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간첩조작사건] 진실화해위, 양의남-김치병-故김주섭 / 강병선 사건 조사개시

군사독재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만든 ‘무법’ 조직 보안사령부의 제주지부 ‘한라기업사’에서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불법 구금과 무자비한 폭행 등을 통해 무고한 국민으로부터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간첩’을 만들었던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는 지난 18일 열린 제59차 전체위원회에서 1984년과 1986년 발생한 ‘제주 보안부대에 의한 불법구금‧고문‧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사건’을 포함한 12건에 대해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제주지역 진실규명대상 사건은 양의남, 김치병, 故김주섭 씨가 연루된 사건[관련기사 = 일본 여행 다녀왔는데 “이북 몇 번 오갔냐”…생뚱맞은 추궁 ‘끝없는 조작’]과 강병선 씨[관련기사 = 일주일만 송두리째 망가진 삶, ‘간첩조작 고문’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사건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보안사는 제주도에도 민간 기업 형태의 ‘한라기업사’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당시 도민사회에는 ‘한라기업사에 다녀오면 반병신이 된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다녀온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진화위가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고 실제 사건조사에 나서는데 산파 역할을 한 김종민 제주4.3사건중앙위원회 위원이 연구책임을 맡은 ‘2022년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에는 피해사실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양의남(80) 씨. 양씨는 보안사령부 제주지부인 '한라기업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어깨와 무릎을 크게 다쳐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보안사는 '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답정너'식 추궁을 가했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양의남(80) 씨. 양씨는 보안사령부 제주지부인 '한라기업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어깨와 무릎을 크게 다쳐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보안사는 '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답정너'식 추궁을 가했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서경윤 간첩조작사건 연루, 불법구금·고문·가혹 행위 받아

제주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양의남(80), 김치병(73), 故김주섭 씨는 1984년 당시 간첩 혐의로 검거된 같은 동네 출신 서경윤 씨의 간첩행위를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 

이들은 제주 보안사인 한라기업사(508보안부대) 수사관들로부터 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한 것에 대해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규명대상자인 양의남 씨와 김치병 씨는 한라기업사 지하실에서 수사 가혹 행위와 진술 강요를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故김주섭 씨의 형은 동생으로부터 고문 피해 사실을 들었고, 상처투성이인 동생의 몸에 연고를 발라줬다고 진술했다.

진화위는 1984년 당시 기준 피의자 서경윤 및 참고인 양의남, 김치병, 故 김주섭 모두 보안사에 의한 고문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진술을 하는 등 진술 강요 및 가혹 행위 피해 개연성이 충분하며, 국군방첩사령부 기록에서 연행돼 훈방된 기록 등이 확인돼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에서 양의남 씨는 동네 사람인 서경윤을 아느냐는 질문에 “안다”고 대답한 뒤 다짜고짜 “그와 함께 북한에 몇 번 건너갔다 왔느냐”는 등 답이 정해진 추궁을 받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북한에 다녀온 적 없어 “다녀오지 않았다”고 대답한 뒤부터는 입고 있던 옷과 상처가 달라붙어 벗을 수 없는 지경까지 무차별적인 매질을 당했다. 거짓 자백을 한 뒤 풀려난 양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조 관절을 심고 지금도 왼쪽 어깨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

양씨는 “수십 대 수준이 아니라 수백 대를 맞았다. 어쩔 땐 까무러쳐서 깨나지 못하면 물을 퍼부어 깨웠다. 일어나보면 옷이 다 젖어있었다”며 “대여섯 명이 교대로 때릴 정도로 호된 고문을 받았다. 당시 한라기업사를 다녀오면 반병신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됐다”고 말했다.

서경윤과 같은 동네 출신인 김치병과 故김주섭 역시 사건에 연루돼 한라기업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간첩 혐의를 뒤집어썼다. 

故 김주섭은 보디빌딩 제주도 메달리스트일 정도로 건강했지만,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정신적 후유증으로 매일같이 술을 마시다가 4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위암과 간암으로 사망했다.

김치병 씨 역시 “각본을 그대로 받아쓰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온갖 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이기지 못해 각본대로 진술한 다음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들이 끌려가게 된 사건의 주인공 서경윤 역시 1984년 10월 13일 ‘6개망(網) 간첩단’ 조작 사건에 휘말린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다. 서경윤은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된 뒤 1기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 이후 진행된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병선 씨는 1986년 강광보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돼 고문 취조를 받았다. 강광보 씨와 10촌 사이인 피해자는 고문에 못 이겨 북한에 다녀왔다는 허위자백을 했다. 일주일 만에 풀려났으나 지금까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병선 씨는 1986년 강광보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돼 고문 취조를 받았다. 강광보 씨와 10촌 사이인 피해자는 고문에 못 이겨 북한에 다녀왔다는 허위자백을 했다. 일주일 만에 풀려났으나 지금까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갑자기 찾아온 ‘검은 승용차’ 영문 모를 행선지는 ‘한라기업사’

제주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병선(76) 씨는 10촌 형님은 ‘강광보’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1986년 한라기업사에서 불법구금‧고문‧가혹 행위 등 피해를 겪었다. 

강씨는 한라기업사에 끌려가 일주일간 물고문과 성기에 전기고문을 받는 등 간첩 누명을 쓴 것에 대해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화위는 국군방첩사령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나타난 강씨의 1986년 1월 24일 임의 동행 후 1월 30일 또는 31일에 훈방 조치 된 기록을 통해 불법 구금 사실을 확인했다. 

