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과 함께 한 제주대병원 20년] ③ 옛 건물 물리적 한계 탈피...필연적이었던 병원 신축 과정

제주를 대표하는 거점 의료기관이자 도민의 의료 안전망 역할을 자임하며 지난 2001년 문을 연 국립 제주대학교병원이 지난 11월 1일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열악한 의료체계를 극복하고, 인술을 펼치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뒤따랐다. 제주대병원의 역사는 곧 제주 공공보건의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의소리]는 약 100여 년 전 제주 근대 의료를 태동시켰던 제주자혜의원으로부터 오늘날 제주대학교병원이 의료자치 실현에 도전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되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비전과 과제를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새출범한 제주대학교병원은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했다. 

지역사회에서의 국립대 병원이 지닌 의의를 생각한다면 그에 합당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 과정만큼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병원 구성원들과 지역사회의 끈끈한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시 삼도동 제주의료원 인수협정을 맺고 2001년 11월 제주대병원이 개원했다. 개원 당시에는 겸직교수 16명, 제주의료원 봉직의사 10명, 공중보건의 4명, 서울대 파견 전공의 13명과 기존에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직원 187명의 고용을 승계하는 등 총 230명의 인력이 갖춰졌다.

그러나, 뛰어난 인력풀과는 별개로 공간적인 한계는 병원의 확장성에 저해 요소가 됐다. 병상을 추가하거나 제대로 된 의료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했다. 

개원 초기 대학병원의 틀을 잡기 위해 건물 리모델링에 힘을 쏟았다. 2003년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부지에 원무 접수 로비를 만들고, 원장실과 회의실은 옥상부에 증축하며 기존에 원장실로 쓰이던 공간은 검진센터로 조성했다. 

제주시 삼도동 시절 제주대병원 전경.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제주시 삼도동 시절 제주대병원 전경.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제주시 삼도동 시절 제주대병원 평면도. 이미 부지 내 시설이 들어차 확장성을 갖추지 못했다.
제주시 삼도동 시절 제주대병원 평면도. 이미 부지 내 시설이 들어차 확장성을 갖추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적으로도 서울대에서 개발한 처방 전달 시스템(OCS)을 구축하고, 의학영상정보시스템(PACS)을 도입하는 등 진료시스템 개선에 매진했다. 개설 진료과는 13개로 나름의 진용을 갖췄다.

그럼에도 새로운 의료장비를 구입하고, 의료인력을 충원하는데 한계가 명확했다. 엄밀히 표현하면 병원의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삼도동 시절 제주대병원이 운영한 병상은 256병상에 수술실은 4개 뿐이었다. 통상적으로 국립대병원의 병상은 최소 400병상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했다. 건물을 확충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했다. 이미 부지 내 본관을 비롯해 1990년대 들어 2채의 별관이 증축됐고, 병원 후방에는 영안실 부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제주대병원의 신축 이전은 필연적인 과제였던 셈이다.

판단이 서자 병원은 곧바로 신축 이전사업에 착수했지만, 곳곳에 암초가 그득했다. 제주의료원을 인수하자마자 대뜸 신축계획을 내세웠으니 정부부처 어느 곳에서도 호의적일리 없었다. 4년 균등상환하던 제주의료원 매매 비용을 모두 치르기도 전이었다. 무엇보다 국가의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의 반대를 이겨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제주대병원 설립은 경제논리가 맞물렸다. 지역사회 염원과는 별개로 국가의 재정적 여건이 어려웠던 시기다. 제주대 의과대학 설립 과정에서도 '대학병원을 지어달라는 요구는 하지 말라'는 일종의 각서까지 작성해야 했다. IMF 외환위기라는 엄혹한 시절 속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병원 건립은 결코 쉽지 않은 사업이었다.

이에 더해 신축이전 사업이 계획되면서 실시한 보건산업진흥원의 용역 결과 제주대병원은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500병상 이상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의과대학 인정 평가에 500병상 이상이 돼야 한다는 규정, 제주특별법에서 제시한 필수적인 의료인프라 시설, 제주도민의 경우 치료를 위해 육지병원으로 오가야 하는 현실, 섬 지역에서의 응급 진료 취약점 등이 그 이유였다.

돌이켜보면 병상을 늘린 이 계획은 미래 의료수요에 대비할 수 있는 주효한 결정이었지만, 정부당국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결정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계획이었다.

2002년 12월 발족한 제주대병원 신축추진단.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2002년 12월 발족한 제주대병원 신축추진단 현판식. 사진 왼쪽부터 김태보 제주대 교무처장, 김상림 제주대병원 진료처장, 부만근 제주대 총장, 홍강의 제주대병원장, 오성보 제주대 기획처장, 오덕철 제주대학원장, 유춘기 제주대 사무국장(당시 기준).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지금의 제주대학교병원 신축 부지가 된 제주시 아라동 서암농원.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지금의 제주대학교병원 신축 부지가 된 제주시 아라동 서암농원. 사진=제주대학교병원 ⓒ제주의소리

당시 기재부에 근무하며 제주대병원 건립을 위해 후방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제주 출신 문성유 전 한국자산공사 사장은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서울을 오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제주대병원 설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타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기에 담당 부서에서도 상당한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문 전 사장은 "되돌아보면 제주지역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동해 노력한 성과를 얻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대학·병원 책임자들이 백방으로 뛰었던 장면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 초대 제주대병원장인 홍강의 전 원장, 강철호 전 사무국장, 당시 병원신축추진단장을 맡았던 김상림 전 원장 등은 물론, 제주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이던 부만근 전 총장까지 서울로 출장을 다니며 모든 채널을 가동해 병원 신축에 대한 설득 논리를 폈다.

