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정답은 없으나 정답을 찾는 방법은 있다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올 초, '제주의소리'로부터 칼럼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고민은 길고 깊었다. 시간과 노력에 대한 부담은 물론, 내가 그럴 깜냥이 될지,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칼럼을 쓰기를 권했고, 또 많은 이들이 칼럼 쓰는 것을 염려했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경제, 청년, 창업, 도시 등 다양한 영역을 제시해 주었다. 다만, 제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원하는 것은 공통됐다. 그러나 내가 제주의 내일을 구체적인 모습을 어찌 알겠는가? 일찌기 공자는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앎이다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르는 것에 대해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Daum과 넥슨그룹의 회사를 제주로 옮길 때, 3년 후 회사의 인원과 제주 근무 인원을 CEO에게 물었다. 사옥의 규모와 비용 등을 계획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른다' 였다. 모른다라는 걸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유연하고 단계적인 대응 전략이 도출될 수 있었다.

흔히 현대사회를 VUCA의 시대라고 한다.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 (Ambiguity)을 의미하는 것으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의미하는 새로운 말이다. 미래사회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에너지 전환, 인공지능, 메타버스, 우주와 해양에 대한 도전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시적 흐름이다. 어떤 기술, 어떤 아이템, 어떤 기업이 성공할 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아름드리 나무에서 열매를 얻는 방법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아이디어 뱅크'라고 평가해줄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렇게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미래 지향적인 아이디어를 요청하곤 한다. 청년들은 진로를, 기업가는 사업 아이템을, 행정은 정책을 요청한다. 가급적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지만 난감한 경우들이 생긴다. 아이디어가 생산되고 실행되는 기본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다양한 요소들을 맥락과 상황에 맞추어 연결할 때 생겨난다. 주체의 역량과 강점, 대상이 겪는 문제, 원하는 가치, 사회가 처한 문제 등 다양한 요소를 입체적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실행 주체가 아이디어가 생성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실망스런 결과로 이어진다. 

꽃피고 열매 맺는 아름드리 나무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을 돌며 어느 나무에서는 뿌리를, 또 어느 나무에서는 줄기를, 또 가지를, 이파리를 가져와 모아 붙였다. 그런다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안다. 나무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과 양분을 줄 때 성장한다. 구체적 현상과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이면의 원리이고 과정이다. 그걸 이해해야 기후와 토양에 맞는 품종을 선택해 그에 맞게 키워내야 비로소 아름드리 나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마찬가지이다. 

픽셀즈
사진=픽셀즈

정답은 없으나 정답을 찾는 방법은 있다

집단이나 지역 사회가 새로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조금 더 입체적이다. 개미들의 군집 활동은 정답이 없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먹이가 떨어진 개미 군집은 새로운 먹이를 찾아내야 생존할 수 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먹이를 찾아내야 효율적으로 군집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 어떤 개미도 먹이의 위치와 경로를 알 수는 없지만, 개미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먹이를 찾아내는 집단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먹이가 떨어진 개미들은 먼저 개미집을 떠나 무작정 각자 먹이를 찾아 다닌다. 그리고 먹이를 찾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먹이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페로몬이라는 냄새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초반에는 다양한 위치의 먹이와 다양한 경로의 길들이 등장할 것이다. 페로몬은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옅어지는 휘발성이라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휘발성 때문에 가까운 거리의 페로몬 냄새는 먼 거리의 냄새보다 상대적으로 짙다. 짧은 거리로 인해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왕복하며, 페로몬을 더 많이 분비한다. 다른 개미들은 이 페로몬 냄새를 따라, 그 길로 이동하며 페르몬를 보탠다. 결국 가까운 거리의 페로몬 냄새는 점점 짙어지고, 모든 개미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먹이를 공유하게 된다.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 ⓒ제주의소리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 ⓒ제주의소리

'개미 군집 최적화(Ant Colony Optimization)'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개미 한 마리는 매우 단순한 행동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개미 군집은 몇가지 행동 원리와 소통만으로 영리한 의사결정과 고도화된 행동을 수행하게 된다. 개미들은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집을 짓고, 장애물을 피하고, 다른 군집이나 생명체와 경쟁한다.

인간은 75조 개 이상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세포들은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한 신체 장기로 분화하고, 분화된 조직들이 인간을 구성한다. 개개의 세포나 조직이 가진 능력은 미미하다. 신체와 떨어지는 순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고도의 지능을 갖게 된다. 이렇게 미미한 부문과 부문들이 적극적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전체 활동을 만들어 내는 존재를 유기체 (organism)라고 한다. 1910년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는 '개미: 그들의 구조, 발달, 행동(Ants:Their Structure, Development, and Behavior)’이라는 책을 통해, 개미 군집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한다는 걸 밝혀냈다. 그는 개미 군집을 초유기체(superorganism)라고 명명했다. 인간은 개체로서도 개미보다 뛰어난 유기체이지만, 인류는 군집으로서도 더욱 뛰어난 초유기체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개체들 간의 의사소통에 기반한 협력을 잘하는 초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상 이면에 있는 간결한 원리를 찾아야 한다

자연 환경은 항상 변화한다. 자연 환경 변화에 맞는 적응을 통해 생명은 생존해 나간다. 인류는 더 나아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새로움을 창조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이런 적응과 대응을 잘하기 위해, 생명은 유기체가 되었고, 개체들은 초유기체로 진화했다.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우리는 초유기체 원리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가까운 거리의 먹이를 찾는 일은 고도화된 정보 수집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을 요구한다. 먹이의 위치를 찾아내고, 모든 지형을 분석하고, 먹이와의 거리들을 계산하고 비교해야 한다. 그 결과를 다른 개체와 소통하고, 설득하여, 최적의 길로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개미들은 휘발성과 냄새라는 특성을 가진 페로몬을 공유하는 간결한 행동 원리로 이를 수행해낸 것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상 이면에는 이렇듯 간결한 원리가 숨어있다.

VUCA라는 개념은 미국의 육군 대학원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전쟁에서 변수가 많아짐에 따라 지휘부의 치밀한 계획, 기계적 분업, 완벽한 실행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VUCA의 시대에는 상황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며, 시행착오를 빠르게 개선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 이면에 있는 간결한 원리를 찾아내고 공유한다면, 모두 함께 다른 전략, 다른 실행을 통해, 더 좋은 내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없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다른 미래를 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오늘의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오늘 우리가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실행을 할 수 있어야,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개미들이 혁신을 만들어 내는 시발점은 페로몬이라는 호르몬의 분비이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마시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디어는 신체의 확장이며, 이를 통해 인류는 긴밀하게 연결된다. 마샬 맥루한은 인류는 미디어의 확장으로 전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촘촘하게 연결될 것이라며, '지구촌(global village)'개념을 제시했다. 전환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메시지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숙한 글쓰기이지만 칼럼을 시작한 이유이다. 

김종현의‘다른 내일'은 제주의 미래를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려는 칼럼이 아니다. 몇 달 간 전환의 방법과 과정에 대한 원리들을 찾아가는 글을 쓸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표면적인 현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원리를 이해해야 각자의 상황과 제주의 현실에 맞는, 혁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구체적인 제주 현안에 그 원리들을 적용해서 해석해 보는 글들을 쓸 예정이다.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독자들과 다양한 생각을 주고 받으며 발전시키고 싶다. 어느 누구도 제주의 내일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모색하고 소통한다면,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제주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을 가진 '우리'는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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