또 2017년 강광보 씨 재심에 출석한 대상자와 증인들이 당시 한라기업사에서 진술을 강요받고 수사관들로부터 구타당하거나 다리를 찍히는 등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 것을 토대로 진술 강요와 가혹 행위에 따른 허위자백 사실이 확인된다며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강병선 씨는 ‘북한에 갔다 왔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한 뒤 무차별적인 고문을 당했다. 폭행은 물론, 성기에 전기를 흘려보내거나 젖은 수건을 얼굴에 덮은 뒤 물을 끼얹어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도모지’를 연상케 하는 고문도 서슴없이 당했다.

공안당국은 강씨에게 북한에 다녀온 것 아니냐고 추궁,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강씨는 보고서에서 “쓰라는 대로 썼다. 뭐라고 썼는지도 잘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진정으로 쓴 거라면 지금도 기억할 텐데 거짓으로 쓴 거니까 생각도 안 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강씨는 일거리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송환당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얼굴도 몇 번 안 본 강광보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후유증 때문에 강씨는 아내와 이혼하는 등 삶이 송두리째 망가졌다.

강씨가 연루된 사건의 강광보 씨는 징역 7년형을 받고 옥살이를 했으며, 2017년 재심을 청구해 31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자택을 개조해 전국 처음으로 조작간첩을 비롯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기억 공간 ‘수상한 집’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한편, 지난 6일과 7일 진화위는 또 다른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양진(92) 어르신과 故김두홍의 아내 고정일(92) 어르신을 대상으로 증언을 듣는 등 진실규명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서경윤 씨가 연루됐던 사건 관련 기사. 1984년 10월 13일 동아일보(사진 왼쪽)와 14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6개망 간첩단 사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동아일보 = [간첩 6개망 6명 검거] (중략) 간첩 서경윤은 69년 1월 일본 오사카에 사는 당숙을 찾아 일본에 밀항했다가 친척들을 통해 조총련 공작지도원 서상화에게 포섭돼 군사기밀 탐지 등의 지령을 받고 70년 6월 귀국, 당시 해군 상사인 친형 서병윤(46)을 통해 진해 해군기지의 주요시설 함정 동향 등 각종 군사정보를 수집, 보고. 73년 1월과 81년 5월 두 차례나 일본에 밀항해 김해공항의 사정 등을 탐지, 보고.▲조선일보 = [간첩 6개망 6명 구속] 국군보안사령부는 13일 북괴지령에 따라 재일동포 모국유학생으로 가장하여 국내에 침투, 군사기밀을 탐지하고 학원소요를 유도하려던 윤정헌(31.고려대 의학과 3년) 등 6개 간첩망 6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보안사는 또 군사기밀을 누설한 서병윤(46.전 해군 준위)을 불구속 입건하고 이들을 신고하지 않은 관련자 6명을 훈방조치했다고 밝혔다. 보안사는 “북괴는 이미 미주-동남아 등지의 해외거점을 활성화하여 해외교포 2세 학생들을 포섭하고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켜 학원소요를 일으키게 하고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토록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국민 모두의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북괴의 적화야욕을 분쇄할 것”을 당부했다. 간첩 6명의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중략) 서경윤(39.무직)=취업차 일본으로 밀항, 고모인 조총련 간부(서상화)에게 포섭돼 해군 군항기지 내 주요시설, 기지내 경비상황, 해안초소 경계태세 등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했다.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서경윤 씨가 연루됐던 사건 관련 기사. 1984년 10월 13일 동아일보(사진 왼쪽)와 14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6개망 간첩단 사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동아일보 = [간첩 6개망 6명 검거] (중략) 간첩 서경윤은 69년 1월 일본 오사카에 사는 당숙을 찾아 일본에 밀항했다가 친척들을 통해 조총련 공작지도원 서상화에게 포섭돼 군사기밀 탐지 등의 지령을 받고 70년 6월 귀국, 당시 해군 상사인 친형 서병윤(46)을 통해 진해 해군기지의 주요시설 함정 동향 등 각종 군사정보를 수집, 보고. 73년 1월과 81년 5월 두 차례나 일본에 밀항해 김해공항의 사정 등을 탐지, 보고.▲조선일보 = [간첩 6개망 6명 구속] 국군보안사령부는 13일 북괴지령에 따라 재일동포 모국유학생으로 가장하여 국내에 침투, 군사기밀을 탐지하고 학원소요를 유도하려던 윤정헌(31.고려대 의학과 3년) 등 6개 간첩망 6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보안사는 또 군사기밀을 누설한 서병윤(46.전 해군 준위)을 불구속 입건하고 이들을 신고하지 않은 관련자 6명을 훈방조치했다고 밝혔다. 보안사는 “북괴는 이미 미주-동남아 등지의 해외거점을 활성화하여 해외교포 2세 학생들을 포섭하고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켜 학원소요를 일으키게 하고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토록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국민 모두의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북괴의 적화야욕을 분쇄할 것”을 당부했다. 간첩 6명의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중략) 서경윤(39.무직)=취업차 일본으로 밀항, 고모인 조총련 간부(서상화)에게 포섭돼 해군 군항기지 내 주요시설, 기지내 경비상황, 해안초소 경계태세 등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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