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986년 공안당국 끌려가 고문 받은 강광보씨 찾아

강병삼 제주시장(사진 오른쪽)과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광보 씨. 강 시장은 27일 강광보 씨를 찾아 위로했다. 사진=제주시.
강병삼 제주시장(사진 오른쪽)과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광보 씨. 강 시장은 27일 강광보 씨를 찾아 위로했다. 사진=제주시.

강병삼 제주시장이 불법적인 힘으로 권력을 움켜쥔 군사독재정권의 만행,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만나 억울한 그의 삶을 위로했다.

강 시장은 27일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강광보 씨가 운영하는 ‘수상한 집 광보네’를 방문해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겪은 그를 위로했다. 

강광보 씨는 일거리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붙잡혀 강제 송환된 이후 1979년 공안당국에 끌려갔다. 

공안당국은 일본에 사는 큰아버지가 조총련 소속이니 간첩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는 등 고문을 가했다가 박정희가 암살당하자 풀어줬다. 그러나 1986년 그를 다시 끌고 간 뒤 가족을 협박하고 고문하는 등 악랄한 행위 끝에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군사독재정권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일본을 오간 수많은 제주도민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피해자 증언뿐만 아니라 인구 1%인 제주도에서 나온 간첩만 전체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제주도는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어 4.3당시 피바람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해 목숨을 부지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일본행을 택한 도민들이 많았다. 1980년대까지도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밀항이 잦았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와 (사)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가 발간한 ‘2022년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심층 인터뷰가 이뤄진 12명 가운데 10명이 일본과 관계됐다. 

강광보 씨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으며, 지난 2017년 재심을 청구해 31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자택을 개조해 전국 처음으로 조작간첩을 비롯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기억 공간 ‘수상한 집’을 만들었다.

강광보 씨가 운영하는 수상한집 내부 모습. 사진=제주시.
강광보 씨가 운영하는 수상한집 내부 모습. 사진=제주시.

당시 강광보 씨 간첩조작사건에 엮인 피해자도 있었다. 10촌 동생인 강병선 씨는 이 사건에 연루돼 무차별적인 고문을 받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강광보 씨와는 초등학교 시절 문중 벌초 때 얼굴 번 적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이처럼 군사독재정권은 어떻게든 죄를 만들기 위해 각종 고문을 통해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재판에 넘겨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징역형이 선고됐기에 증거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故김두홍 씨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고인은 초청받아 다녀온 일본 여행 이후 공안당국에 끌려가 조총련을 만났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받고 자백으로 한순간에 간첩이 됐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국가의 잘못으로 모진 고문과 옥살이로 억울하고 황당한 강광보 씨의 피폐한 삶에 진심어린 위로를 전한다”며 “더이상 국가 권력에 의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만들기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광보 씨가 운영하는 수상한집 외부 전경. 사진=제주시.
강광보 씨가 운영하는 수상한집 외부 전경. 사진=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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