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6주년, 아직도 부족한 특별법] ③재심 관할, 사후 호적 효력 인정, 4.3중앙위 구성까지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제정돼 같은 해 5월10일 시행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으로 이어진 24년간 무려 26차례에 걸쳐 개정 등 보완이 이뤄졌다. 76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4.3을 폄훼·왜곡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또 대통령령 등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개정된 4.3특별법이 희생자와 유족, 또 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4.3 76주년을 맞아 [제주의소리]는 4.3특별법 보완입법과 후속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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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특별법에 희생자와 유족은 4.3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고, 국가는 존중해야 한다. ⓒ제주의소리

4.3의 광풍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6개월에 걸쳐 제주섬을 휘몰아쳤고, 이후 군부독재 정권 시대에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그러던 것이 87년 민주항쟁을 겪으면서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시작됐다. 4.3 진상규명에 힘썼던 원로들의 고문 등 피해가 그 사례며, 누구나 알 듯 현재까지도 여전히 4.3 폄훼·왜곡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70년이 훌쩍 지난 시점인데도 제주에서는 여전히 4.3희생자 신고를 받고 있다. 후손이나 주변에 피해가 될까 4.3 피해 사실을 철저히 숨긴 사례가 허다해 이제는 4.3 피해를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수십년에 걸친 트라우마로 인해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전면 개정된 4.3특별법이 2022년 시행되면서 ‘특별재심’과 ‘직권재심’도 도입됐다. 특별재심은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가 결정한 모든 4.3희생자를 대상으로 한다. 제주에서 4.3 피해를 겪었다고 모두 희생자는 아니다. 각계 석학과 각 정부부처 장관들이 모인 4.3중앙위가 인정한 피해자가 4.3 희생자다. 

직권재심은 군사재판으로 불리는 1948년 1차 군법회의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피해를 겪은 2530명을 대상으로 하다 일반재판을 받은 4.3희생자까지 확대됐다. 

일반재판의 경우 제주 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등 지역 곳곳에서 이뤄졌으며, 군사재판은 모두 제주에서 위법한 절차로 진행됐다. 

4.3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은 제주지방법원이 관할한다는 조항이 있고, 군사재판은 제주에서 이뤄졌기에 재심은 당연히 제주지법이 맡는다. 

4.3 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던 탓에, 자신이 징역형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에 처해진 전과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온 4.3 피해자들도 상당하다. 

제주가 아닌 지역에서 일반재판을 받은 4.3피해자는 최소 수백명으로 추정되는데,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육지에 터를 잡아 제주와 연을 끊고 살기도 했다. 올해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부산 거주 96세 오모 할아버지 사례가 그렇다. 

4.3에 따른 일반재판과 군사재판 피해자 중 재심 사각지대는 아직 4.3희생자가 아닌 일반재판 피해자다. 

이들은 4.3특별법에 따른 특별재심이나 직권재심이 아니라 일반 형사소송법 등에 따른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한다. 특히 4.3 때 다른 지역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은 피해자는 해당 지역 관할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야 돼 4.3 관련 재심 사건 중 명예회복의 길이 가장 까다롭다. 

제주지법에는 4.3재심을 전담하는 제4형사부가 구성돼 있다. 4.3과 같은 과거사 재심은 다른 사건에 비해 훨씬 까다로워 효율적인 심리를 위해 신설됐다. 

지금의 상황은 4.3재심 사건 중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사건이 제주가 아닌 육지부 다른 지역 법원에 배당된다. 이로써 제주지법 4.3재심 전담 재판부 구성 목적이 퇴색될 수도 있다. 

4.3 관련 모든 재심 사건을 제주지법이 관할할 수 있도록 4.3특별법을 보완 입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4.3 피해자들이 제주지법에서 재심 절차를 밟는 것을 특혜로 볼 수는 없다. 전문성을 위해 특허법원, 행정법원이 별도로 존재하는 이유와 같다. 

4.3 관련 재심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일반 민사·형사·행정 사건들처럼 각 법관 양심에 맡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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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특별법에 국가는 4.3 해결에 대한 제주도 주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주의소리

재심 관할 법원 문제 말고도 4.3특별법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사후 호적 입적 효력 인정과 4.3중앙위 구성 객관성 확보 등을 꼽을 수 있다. 

4.3 때 군사재판을 받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피해자들은 각종 문헌·기록상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거의 대부분이 생사가 명확하지 않은 행방불명으로 남아있다. 현재 골령골에서는 유골 발굴도 이뤄지고 있다. 

대전형무소 일부 행불인 가족들은 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는데, 원고 중 희생자의 배우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4.3희생자가 사망한 후 혼인신고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호적(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려 수십년간 가정을 지킨 배우자가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호적 등록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 시대 상황을 눈감은 사례다. 일각에서는 4.3희생자에 대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 사후 호적 입적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이는 억지 춘향식 주장이다.  

당시는 4.3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빨갱이’ 취급받던 시기다. 4.3희생자 사후 호적에 이름이 오른 유족들은 평생을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자신도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사실까지 알면서 4.3 희생자의 호적으로 이름을 올린 또 다른 4.3피해자다.  

가족관계 정정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안 초안에는 4.3희생자 사후 이뤄진 혼인신고, 입양신고 등에 대해 그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의 조항이 포함됐었지만, 제21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돼 최종 본회의를 통과됐다. 

제22대 국회에서라도 사후 호적 입적 등의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의 조항 삽입 등 보완 입법이 필요한 이유다. 

4.3중앙위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아 총 25명으로 구성됐다. 기획재정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법제처장, 제주도지사가 당연직 위원이다. 또 국회 추천 4명 등 민간위원 17명으로 구성됐다. 

거대양당 중심의 우리나라 정치 구도에 따라 국회 추천 인사는 거대 양당이 각각 2명씩 추천해 4명을 채워왔다. 나머지 민간위원 13명은 유족 대표를 포함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총리가 임명하거나 위촉한다고 4.3특별법에 명시됐다. 

임기 2년에 한차례 연임이 가능한데, 대통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권에 따라 4.3중앙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나 제주도의회 의장, 제주도교육감 같은 당연직 위원을 늘려 정권 입김에 휘둘리지 않는 4.3중앙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4.3특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4.3특별법은 4.3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통해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국민화합을 목적으로 한다. 

4.3 희생자와 유족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보상, 기념사업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국가는 존중해야 한다. 4.3 해결 과정에서도 국가는 제주도 주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특별법은 단어 그대로 ‘특별한 법률’이며, 우리나라의 근간인 헌법만이 특별법보다 위에  위치해 일반 법률보다 상위법률로 해석된다. 4.3뿐만 아니라 대부분 특별법에 ‘OO법에도 불구하고’라는 조항이 다수 포함된 이유다. 

결론적으로 정부와 국회는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4.3희생자와 유족, 도민의 의사를 존중해 4.3특별법을 보완,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4.3희생자와 유족, 도민의 목소리가 곧 4.3특별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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