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6주년, 아직도 부족한 특별법] ② 왜곡·폄훼 처벌 조항 신설 필요성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제정돼 같은 해 5월10일 시행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으로 이어진 24년간 무려 26차례에 걸쳐 개정 등 보완이 이뤄졌다. 76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4.3을 폄훼·왜곡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또 대통령령 등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개정된 4.3특별법이 희생자와 유족, 또 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4.3 76주년을 맞아 [제주의소리]는 4.3특별법 보완입법과 후속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4.3을 폄훼·왜곡하는 현수막이 제주 곳곳에 내걸리면서 도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말도 안되는 주장의 현수막이었지만, 정당이 걸었다는 이유 등으로 철거조차 쉽지 않았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정당법’ 등에 따라 4.3을 폄훼·왜곡한 현수막을 철거할 수도, 제작한 사람을 처벌할 수도 없어 많은 도민들이 분노했다.
지난해 12월 제주도의회가 ‘제주특별자치도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4.3 폄훼·명예 훼손을 금지하고 정당현수막에 대한 관리 기준을 마련했지만,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 등에 위배돼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직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태영호(강남구 갑) 의원마저 제주4.3이 김일성 일가에 의해 촉발됐다는 망발을 했다. 이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컸지만, 제주를 찾은 이원석 검찰총장마저 현행 법률상 처벌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태 의원은 다가오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구로구 을 선거구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제주4.3특별법에 4.3 폄훼·왜곡에 대한 처벌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제13조(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된다.
4.3특별법에 4.3을 폄훼·왜곡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한다는 조항이 없어 소위 ‘훈시규정’에 머물고 있다.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그럼에도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히곤 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더라도 진실까지 왜곡·폄훼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다. 일반 형법에 ‘명예훼손’ 죄가 포함된 이유다.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사람과 허위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사자(死者) 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등 우리나라는 타인에 대한 명예 훼손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특별법은 다른 법률보다 우선된다. 상위법률로 해석돼 4.3특별법에 처벌 조항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4.3 왜곡·폄훼 등을 줄일 수 있다.
4.3특별법에 폄훼·왜곡 처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특별한 요구도 아니다.
과거사 관련 법률 중 5.18민주화운동 관련 법률에는 이미 반영이 되어 있다. 2021년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됐다.
신문이나 잡지, 방송, 출판물, 전시물, 공연물을 비롯해 기자회견이나 집회, 가두연설, 토론회 등에서의 발언까지 처벌 대상이다. 다만, 역사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위해 예술·학문, 연구·학설 등을 위한 허위 사실은 처벌하지 않는다.
제22대 국회에 입성하는 의원들이 4.3의 역사적 진실마저 왜곡·폄훼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 신설 보완입법을 통해 4.3희생자와 유족, 도민들을 달래줘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