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현장 보존 못해...구체적 범행동기-시신행방 여전히 '미궁'

7일 취재진에 얼굴을 드러낸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 ⓒ제주의소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과 관련 경찰의 미흡한 초동 수사 등이 도마에 올랐다.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현장 인근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경찰이 아닌 유가족이 찾아내는가 하면 사건 현장 보존도 사실상 손을 놓았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제주시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고유정(37.여)에 대해 일주일째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동선, 범행 동기 등에 있어 유의미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사 초기 당시 핵심적인 증거들을 놓치거나 보존하지 못하는 등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됐다.

먼저, 고유정의 범행 동선을 파악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CCTV 영상은 경찰이 아닌 피해자의 유가인 A씨가 직접 경찰에 찾아줬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 신고된 지 3일만이었다.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 ⓒ제주의소리

피해자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 것은 지난달 27일이고, A씨가 CCTV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같은달 29일이었다. 그 사이 고유정은 28일 오후 8시30분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떠났다. 피해자의 시신은 이 뱃길에서 유기됐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문제의 CCTV에는 고유정이 피해자와 함께 펜션에 들어간 뒤 이틀 뒤 홀로 빠져 나오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최초 경찰이 해당 CCTV를 입수해 용의자를 특정했다면 시신이 유기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범행 현장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해 빈축을 사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단순 실종사고가 아닌 강력범죄임을 인지한 지난달 31일 해당 펜션에서 혈흔 반응 검사인 '루미놀 검사'를 진행했고, 치사량을 넘어서는 피해자의 혈흔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튿날 펜션 주인이 표백제를 이용해 범행 현장을 청소하면서 혈흔 등의 증거는 현재 지워진 상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해당 펜션에는 출입을 저지하는 '폴리스 라인' 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지난 2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청명재에서 박기남 서장 주재로 열린 사건브리핑. ⓒ제주의소리
지난 2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청명재에서 박기남 서장 주재로 열린 사건브리핑. ⓒ제주의소리

경찰은 고유정이 지속적으로 '우발적 범행'을 주장함에 따라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돼 현장검증을 생략하겠다고 밝혔지만,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범행 장소로 이용된 펜션 주인의 강력한 반발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사건은 고유정의 범행 방식이나 동기, 흉기의 출처, 시신의 행방 조차 여전히 안갯속이다.

경찰은 혈흔 분석 전문가 6명을 투입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펜션 내부에 광범위하게 흩어진 혈흔의 특징과 방향 등을 분석해 공격과 사망 지점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살해 방식은 특정 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자는 180cm, 80kg의 건장한 모습인 반면 고유정은 160cm, 50kg 가량으로 체격 차이가 크다.

경찰은 고씨의 범행 행태와 심리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해 프로파일러 5명도 투입해 면담을 진행 중이다. 다만 정신감정에 대한 계획은 아직 세우지 않았다.

또 고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시신 유기 가능성이 높은 여객선 항로와 완도항 인근, 경기도 김포 등에 수사력을 확대했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수사가 장기화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편, 동부서 관계자는 “피의자가 계속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지만 계획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며 “보강 수사를 진행해 12일쯤 사건을 검찰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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