언급조차 되지 못했던 제주대병원 신축 사업은 제주대가 대학발전기금으로 기탁받아 소유중이던 제주시 아라동 일대 서암농원 3만여평 토지를 병원 부지로 활용하는 안을 정부에 역으로 제시하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대학 구성원들의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지만 소신대로 사업을 밀고 나간 것은 부만근 전 총장의 공이 컸다. 

부 전 총장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애써 발언을 피하며 "제주에 꼭 필요했던 의료체계를 갖추게 됐으니 보람있게 생각한다"며 짧은 소회로 대신했다.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숨은 주역으로 꼽히는 강철호 전 제주대학교병원 사무국장과도 연락이 닿았지만, 당사자 스스로 "잊지않고 나에게까지 연락을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는 짧은 말만 남겼다. 병원 내부적으로는 강 전 국장에 대해 "병원 신축 당시 궂은일을 앞장서서 도맡았던 분"이라며 "그 분 생애에서도 보람이 컸던 시절이었을 것"이라고 회자된다.

김상림 전 원장은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좋은 시기가 맞물리기도 했다. 병원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했고, 대학이 부지를 내놓으니, 교육부에서도 저만한 성의를 보이니까 반응을 보였다. 제주특별법에도 의료기관에 대한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국회 예산까지 어렵게 통과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는 다수의 숨은 이름들도 오르내린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병원 신축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내며 큰 힘을 보탰다.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전윤철 전 원장은 현승탁 한라산소주 회장과 사돈 관계로 제주와 인연이 깊다. 

제주도의 행정적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기존의 농원 부지를 의료시설지구로 바뀌어야 병원 건축이 가능했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 피를 말리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권영철 행정부지사의 추진력으로 인해 병원 설계공모와 지목변경이 동시에 이뤄지게 됐고, 별 탈 없이 계획대로 진행이 가능했다. 

병원 부지 예정터에 밀집돼 있던 50여개 분묘의 묘주들도 적은 보상금액에도 불구하고 병원설립이라는 큰 뜻에 동참해줬다.

병원 신축과 최신 의료장비 구입에도 막대한 예산 확보가 우려됐지만, 때마침 정부에서 지역불균형 해소 차원으로 공공의료 개혁 정책을 발표, 국립대병원 육성정책을 시작하면서 난국을 돌파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암센터 설립이라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총 2000억원이 소요된 막대한 제주대병원 신축사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숨은 주역들의 노력이 보태지며 제주의료의 전환점을 만든 역사적 사건이 됐다.

열악했던 제주의료 환경에 일대 전환기를 맞게한 제주대병원 신축 과정에는 기사에 나열되지 않은 숨은 일꾼들이 더 많았음은 당연한 일이다. 

[인터뷰] 제주대학교병원 신축 산파 역할 맡았던 김상림 2·3대 원장

[제주의소리]는 제주대학교병원 초대 진료처장으로 병원신축추진단장을 맡았던 김상림 전 제주대병원장(제2,3대)과 최근 만나 병원 신축과정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김 전 원장은 병원 신축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들의 이름을 줄줄이 언급하며 "과정은 어려웠지만, 모든 이들이 정말 한 마음 한 뜻이 돼 열심히 했다. 그 분들 모두가 주역이었다. 결과적으로 타 지역 어느 대학병원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여러 구성원들의 노력에 공을 돌렸다.

김상림 전 제주대병원장. ⓒ제주의소리
김상림 전 제주대병원장.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까지 학업을 마친 김 전 원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8년께 제주로 돌아왔다. 의사였던 부친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제주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알게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주에서는 치료는 커녕 종합적인 진단조차 어려웠다. 3차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주에도 병원다운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 속에 있었고, 개원과 함께 제주대병원에 몸 담았다.

김 전 원장은 "그때만 해도 제주도의 인구가 지금처럼 70만을 넘어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처음에 400병상에서 500병상으로 늘리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어도, 추후 600병상까지 늘릴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했는데, 10년 후에나 올 줄알았던 일이 3년만에 벌어지더라"고 회고했다.

또한 "때맞춰 대학병원이 신축되지 않았더라면 제주의 의료는 더 낙후됐을 것"이라며 큰 숨을 내쉰 그는 지금도 의료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제주대병원 신축 당시를 콕 집었다.

만 70세의 나이로 오늘날까지 일선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김 전 원장은 "나름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데까지 힘을 낼 계획"이라고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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