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형 행정구역 개편안 설왕설래, 도지사-국회의원-도의원 입장차 미묘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구역 모델로 현 국회의원 선거구를 적용한 '3개 행정구역 개편안'과 기존 제주시·서귀포시를 포함해 동제주군·서제주군을 나누는 '4개 행정구역 개편안'이 유력 대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셈법도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행정체제 개편 작업이 당장 다음 지방선거부터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다보니, 어떤 방식으로 나뉘는지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입는 당사자들의 입장도 미묘하게 엇갈리면서다.

지역정가에서는 나이 50대의 창창한 도지사, 국회의원으로서는 행정체제 구역 분할에 따라 잠재적인 미래 경쟁자를 키우는 구조라는 점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다.

◇ 3개 국회의원 선거구 적용안, 지역형평성-정체성 확보 장점

3개 단체를 두는 국회의원 선거구 대안의 경우 인구기준에 따라 지역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서귀포시를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제주시를 분리하며 지역 정체성도 일정수준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기존 '제주시 갑' 선거구는 그대로 서제주시, '제주시 을' 선거구는 동제주시로 치환되기 때문에 지역 정체성도 일정 수준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녔다. 

반면, 제주시가 동서로 분할되면서 생활권의 분리로 행정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큰 맹점이다. 당장 제주시 중앙로를 중심으로 서쪽의 삼도동·오라동과 동쪽의 이도동이 갈리며 정착 과정에서의 혼란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국회의원 선거구 구역안이 적용되면 인구는 서제주시 25만6000명, 동제주시 23만7389명, 서귀포시 18만4770명으로으로 인구편차는 3만6943명이 된다. 면적은 서제주시 488.62㎢, 동제주시 490.10㎢, 서귀포시 871.56㎢로 분할된다. 

세수는 지역별 편차가 상대적으로 크다. 서제주시 5344억6200만원, 동제주시 2923억3500만원, 서귀포시 3137억9300만원으로 나뉜다. 면적과 인구수를 기준으로 나뉘다보니 동쪽보다 서쪽의 산업구조가 앞서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회의원 선거구 적용안이 지닌 메리트 중 하나는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다. 용역진은 이 안을 적용할 시 동제주시청사는 기존 제주시청사를, 서제주시청사는 옛 제주경찰청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선거 관리비용 등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 4개 시군 분리안, 정치민주성 목적 부합-행정구역 기형성 극복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유지하되, 서쪽 읍면지역은 '서제주군', 동쪽 읍면지역은 '동제주군'으로 묶는 4개 시군 구역안도 정치민주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력하게 꼽힌다.

애초에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의 출발점이 도지사에게 몰린 권력을 나누고, 행정기관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3개 선거구보다 4개 선거구가 목적성에 더 부합하는 안이다. 행정구역의 기형성을 보다 덜 훼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녔다.

다만, 이 경우 서쪽으로는 기존 제주시로 묶였던 '한림-애월-한경' 지역과 서귀포시 '대정-안덕' 지역, 동쪽으로는 '조천-구좌' 지역과 '성산-표선-남원' 지역 간 동질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 지가 관건이다.

또 도시와 농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다는 이점과 도농 격차가 더 극심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양면성도 지니고 있다.

동서분리를 기준으로 한 4개 행정구역안이 적용될 시 인구는 제주시 38만754명, 서귀포시 10만3643명, 동제주군 8만9286명, 서제주군 10만4476명으로 나뉘고, 인구편차는 14만982명이 된다.

세수 형평성은 제주시 5181억8000만원, 서귀포시 1444억5200만원, 동제주군 1636억2800만원, 서제주군 3143억400만원으로 세수 편차는 1729억3200만원이다. 가장 많은 인구와 세수가 배분되는 제주시가 두드러지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된다.

◇ 3개구역은 '국회의원 후보', 4개구역은 '도지사 후보' 양성?

몇 개 구역으로 나뉘어지는지에 따라 장단도 갈리며,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될 정치권의 셈법 역시 복잡하다.

