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기본계획 고시 이후 권한 행사? 버스 지난 뒤 손 흔들텐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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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분석하자면, 오영훈 제주도정이 애창해온 ‘도민의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헌법상 권리인 자기결정권의 확장판이다.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되 그 범위를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넓힌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도의 미래를 도민 스스로 일궈가겠다는 주체적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최초의 특별자치도’인 제주도에 딱 맞는 구호가 아닐 수 없다. 뭔가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읊는 순간 모종의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설사 정치적 수사일지라도 그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래야 한다는 구호이지 않은가. 물론 실천적 노력이 뒷받침되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도백의 구호는 여느 정치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실로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제주말로 곧기 좋다고 내뱉고 마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중앙정치 곁눈질이 잦았던 전임 도백이 그런 경우였다. 튀고싶은 욕심이 지나쳤는지 식언이 많았다. 항상 ‘도민’을 앞세웠지만 말 뿐이었다. 때로는 교묘히 여론을 비틀기도 했다.  

오영훈 지사는 다를 줄 알았다. 후보 시절부터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앞세웠던 터라 현안 해결에 있어 적지않은 변화를 예상했다. 도민에 대한 무한신뢰에서 오는 일종의 결기도 은근히 기대했다. 혹은 민심을 지렛대로 삼는 전략적 리더십. 

그게 아니었다.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에 따른 도민 의견 제출과 관련해 한동안 뜸을 들이던 제주도가 마침내 절차를 개시했다. 2만건이 넘는 의견을 통째로 국토교통부에 넘겼다. 

시민사회 말마따나,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다는 식으로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은 셈이다. 제주도 차원의 입장 표명은 없었다. 유형을 분류한답시고 두 달 가량 전문연구기관까지 동원한 결과가 이렇다니 허탈감이 든다.  

도민 의견은 굳이 행간(行間)을 읽을 것도 없다.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과반을 차지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자기결정’ 수단이 있을까 싶지만, 여망에 그쳤다. 

며칠 전 오 지사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더니 결국 대(對) 국토부 요구 목록에서 빠졌다. 

제주도의 의견 제출이 없는 건 아니다. 5가지 사안에 대해선 향후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의 철저한 검증을 요청했다고 했다. 

5가지는 항공수요 예측, 조류충돌 위험성 등이다. 친절하게도 “도민사회의 요구가 높았다”는 설명을 달았다. 정작 가장 높은 요구 사항은 주민투표였다. 견강부회다. 

기본계획안과 관련해 제주도가 요구한 지역주민 이주 대책은 다소 생뚱맞다. 아직 사업의 향방도 판가름나지 않았다. 제2공항 건설을 기정사실화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도시화에 따른 기반시설 확충 요구도 마찬가지다.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니길 바란다. 

단순 의견 전달은 누군들 못하랴. 무릇 도백이라면, 특별도지사라면 민의에 기반한 정무적 판단까지 얹혀야 마땅하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징조가 있긴 했다. 

최근 오 지사가 ‘기본계획 고시 이후’를 기약한 점을 사실상 제2공항 찬성 신호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일단 기본계획이 고시되고 나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 지사는 전가의 보도처럼 환경영향평가를 벼르고(?) 있지만, 이는 환경영향에 대한 저감 방안을 다루는 절차일 뿐이라는 반론이 존재한다.  

권한 타령도 부쩍 잦아졌다. 그 사이 ‘도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본디 자기결정권의 요체는 주체성, 적극성인데도 말이다. 버스가 지난 뒤에 손을 흔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따지고 보면 주민투표가 원천봉쇄된 것도 아니다. 국토부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자치단체장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 하기야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장관에게 뭘 기대하겠냐마는 시도 여부는 다른 문제다.  

오 지사는 국토부가 주민투표를 거부하면 다음 카드가 없다고 했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국토부에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왜 갑자기 전략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도민을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그만이다. 

민심은 엊그제 또 한번 확인됐다. <제주의소리>와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제주 제2공항 찬성 41.1%-반대 53.2%...도민 ‘자기 결정권’ 행사 요구 압도적) 여실히 드러났다. 제2공항 건설 반대 의견이 훨씬 우세했다. 찬반 격차(12.1%P)가 오차범위(±3.1%p)를 한참 벗어났다. 

주민투표 실시에는 압도적 다수인 76.6%가 찬성했다. 국토부가 주민투표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자체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응답이 50.3%에 달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더 이상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외면이요 묵인이다. 곧 도민 결정권의 포기이다. 주민투표가 아니라면 다른 방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자칫하다간 도민의 시간은 영영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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