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3) 떠오르는 새로운 질서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형태를 만드는 2가지 방법 : 조각과 소조

과거 제주더큰내일센터장 시절,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청년 참여자들과의 진로 상담에 할애했다. 청년들의 불안도는 몹시 높고 그 원인도 다양했다. 미래에 유망한 직종과 직군은 무엇일지, 자신이 잘 해낼 수는 있을지, 적성과 맞을지 등등 고민은 끝이 없었다.

그럴 때 나는 ‘조각’과 ‘소조’의 차이를 이야기하곤 했다. ‘조각’은 나무나 돌 같은 소재를 다듬고 깎아 형태를 만든다면, ‘소조’는 찰흙 같은 부드러운 소재를 붙이고 쌓아 만든다. ‘조각’은 제작과정에 실수가 생기면 만회하기 어려워 치밀한 계획과 오차 없는 실행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소조'는 언제든지 반죽을 붙이고 덜어내고 다듬으며 수정할 수 있다. 대략적인 구상으로도 시작할 수 있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형태를 만들어 낸다. 진로를 ‘조각’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그 부담감에 무엇도 시도하기가 어려워진다. ‘소조’라고 생각한다면 실행을 통해, 차근 차근 진로를 찾아가게 된다.

조각과 소조. 출처=픽셀즈

‘조각’은 먼저 정답을 찾아내고, 이후에 행동하는 복합계 방식에 가깝다. ‘소조’는 실행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복잡적응계 방식에 가깝다. 빠른 시대 변화로 미래의 직업을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청년들의 진로는 점점 더 불확실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의 방식으로 진로를 설정할 수는 없다. 내가 청년들의 진로 찾기와 진로 실현 과정을 복잡적응계 원리에 따라 설계한 이유이다. 청년들은 진로의 대략적 방향을 정하고, 실행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진로를 구체화해 나간다. 동료, 멘토, 기업들과의 상호작용과 협력도 중요한 요소이다. 

무질서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질서 

복잡적응계 방식을 이해하면, 개인의 성장 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 과정도 효과적으로 설계해낼 수 있다.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은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원리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은 김종현의 다른 내일 1편을 먼저 읽어 주기를 바란다.)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 ⓒ제주의소리
개미 군집 최적화 현상 ⓒ제주의소리

우선 다양하고 자율적인 주체들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혁신지향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자율적 주체들의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다. 미션과 비전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 목표는 집단과 개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구조여야 한다. 개미가 페로몬으로 경험을 기록하고 축적하듯이, 인류는 언어를 통해 지식을 축적한다. 축적된 지식이란 기반 위에서 조금 더 나은 혁신을 모색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토론하고 학습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자율적 주체들은 혼자서만 행동하지도 않는다. 소통을 통해 성과를 공유하고, 다른 주체의 성과를 인정하고, 그 성과에 동참하며 협력한다. 이런 일련의 상호작용을 통해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미약한 상호작용과 시도였으나, 과정을 거치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무질서에서 자율적 주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떠오른다’라는 의미로 ‘이머전스 (emergence)’ 라고 한다. 한자어로 창발(創發), 우리말로 떠오름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떠오른다’라는 뜻을 가진 ‘emerge’라는 단어에서 연유했다.

단편적인 개념을 넘어 종합적인 과정을 이해해야
 
복잡적응계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이해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복잡적응계와 연관된 원리와 용어들을 많이 사용한다. 복잡적응계는 자율, 소통, 개방, 공유, 분권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한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등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도 복잡적응계와 연관이 있는 개념이다. 상호 헙력으로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시너지’, ‘상생’, ‘상호의존성’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연결’을 중시하는 ‘네트워크’도 복잡적응계의 핵심 개념이다. ‘선순환 구조’, ‘악순환 구조’는 창발을 만들어내는 대표적 원리이다. 개미나 점균류의 활동을 설명하던 ‘군집지능’ 개념에서 발전한 ‘집단지성’은 가장 대표적이고 흔히 쓰는 복잡적응계의 개념이다. 