우선 3개 선거구의 경우 당장 현역 국회의원에겐 마뜩찮은 대안이다. 선거구가 일치한다는 것은 즉, 가장 큰 경쟁자를 옆에 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초자치단체장이 가진 권한은 국회의원의 활동 반경보다 넓기 마련이다. 행정적 권한을 발휘한다면 지역 민원을 해결하기에도 용이하고, 비선거 기간에도 시장의 행동 하나하나는 곧 선거운동과 직결되기도 한다.

당장 행정체제 개편에 있어 국회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주민투표 등의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3개 선거구안은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4개 선거구안은 도지사에게 직접적인 부담을 안기는 구조다. 인구 40만명에 육박하는 제주시의 수장은 곧 다음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선거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명이 제주도지사직을 나눠가지며 이른바 '제주판 3김' 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당시 제주시장을 지내며 인정받은 성과로 도지사가 된 것이 그 선례다.

특별자치도 출범 시기를 겪었던 원로 인사 A씨는 "오영훈 지사가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며 행정체제 개편에 속도를 낸 것은 높이 평가한다. 지역 정치로만 보면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라면서도 "얽혀있는 이들은 내심 지금 흘러가는 상황에 머리가 복잡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야권의 정치권 인사 B씨는 "같은 당 도지사, 국회의원에 도의회도 다수당이다보니 서로 대놓고 드러내진 못하겠지만, 신경은 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오 지사가 지속적으로 5~6개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겠나 싶다"고 피력했다.

◇ 기초의회 부활 시 41명 정수...제주도의원 정수는 45→22석 감소

작게는 광역의회 의원들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현재 제주도의회 의원 정수는 45석으로, 기초의회가 없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세분화 된 구조다.

다음 선거에서 일몰을 앞두고 있는 교육의원을 제하더라도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가 부활하게 되면 제주도의회 정수 역시 대폭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용역진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의원 1인당 대표인구를 평균 1만6668명으로 잡고, 현재 제주도 주민등록 인구 67만6489명을 고려하면 약 41명의 기초의원 선출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제주도의회 의원은 현재 45명에서 22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봤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제주도의원 선거구가 총 16개였다는 점을 역산한 결과다.

향후 선거구 책정에 따라 증감이 발생할 수 있지만, 광역의원 정수 감소는 필연적으로 뒤따를 전망이다.

현역 제주도의회 C의원은 "상황에 따라 읍면지역 의원들은 영향이 덜하고, 제주시내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더 민감할 수 있다"며 "적어도 의회가 사적 이익에 따라 행정체제 개편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 다른 D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정치를 그만뒀으면 그만뒀지, 기초의원으로 다시 전향할 생각은 크지 않다"며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생계형으로 정치권에 머무르는 분들은 타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 2개-5개 행정구역안은 배제 유력...도민참여단 판단 관건

현재 흐름대로면 2개 행정구역안과 5개 행정구역안은 후보에 상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용역진은 2개 행정구역안의 경우 행정체제 개편의 목적인 주민평의성과 주민참여성의 구현이 미흡하고, 인구 및 각종 편의시설의 편중으로 지역 균형성 확보가 곤란하다는 문제를 들었다. 

또 행정구역 과소로 인해 지역경쟁 촉진기반이 미흡했다며 최종대안 판단 시에는 비교대상으로 대안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배제 사유를 설명했다.

5개 행정구역 분리안과 관련해서는 기존 4개 분리안에서 제주시만 2개로 나눠야 하는데, 제주시의 분할로 동일 도시생활권 단절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도농복합시가 아닌 일반시의 구역분할 전례가 없을뿐더러 행정구역 설계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이번 중간보고회와 도민경청회 등의 일정을 거쳐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도민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다음달 중 제3~4차 도민참여단 숙의토론회를 통해 제주형 행정체제 후보 대안을 선정할 계획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빠듯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속내가 복잡해진 정치권에서도 어떤 목소리가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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