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생태법인 도입 제주특별법 개정 결 다른 2개 대안...정치권 설득 관건

민선8기 제주도정의 주요 공약 과제였던 '생태법인 도입'을 위한 입법 절차가 본격화된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생태계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는 취지이지만, 이를 실현하기까지는 현실적인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위원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은 13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을 공식화 했다.

생태법인(生態法人, eco legal person) 제도는 인간 이외의 존재 중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등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재산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재단법인', 단체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사단법인'과 같이 자연에 법인을 부여하는 것으로, 기존 법치주의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도입해 자연에도 법적 권리 주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뉴질랜드의 왕가누이강, 스페인의 석호 등의 법인격을 인정한 사례가 있고, 독일에서도 생태계 법인격 인정을 위한 헌법 수정작업이 진행되는 등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초 워킹그룹은 생태법인 도입을 위해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는 안을 적용할지, 개별법을 제정하는 안을 적용할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왔다. 학계, 법조계, 해양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회의 결과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데 의견이 모였다.

이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제주특별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를 논의했고, 최종적으로 △생태법인 창설 특례를 포함하는 안 △제주특별법 개정안에 제주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안 등 두 가지 대안으로 압축됐다.

◇  제주도 자체 '특례 확보' 대안, 이상적이지만 국회 설득 불투명

생태법인 창설 특례안은 제주도지사가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특정 생물종 또는 핵심 생태계를 법인으로 지정하는 안이다.

제주특별법 제361조에 생태법인 창설 특례를 신설해 '도지사는 도의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 자연환경과 도민의 생활 및 안녕에 특별히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특정 종 또는 생태계 핵심 종을 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는 방식이다.

제1호 생태법인 대상으로 제주남방큰돌고래가 지정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경우 추후에 남방큰돌고래 외에도 또 다른 대상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안팎에서는 생태 보호종을 비롯해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제주 곶자왈 등도 생태법인으로서의 가치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다소 뒤쳐지는 안으로 해석된다. 생태법인 지정에 따른 보상 등의 후속조치는 국가의 힘을 빌려야하기 마련인데, 이 막강한 권한을 국회 차원에서 쉽게 내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 "때마다 법 개정?" 남방큰돌고래 지정 대안, 법적 보편성 충돌

두번째 안인 남방큰돌고래를 특정해 법인격을 부여하는 안은 현실적인 타협의 결과물이다. 문자 그대로 큰돌고래속에 속하는 학명 Tursiops aduncs인 제주남방큰돌고래만을 법인격 대상으로 올려놓는 방식이다.

실제 뉴질랜드의 왕가누이강, 스페인의 석호 등 생태법인의 모티브가 된 해외의 사례를 보면 특정 대상의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경우 정치권을 설득하는 과정도 보다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경우 법적인 보편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생태법인 부여의 대상이 꼭 남방큰돌고래여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도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특히 유사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법 개정 작업을 거쳐야 하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도 부담이다. 생태법인 적용안은 현실과 이상을 줄타기하는 형국이다.

◇ 법체제 흔들 생태법인, 후견인 자격-경제피해 보상 등도 과제

추후의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일각에서는 생태법인 도입은 기존 법체제의 근본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연의 권리를 제도로 구현하려면 인간만이 '권리주체'고 자연, 자원, 자본 등은 '권리객체'라는 기존의 법체계의 전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제주도 차원의 선언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객관적 가치질서를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실제 생태법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독일의 경우 제도 도입을 위한 헌법 수정 작업까지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제도 도입 이후, 남방큰돌고래의 권리를 대변할 '후견인'은 어떻게 지정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는 어떻게 보완돼야 할 지도 주요 과제다.

워킹그룹 관계자는 "남방큰돌고래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후견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법안에서 후견인이 소송 행위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실행력을 갖는게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후견인의 자격과 관련해서는 가칭 '생태후견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보호 의무가 강화되면 한창 탄력을 받고 있는 해상풍력 사업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어업인과 해녀 등의 경제적인 피해도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오영훈 지사는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법인격을 부여했을 때 어업활동의 제한이나 제주도민들의 경제 활동에 대한 제한이 가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에 대한 보상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해녀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돌고래와 함께 유영하고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고래 역시 같은 바다를 함께 살아가는 주체라는 생각을 굳혔다. 경제활동에 대한 보상은 국가 차원에서 책임을 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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