 하효동.결혼을 하고 난 후 쇠소깍을 알며 제사 때 혹은 명절 때 차레준비를 마치고 나면 산책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쇠소깍의 상류 효돈천, 그 크기가 제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펑펑 울지도 모른다. 막내녀석과 카메라 들고 쇠소깍의 상류 효돈천에서 어린아이마냥 이리 저리 바위를 통통 건너 뛰다 물수제비를 만들고 저 바
작년 한 해는,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날마다 한 두 송이의 시계꽃이 피어나 마당안을 들어 설 때면 나를 반겼습니다.그 반가운 얼굴을 대할 때면 나도 몰래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쩌면 이렇게 신비스럽게도 생겼냐며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이런 나의 설레임을 알고나 있는지 시계꽃은 더듬이 손으로 허공을 휘휘저어 먹이를 사냥하고는 담장에 찰싹 붙어 다시 기어오르
출근길 로터리 코너에 마련된 해바라기,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해 얼마 전 폰카로 찍긴 했었지만 내 너를 디카에 담아내지 못하면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결국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 디카를 지니고 출근하던 길, 빗방울의 난타에 기가 죽었는지 힘없이 고개숙인 접시꽃을 보았다. 카메라 들이밀고 셔터를 누를래다 잔뜩 풀이 죽은 그 모습, 왜 그리도 측은하던지 결국은
닭의 오줌냄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 계요등.이름 그대로 넝쿨을 살짝 비비면 향기가 아닌 닭똥냄새가 난다.하지만 어찌보면 참으로 신비스럽다 싶을 정도로 곱디 고운 꽃.집을 나서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을 보면 때는 바야흐로 계요등의 계절이 아닌가 싶어 지난 해 찍어 두었던자료를 뒤져 본다.옹기종기 모여 핀 앙증스런 모습은 길가는 이의 옷자락을 충분히 끌어
출근 길,버스를 놓치면 택시비로 6천원을 날려야 하는지라 부산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골목을 나와 다시 길을 틀어 버스정거장으로 통 통 통 튀며 가는 길,담쟁이 담장을 다 둘러싼 유독 눈에 띄는 집 귀퉁이에 하늘타리 한 송이가 조용히나의 발길에 덫을 놓는다.핸드폰 카메라 설정.하늘타리하늘타리/고봉선살풋하니 내린 뿌리 흙내음 끌어안고하늘 향한 푸른 싹 옹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