복잡적응계라는 개념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전체의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율, 소통, 분권, 사회적 자본, 상생, 연결, 네트워크, 선순환, 집단지성 등 개별적인 개념들만으로는 전체의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단편적인 이해나 개념은 자칫 왜곡된 결과를 낳는다. 다수결이 민주주의가 아니듯이, 집단이 내린 의사결정이나 기계적인 의견수렴을 집단지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집단지성이란 다양한 최적화 방안들을 함께 만들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실행하는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다. 다양한 소통을 통해 각 방안들의 강점은 구체화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부분적인 최적화를 만든다. 민주적인 과정으로 최적의 방안이 결정되면, 효과적인 실행으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의 이익은 늘리고 위험은 최소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 15분 도시, 산업생태계, 리빙랩도 복잡적응계 개념과 연관

복잡적응계는 첨단 산업에 많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 개념 중 하나인 ‘딥러닝’이다. 컴퓨터가 수많은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각각의 패턴들을 연결해 최적화된 결론을 찾아가는 알고리즘이다. 

15분 도시를 창안한 프랑스 학자 카를로스 모레노는 전통적인 도시계획자나 건축가가 아니다. 그는 수학과 공학에 기반하여 복잡계를 연구한 학자다. 복잡계 시스템을 도시에 적용하여, 만들어 낸 정책이 ‘15분 도시’이다. ‘15분 도시’는 전통적인 도시계획 방법론과 전혀 다른 방법론이다. 복잡계 과학자답게 ‘생태성, 근접성, 연대성, 참여성’이라는 원리에 기반하여, 시민들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15분 도시의 개념도. 출처=Parisencommun, 「Le Paris du quart d’heure」, Dossier de presse, 2020. 주.이엔건축사사무소
15분 도시의 개념도. 출처=Parisencommun, 「Le Paris du quart d’heure」, Dossier de presse, 2020. 주.이엔건축사사무소

과거에는 개별 기업의 성장에만 관심을 두거나, 계획에 따른 산업 육성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산업 생태계, 창업 생태계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생태계는 다양한 유기체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산업 생태계란 다양한 산업 주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기업을 육성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복잡적응계를 이해해야 한다.

유럽의 사회혁신가들은 2010년 유럽사회혁신 대회를 통해, ‘사회혁신의 나선형 모형’이라는 방법론을 만들었다. 작은 단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들을 실행하고, 그 성과를 확산함으로써 거대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방법론이다. 복잡적응계를 사회혁신에 적용한 것이다. 시민과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여, 일상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리빙랩’이란 개념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제 마을의 자치도, 행정의 정책도 복잡적응계 원리를 통해 수립하고 실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혁신의 나선형 모형. 출처=The Open Book of Social Innovation, Nesta 2010 CC BY-NC-SA
사회혁신의 나선형 모형. 출처=The Open Book of Social Innovation, Nesta 2010 CC BY-NC-SA

대전환의 시대와 복잡적응계

민주주의 발전으로 시민들의 자율성과 권한이 증대되었다. 대규모의 도시화와 전 세계를 연결한 정보화로 인류는 어느 때 보다 촘촘하게 연결되었다. 자율적인 주체들이 전대미문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들을 만들고 있다. 설상가상 기후 변화라는 외부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른바 대전환의 시대이다. 이 시대를 온전히 해석하거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민들이 협력해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다른 내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로써 ‘다른 내일’ 시리즈의 3회에 걸친 서론 부분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점점 복잡하고 불확실해지는 세계를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 많은 영역에서 복잡적응계 원리와 개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단편적인 개념을 넘어 전체적인 맥락과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소 낯설고 지루할 수 있는 ‘복잡적응계’ 개념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던 이유이다. 글쓰기 초보의 난해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는 몇 차례에 걸쳐 사회 발전과 번영을 만들어 가는 원리들을 하나씩 이야기할 예정이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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