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고(故) 김두홍씨 ‘재심 청구’에 부쳐 

제주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인 고(故) 김두홍 씨에게 내려진 잘못된 판결을 되돌릴 ‘재심 청구서’가 제주지방법원에 접수됐다. ⓒ제주의소리
제주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인 고(故) 김두홍 씨에게 내려진 잘못된 판결을 되돌릴 ‘재심 청구서’가 제주지방법원에 접수됐다. ⓒ제주의소리

툭하면 간첩이 ‘만들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조작간첩이다. 만들어졌기에 본인도 자신이 그런 존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 단어가 처음부터 섬뜩한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다. 

용간(用間). 고대 중국의 손자병법에는 간첩 활용법까지 나와있다. 물론 표현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다.

국어사전에 보면, 간첩은 스파이(Spy), 첩자, 간자(間者), 간인(間人)과 의미가 똑같다. 세작(細作)도 마찬가지다. 

조선 초기에는 여진족의 동태를 살피던 체탐인(體探人)이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특수·첩보부대원이다. 

체탐은 몸소 알아본다는 뜻이다. 따라서 체탐인은 적진에 직접 침투해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 만큼 위험하다 보니 한때는 처우도 좋았다고 한다. 이후엔 정탐인(偵探人)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국익을 위해 때론 교전도 불사했던 체탐인 정도라면 모종의 자부심을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의미 면에서 이토록 스펙트럼이 넓은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4.3 겪은 제주, 간첩 조작 주요 ‘타깃’ 

대한민국의 조작 간첩은 맹신적 반공주의의 산물이다. 부도덕한 정권 연장의 희생자였다. 정권을 찬탈했기에 늘 저항이 따랐고, 그럴수록 정권이 기댈 언덕은 이데올로기 밖에 없었다.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둔갑시키려다보니 혹독한 고문이 자행됐다. 본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극한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당대로 끝나지 않았다. 사방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었다.  

간첩 조작은 7~80년대 제주에서 가장 횡행했다. 4.3 당시 ‘붉은 섬’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제주는 그 자체가 좋은 소재였다. 

2006년 천주교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전체 조작간첩사건 109건 가운데 34%인 37건의 피해당사자가 제주출신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무대는 일본이었다. 조작간첩사건에서 일본이 공간적 매개가 됐던 셈이다. 제주도와 (사)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가 발간한 ‘2022년 간첩조작사건 피해 실태 조사보고서’에는 심층 인터뷰 대상 12명 중 10명이 일본과 관계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공안당국 제시한 암약상 ‘허접’

그랬다. 살육의 광란을 피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제주도민들이 주로 향한 곳이 일본이었다. 팩트 확인이 어려운 이국 땅은 뭔가 일을 꾸며야 하는 쪽에서는 그만이었다. 더구나 일본에는 조총련이라는 양념(?)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암약했다고 했지만, 뜯어보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재심 끝에 30여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고(故) 오재선 할아버지(1941~2019년)는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기밀을 수집한 혐의로 간첩으로 몰렸다. 

기밀이라고 해봐야 기껏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제주지역 비료가격 인상, 5.16도로 기밀, 애월읍 시외버스정류소에서 판매한 전국 교통시간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기시감이 든다. 대통령의 출근길을 중계한 유튜브 영상에 대해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를 내린 상황이 문득 떠올랐다. 

강광보 할아버지(84)는 4.3당시 일본으로 피신한 아버지를 만나러 1960년대초 밀항을 택한 게 화근이었다. 숙부가 조총련이었다. 고문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으나 2017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60대 중반에 생을 마감한 고(故) 홍제화씨는 고약한 ‘막걸리 보안법’에 걸려들었다. 1981년 동네 식당에서 지인들과 막거리잔을 나누면서 김일성, 박정희, 전두환 등에 대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그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2019년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고령의 피해당사자 ‘시간과의 싸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영원히 진실을 가둬둘 수도 없다. 이제 진실 규명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지난해 7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1984년, 1986년 발생한 ‘제주 보안부대에 의한 불법구금·고문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사건’ 등에 대해 조사 개시를 결정하더니 12월에는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후자는 고(故) 김두홍씨와 관련된 사건이다. 

일본으로 이주한 큰 집의 제사와 벌초를 도맡아준데 대한 보답으로 초청을 받고서 일본을 방문했다가 간첩 누명을 쓰게됐다. 불법 연행과 구금, 고문 등 온갖 가혹행위가 죄다 동원됐다. 

한국전쟁 때 수류탄 파편을 맞아가며 조국을 지키려했던 국가유공자였지만, 공안당국의 표적에는 예외가 없었다. 자식들도 하나같이 연좌제 피해를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 권고에 따라 유족들은 지난 5일 변호인을 통해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야만의 시대, 인구 1%의  땅 제주에서 양산된 조작간첩사건의 허상을 파헤치기 위한 일련의 여정은 전국 최초의 조례(제주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의 인권 증진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 시작됐다. 

이 조례를 근거로 김종민 강남규 황석규 한상희 고승남 님 등이 실태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사건 피해자들의 삶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멈추어선 안될 과제가 있다. 피해자들의 누명을 벗기는 일이다. 고령의 당사자들은 시간과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진실 규명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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