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최후 보루, 바다를 지키자] ④바다숲 블루카본, 생물다양성 표본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에 의해 전세계는 2030년까지 해양보호구역을 전체 해역에 30%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는 기후위기, 불법어업, 해양오염 등으로 무너져가는 해양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 제주도 역시 해양보호구역 확대가 절실한 지역으로 4회에 걸쳐 제주지역의 해양보호구역의 확대의 필요성과 해양보호구역 지정이 필요한 후보지를 소개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보통 바다에서 자라는 식물을 생각할 때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사실 담수가 아닌 해수에서 식물을 떠올리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바다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해초가 있다. 바로 천연잘피다. 천연잘피(Seagrass)란 해수에 적응해 바다에 분포하는 속씨식물을 통칭한다. 해조류는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라 식물로 오인하곤 하지만 분류학적으로 식물계에 속하지 않는다. 식물이 가지는 기본 요소를 해조류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의한 계통 분석에 따르면 천연잘피는 백악기(약 1억년 전) 육상으로부터 고대 바다인 테티스해(Tethys Sea)로 진출해 인도양과 태평양 적도 근역까지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천연잘피는 조직이 부드러워 화석으로 남기 어렵지만 백악기에서 시신세(약 5천만년 전)에 이르는 화석중에서 간혹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바닷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삼투 조절을 하게 됐고, 기공이 퇴화됐으며 뿌리나 지하줄기로 산소를 공급하는 통기조직이 발달됐다. 모든 천연잘피는 속씨식물 중 외떡잎식물에 속하고 해조류와 달리 뚜렷한 잎, 줄기, 뿌리 등 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관다발계가 발달돼 있다. 

게다가 꽃도 피고 열매를 맺는다.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 연안에 분포하며 적게는 60종 많게는 70여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연안에는 9종의 천연잘피가 분포하는데 해호말, 새우말, 게바다말, 줄말, 왕거머리말, 포기거머리말, 수거머리말, 애기거머리말, 거머리말 등이다. 

이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종은 거머리말로 알려져 있다. 종에 따라 사는 곳도 차이가 있는데 해호말은 열대성 잘피로 수온이 높은 곳에서 자생하며, 새우말과 게바다말은 암반에 부착하여 생육하고, 줄말은 강하구 조간대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담수에서도 생존한다. 

왕거머리말은 동해안에서 수심 10미터 공간에 제한적으로 생육하고 포기거머리말과 수거머리말은 거머리말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수심에서 차이를 보이거나 크기가 더 크다. 애기거머리말은 조간대에 분포하는 종으로 크기가 매우 작다.

추자도의 포기거머리말, 잎과 줄기 뿌리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추자도의 포기거머리말, 잎과 줄기 뿌리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천연잘피는 넓은 초지 형태로 형성되어 '바다숲'이라 불린다. 숲은 곧 생물다양성을 나타내는 곳인데 바다숲을 이루는 천연잘피의 생육장은 해양생물의 종다양성을 높게 유지하게 도와준다. 특히 경제적 가치가 큰 어족자원의 중요한 서식지를 제공하며 이들의 산란장과 치어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산자원을 풍부하게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바다거북 등 해양생물의 직간접적인 먹이원이기도 하며, 광합성을 통해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해양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더해 기후위기 대응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해저퇴적물을 안정화해 연안의 퇴적물 침식을 줄이고 육지로부터 유입되는 많은 종류의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정화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특히 바다로 들어오는 질소와 인을 빠르게 흡수해 제거함으로써 적조와 부영양화를 막아 파래류의 번성 등 해양오염과 재해를 줄이는데 큰 도움을 준다. 

거머리말의 서식이 추정되는 시흥리~오조리 앞바다 군랑서(넓은여) 지역.
거머리말의 서식이 추정되는 시흥리~오조리 앞바다 군랑서(넓은여) 지역.

이런 이유로 2015년 지정된 추자도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과 2016년에 지정된 토끼섬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은 천연잘피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정됐다. 추자도는 포기거머리말과 수거머리말의 보호를 위해 토끼섬은 거머리말을 보호를 위해 각각 지정됐다. 

2012년 한국환경생물학회에서 발행한 ‘제주도와 추자도에 자생하는 잘피의 분포 현황’ 논문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는 동북해안에서만 거머리말이 출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가장 넓은 거머리말 자생지는 시흥리와 오조리로 연결되는 평균 수심 4~5미터 연안이었다. 자생지 면적은 0.2㎢에 달한다. 

다음으로 넓은 자생지는 종달리 연안 1만278㎡ 그다음은 오조리 연안습지 9788㎡, 토끼섬 7118㎡, 다려도 5814㎡ 순으로 나타났다. 즉 시흥리에서 오조리, 종달리로 연결되는 평균 수심 4~5미터 연안이 제주 최대 거머리말 서식지라는 뜻이 된다. 

거머리말이 서식하는 모습. ⓒ사진제공 좌종헌
거머리말이 서식하는 모습. ⓒ사진제공 좌종헌

약 0.3㎢에 달하는 중요한 천연잘피의 서식지가 바로 제주도 동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천연잘피는 최근 블루카본으로도 각광 받고 있다. 실제 해양수산부는 블루카본(Blue Carbon)의 중요성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블루카본은 연안에 서식하는 염생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흡수한 탄소와 조석·파도 등 물리적 작용에 의해 갯벌 사이 공간에서 포집된 탄소를 말하는데 이 블루카본이 탄소중립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라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그래서 최근 해양수산부에서 블루카본을 강조하며 염생식물의 복원사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천연잘피도 포함되어 있으며 제주지역에서도 성산읍 광치기해변을 중심으로 천연잘피의 보전과 복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천연잘피 복원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가운데 기존의 천연잘피 서식지를 제대로 관리하고 보전하지 않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성산읍 오조리부터 구좌읍 종달리까지 사실상 제주도 최대의 천연잘피 서식지인 이곳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천연잘피 서식지에 대한 정밀조사와 그에 따른 해양보호구역 지정이 절실하다. 기후위기의 시대 해양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나아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데 중요한 자원이 되는 천연잘피를 잘 가꾸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길이다. 

제주도가 더 늦지 않게 천연잘피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보전계획과 도민인식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면 제주도의 기후위기 대응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해양을 보호하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일에 제주도가 더 많은 행정력을 투입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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