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 26일 간첩조작사건 34건 조사 개시 결정

1980년대 일본 여행 중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친척을 만났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간첩으로 몰린 故 김두홍씨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故 김두홍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의혹 사건 등 34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김씨는 1981년경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온 후 평소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조총련을 만나 간첩행위를 했다’는 허위 밀고를 당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김씨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일본에 살고 있어 제주를 찾지 못하는 큰집의 벌초와 제사, 명절 차례를 모두 대신했다. 그러자 김씨의 큰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김씨를 일본으로 초청해 몇 개월간 여행을 시켜줬다.

하지만 초청받아 다녀온 일본 여행은 ‘간첩’ 누명을 뒤집어쓰기 좋은 공안당국의 먹잇감이 됐다.

김씨는 일본을 다녀온 2년여 뒤인 1982년 6~7월쯤 체포됐다. 공안당국은 일본 여행 때 조총련과 접촉한 뒤 제주에 돌아와 북한을 찬양하고 남한을 비하했다는 혐의를 씌웠고, 김씨를 체포해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냈다.

신청인은 김씨가 친척의 초청으로 일본 관광을 다녀온 것임에도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처벌을 받았고, 제주경찰서에서 수사 당시 불법 연행과 고문,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수사 기록에서 김씨가 경찰에 검거된 1982년 7월 27일부터 9일 이상 사전 구속영장 없이 위법하게 구금된 것으로 보이고, 공판조서를 통해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김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재심 청구를 위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 밖에도 진실화해위원회는 1987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이상백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출판해 간첩으로 몰린 녹두출판 간첩조작 사건도 함께 조사하기로 했다.

녹두출판의 편집장이었던 신형식씨는 내무부 치안본부가 이상백 시인을 검거하기 위해 추적 수사하던 중 이를 발행했던 자신을 불법 연행, 구금하고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기록상 신청인에 대한 검거방식이 긴급구속일 개연성이 높고, 이후 신청인에 대한 영장도 사후영장이 아닌 통상의 사전영장인 점,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음에도 즉시 집행하지 않은 점, 신청인이 공판과정에서 일관되게 수사관의 자백 강요에 의해 자백하게 됐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 판단했다.

또 1950년 8월부터 10월까지 전남 영광군 일대에서 지역주민 16명이 마을 유지, 공무원 등 우익과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방좌익 등 적대 세력에 희생된 ‘전남 영광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독립된 국가 조사기관이다. 항일독립운동과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권위주의 통치시기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3·15의거 사건, 그밖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등을 조사해 국가에 후속조치를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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