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6주년, 아직도 부족한 특별법] ①현재 4.3희생자뿐…유족 포함 모호성 해결해야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제정돼 같은 해 5월10일 시행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으로 이어진 24년간 무려 26차례에 걸쳐 개정 등 보완이 이뤄졌다. 76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4.3을 폄훼·왜곡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또 대통령령 등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개정된 4.3특별법이 희생자와 유족, 또 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4.3 76주년을 맞아 [제주의소리]는 4.3특별법 보완입법과 후속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4.3특별법과 대법원 규칙 개정에도 4.3으로 뒤틀린 제주 사람들의 가족관계 정정은 쉽지가 않다. 대통령령에 명시된 조항 속 애매한 별지가 문제로, 용산 대통령실에 개정을 요구하는 도민사회의 목소리가 전달돼야 한다. 

제주에 덮친 4.3으로 당시 제주도민의 1/10 수준인 2만5000명에서 3만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4.3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도 많았지만, 살아남은 가족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이웃은 물론, 같은 혈족까지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화를 거치면서 4.3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 제주에서 ‘4.3’은 금기어였다.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4.3 피해 사실을 숨기다 재심 청구 과정에서 생존 사실이 확인된 사례가 있을 정도다. 

이제는 4.3을 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피해 당사자들은 숨기고 싶어할 만큼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넘게 진행된 4.3은 도민 대부분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당시는 호적(가족관계등록부) 등록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로, 호적 등록을 늦추다가 학교 입학 등이 다가와서야 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혈족 중심 문화가 짙었던 시기, 도민들은 살아남은 어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거나 친인척 호적에 올리기도 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젊다는 이유로, 중산간에 살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4.3 피해자가 많았던 것이 원인이다. 

4.3의 광풍으로 가족관계가 뒤틀리면서 아버지보다 항렬(行列)이 높아진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에서 호적은 뿌리와 같다. 시조가 누구인지, 또 제주 입도조가 누구인지, 몇 대손인지 등을 집안 어르신들에게 배우면서 자란다. 

4.3으로 가족관계가 뒤틀린 유족들은 자신의 뿌리를 되찾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평생을 대놓고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지 못했던 야속한 세월을 호적 정정으로 바로잡겠다는 의지다. 

법률 상 호적 정정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DNA 검사 등 과학·객관적 자료를 중심으로 가사소송에서 이겨야 겨우 인정될 정도다. 

이는 4.3 피해자들에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현재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라 행방불명된 가족들이 대부분이라 DNA 검사 자체가 불가하다. 

또 대전이나 인천, 부산, 마산, 대구 등 육지 형무소에서 옥사한 4.3피해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뱃삯을 마련하기 위해 밭까지 팔며 육지에 찾아갔는데, 이미 형무소 차원에서 시신을 처리한 사례도 있다. 

이 같은 목소리가 계속되면서 4.3특별법이 개정됐다. 개정 4.3특별법에 따라 호적에 없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경우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 결정에 따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절차로 정정할 수 있게 됐다. 

2022년 4월3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제74주년 4.3추념식에 참석해 추모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제주의소리
2022년 4월3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제74주년 4.3추념식에 참석해 추모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다만,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한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대법원 규칙)’에 호적 정정 대상이 ‘희생자’로 국한돼 문제가 됐다. 

4.3희생자 대부분은 시체 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이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고령의 생존자 극히 일부를 제외한 4.3희생자 대부분이 생사를 달리했다. 호적을 정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4.3희생자보다 유족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공감한 대법원은 22년만에 대법원 규칙을 손질해 호적 정정 대상을 ‘유족’과 ‘4.3중앙위 결정으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등의 대상이 된 사람’까지로 확대했다.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지만, 모호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4.3특별법 시행령)’이 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 정정을 방해하고 있어 이를 명확히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행령은 관련 법률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한 것으로, 시행령과 대통령령(대통령 명령)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시행령 규정 책임자는 후보 시절 제주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4.3특별법 시행령 제13조(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또는 정정 결정에 대한 신청)에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거나 정정하기 위해 4.3중앙위 결정을 받으려는 사람은 ‘별지 제7호서식’을 작성해 실무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별지 제7호서식은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결정 신청서다.

신청서에 ‘작성 또는 정정 대상자’와 ‘희생자’ 등을 기재하지만, ‘유족’이나 ‘4.3중앙위에서 결정 받은 사람’ 등 항목이 없어 보다 명확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호적 정정 자체가 매우 까다롭고, 법령도 보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농후해 4.3특별법 시행령에 따른 별지를 기존 희생자용에서 유족용, 4.3중앙위 결정을 받은 사람용까지 추가해 오해의 소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정치권뿐만 아니라 도민사회가 시행령 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에게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 간절함을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제주4.3특별법 시행령 속 별지 제7호서식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결정 신청서. 문서에 4.3희생자만 있고, 4.3특별법과 대법원 규칙 개정으로 확대된 4.3유족 등이 기재할 수 있는 항목이 없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4.3특별법 시행령 속 별지 제7호서식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결정 신청서. 문서에 4.3희생자만 있고, 4.3특별법과 대법원 규칙 개정으로 확대된 4.3유족 등이 기재할 수 있는 항목이 없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