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4) 통합적인 돌봄은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지난 세 차례에 걸친 서론에서 복잡적응계의 현상과 원리들을 이야기하였다. 복잡적응계는 자율적인 주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앞으로 본론에서는 복잡적응계를 활성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변화와 혁신이 시작되려면, 우선 위험을 감수하는 다양한 혁신 주체들이 있어야 한다.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의 시작은 먹이를 찾아 떠나는 개미들이다. 복잡적응계를 활성화하려면, "혁신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길러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제주더큰내일센터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통해, 혁신적인 태도와 역량을 길러내려고 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란 특정한 주제에 맞추어, 4~5명으로 구성된 팀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습 방법이다.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문제 해결과 관련된 디자인 씽킹 등 방법론에 대한 교육도 진행했다. 

대부분은 프로젝트 내용에 집중하여 활발히 소통하고 의견을 나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들이 발생하는 팀들이 있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본인 의견은 내놓지도 못하면서 다른 이의 의견이나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의사 표현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상대의 평가가 두려워 의견을 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에 앞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율적이고 협력적이며 창조적이다

매슬로우는 인간이 창조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연구했던 미국의 심리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자율적이며, 협력적이고, 창조적이라고 믿었다. 이런 본성을 잘 실현한 사람을 '자아실현자'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자아실현자로 잘 성장하지만, 어떤 사람은 본성과 달리 수동적이고, 공격적이며, 관행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욕구단계설을 통해 설명하였다.

매슬로우는 낮은 욕구와 높은 욕구를 구분하고, 욕구단계설을 삼각형 피라미드 모양의 표로 만들었다. 낮은 단계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높은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자율성, 협력성, 창조성이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가 결핍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거나, 불안을 호소한다. 때로는 성장과 성숙이 아닌 퇴행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낮은 단계 욕구가 충족되어야 높은 단계 욕구를 추구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

욕구단계설의 첫 번째 욕구는 생존의 욕구이다. 의식주 등 생명을 유지하는 욕구들이다. 두 번째 욕구는 안전의 욕구이다. 위험이나 공포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세 번째 욕구는 공동체의 욕구이다. 사랑과 우정 등 친밀한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욕구이다. 네 번째 욕구는 인정의 욕구이다. 자존감을 형성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이다. 

다섯 번째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인지적 욕구, 아름다움과 질서를 추구하는 심미적 욕구,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자아실현 욕구, 자기를 너머 타인을 돕고자 하는 자기초월의 욕구로 세분화된다. 높은 단계욕구에서는 공동체성, 자기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통합된다.

매슬로우는 사람들의 불만들 속에 그 사람의 결핍된 욕구나 추구하는 욕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통합적인 돌봄은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

단계별 욕구에 잘 대응하는 시스템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면, 창조적인 사람을 육성하고, 창조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선, 생존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탄탄한 복지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가정, 친밀한 공동체를 통한 정서적 돌봄이 필요하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도 형성되어야 한다. 인정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지체계를 만들고 자기 효능감을 심어 주어야 한다. 물질적인 복지 개념에서 벗어나 정서적 돌봄, 지지체계, 자기 효능감까지 고려한 통합적인 돌봄 시스템이 중요하다. 통합적인 돌봄은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이다.

낮은 단계의 욕구를 충족한다고 높은 단계 욕구로 바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높은 단계 욕구를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인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지식 생태계와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 생태계가 필요하다. 나아가 창조적 혁신을 지원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지원하는 시스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입체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현할 때,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발전을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스템 뿐만 아니라 높은 욕구에 대응하는 시스템의 발전이 중요하다. 

욕구 단계에 대응하는 사회적 시스템.
욕구 단계에 대응하는 사회적 시스템.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할 때에도, 통합적 돌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었다. 초반에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고 친밀한 참여자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센터/멘토/기업들이 든든한 지지체계를 만들었다. 다양한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통합적 돌봄이 단단한 기반을 형성할수록, 자기 주도적인 학습 효과가 증대된다. 나아가 자기만의 진로를 설정하고, 소명을 실천하는 혁신적인 인재로 성장해 나갔다. 자율적이고, 협력적이며, 창조적인 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행복한 나라에 대한 조사를 보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높은 세율에 기반하여,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득 재분배와 복지라는 경제적 관점과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북유럽 복지국가의 성공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성공은 개인의 자유, 평등, 공동체 의식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기반 때문이다. 스웨덴 사민당 당수인 페르 알 빈 한손은 1928년 연설에서 ‘국가는 국민의 가정이다. 가정의 기초는 공동체성과 공감이다. 좋은 가정에서는 평등, 배려, 협력, 도움주기가 지배한다.”라고 말했다. ‘가정’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적 부양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돌봄과 공동체성을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생각한다. 스웨덴에는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이들의 양육과 돌봄을 공동체가 함께 책임진다는 의미이다. 

북유럽은 경제적 복지 제도 위에 친밀함과 공동체성에 기반한 돌봄과 교육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누구나 자율적이고, 협력적이며, 창조적 주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 결과 안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결핍이 아닌 충족, 경제적인 지원을 너머 통합적인 돌봄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의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하지만 경제적 결핍이 혁신을 촉진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결핍은 단순한 문제에 한해, 단기적인 효과를 얻을 뿐이다. 복잡한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창의성을 촉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때,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하고, 창의적인 혁신을 만든다. 

반대로 경제적인 지원이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이런 생각은 지원의 양적 규모만을 중시한다. 물론 경제적 지원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경제적 지원만으로 혁신이 촉진되지는 않는다. 자칫 경제적 지원만 집중할 경우, 낮은 단계 욕구에만 반응하는 퇴행이 발생하기도 한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상위 욕구인 공동체 욕구와 인정 욕구에 대응하는 통합적인 돌봄을 지원해야 한다. 

복잡적응계가 잘 작동하려면, 혁신적인 주체들의 숫자와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일의 시작은 자율성, 협력성, 창조성을 가진 사람들을 육성하는 것이란 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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