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55) 주민의견-환경가치 반한 제2공항, 도민 자기결정권 지켰다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최종 반려 결정되면서 사실상 성산지역에 추진되어 온 제2공항 건설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지난 2015년 11월 국토부가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 성산지역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을 발표한 지 5년 8개월 만이다. 2025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된 사업이지만 기본계획 고시를 위한 행정절차의 첫 단계인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사업추진이 무산된 것이다.

이번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 결정이 내려지게 되면서 그 배경과 제2공항 백지화 이후 제주 공항인프라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국책사업인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을 백지화시킨 운동의 동력도 주목된다.

공론조사 결과로 제2공항은 이미 아웃

지난 20일 환경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 결정으로 행정절차상 사업추진이 어렵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환경부가 ‘부동의’가 아닌 ‘반려’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아직 계획추진의 기회가 있다고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부의 반려 사유를 보면 내용적으로는 부동의 결정과 다름이 없다.

환경부 보도자료에서 언급된 구체적인 반려 사유를 정리하면 조류 및 철새도래지 분포에 따른 비행안전 문제와 조류 서식지 보호 문제, 항공기 소음 문제, 멸종위기야생생물 서식 문제, 숨골의 보전방안 문제 등이 언급되었다. 환경부는 국토부의 보완서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검토와 대안 제시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실상 공항건설 계획이 시행될 경우 지적된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어 공항건설 입지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인 셈이다.

이번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 결정으로 행정절차 상 제2공항 건설계획이 철회되는 수순을 밟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 제2공항 건설사업의 백지화는 이미 지난 2월 18일 제주 제2공항 찬·반 도민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정되었다. 국토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도민 공론화 절차를 인정했고, 여론조사를 바로 앞둬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따라서 지난 2월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공론조사 결과 제2공항 반대가 높게 나오면서 제2공항 사업은 추진동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약속대로 국토부는 제2공항 건설계획 백지화를 선언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외면한 채 환경부에 전략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제출했다.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려는 심산이라기보다는 제2공항 사업계획이 무산되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커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러한 행보는 제2공항 건설계획의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을 모두 잃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도민여론 조사에서도 제2공항 건설계획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행정 절차적으로도 공항건설에 따른 환경적 입지 검토에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추진동력을 상실한 껍데기만 남은 사업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국토부의 행정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토부의 무책임한 행보는 제2공항 찬성론자들에게 희망고문을 가하며 오히려 제2공항 갈등 해소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 원희룡 지사조차도 ‘부동의가 아닌 만큼 국토부는 보완절차 이행으로 제2공항 추진에 나서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국토부는 제2공항 사업의 주체로서 도민여론조사 결과와 환경부의 결정을 존중하여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국토부와 제주도, 제주도의회가 합의하여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제2공항 반대라는 제주도민의 결정을 역행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일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공항입지로서 부적합하다는 환경부의 평가결과를 겸허히 수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환경부 결정 끌어낸 시민들의 환경조사

이번 환경부의 반려 결정을 끌어낸 것은 피해지역 주민들과 시민들이 직접 현장 곳곳을 조사하며 땀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 영향에 대한 평가범위, 평가시기 등이 매우 한정적이고, 소극적인 조사계획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항공기 운항에 따른 조류충돌 문제가 될 수 있는 조류 서식실태, 철새도래지 분포현황 등이 상당 부분 누락된 사실을 시민들로 구성된 환경조사단이 찾아냈다. 

국토부는 사업예정지에 곳곳에 분포하는 숨골 역시 실제 분포현황과 크게 다른 결과를 제시했다. 평가서에서는 8곳에 불과했지만 시민들이 직접 조사를 통해 185곳의 숨골을 찾아냈다. 이를 의식했는지 국토부는 환경부에 제출한 마지막 재보완서에는 숨골 160개를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숨골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제시는 전무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누락된 법정보호종 서식지들을 찾아낸 것도 지역주민들과 제2공항의 문제를 제기해 오던 시민들이었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과정에서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국토부에 보완요구를 하게 되었다. 보완요구 과정에서도 지역주민과 시민들의 조사는 이어졌고, 평가서에 없는 동굴을 확인하기도 했으며, 추가적인 숨골들과 법정보호종을 발견하여 환경부에 그 결과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이 현장조사를 통해 사업예정지의 환경적 가치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분석으로 문제점들을 찾아냈고, 다행히도 환경부가 이를 제대로 반영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지사는 이번 환경부의 결정을 “매우 정치적이고, 무책임한 정책 결정”이라고 폄하한다. 이는 오히려 제주도지사로서 너무나 무책임하고 정치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조례에서도 숨골은 지하수자원 1등급으로 관리하는 지역으로 개발행위가 전면 금지되는 곳이다. 사업부지에는 200곳 가까이 되는 숨골이 분포하지만, 공항이 개발될 경우 모두 사라지게 된다. 국토부도 이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철새도래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업부지를 둘러싸고 여러 곳의 철새도래지가 분포하고 있어 항공기 운항과정에서 조류충돌 위험과 그 서식지 보호방안이 미흡하다. 소음문제 평가나 법정보호종의 보전방안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검토가 미흡하다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판단이고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것인가. 도민여론조사에 합의하고도 그 결과는 인정하지 않더니 이제는 환경부의 결정마저 부정하는 것은 도백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일 뿐이다.

주민 의견, 환경 가치 반하는 국책사업에 엄중한 경고

6년 가까이 벌어진 제2공항 갈등과 백지화 과정은 우리사회가 민주주의를 다시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주민동의와 협의도 없이 한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업계획을 세우고, 평생 생활환경 피해가 발생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토부와 제주도가 주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권위주의적인 행정뿐이었다. 제주섬의 환경적 수용력을 감안한 계획수립과 제2공항 사업의 타당성을 지적하는 도민들에게 이는 전문가의 판단 영역이라며 이를 의심하거나 도전하지 말라는 행정의 자세는 가히 폭력적이었다. 제2공항 예정지 발표 직후 관권을 동원한 제2공항 건설 찬성 여론몰이 역시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행정행위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는 하지만 제2공항 갈등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개발독재의 잔재가 여전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에 맞서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는 조직적인 대응으로 제2공항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과 계획의 타당성 문제를 줄기차게 지적했다. 또한 제2공항의 대안으로 현 제주공항의 개선을 통한 활용 가능성을 제기했고, 제주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제2공항 건설계획의 추진 여부는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른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은 최근에 와서는 지방자치 영역은 물론 주민들이 국책사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주민들의 자기결정권 요구에 당·정이 이를 수용했고,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민들은 제2공항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기본권을 행사하는데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 제주도민들은 개발과 성장보다는 보전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선택하였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제주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지를 도민들이 판단하고 결정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특히 그동안 국책사업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깨는 결과이기도 했다.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환경의 가치를 훼손하며, 도민사회의 여론에 반하여 강행해 온 국책사업에 대한 제주도민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2공항 건설계획 백지화는 제주사회의 변화와 미래 비전에 대한 방향성을 다시 고민하게 하는 과제를 던진 사건이다.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할 곳은 제주도이다. 제주 미래의 방향성에 대한 도민의 의사가 확인된 만큼 제주도는 이에 부합하는 정책변화와 함께 새로운 제주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우선하고, 제주의 환경적 가치를 실현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로 가는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제주 미래를 위한 도민들의 현명한 판단에 부응하는 길이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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