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재심 개시에 앞서 재심 청구인 5명 진술

올해 5월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취재진 앞에 선 고태명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올해 5월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취재진 앞에 선 고태명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처음 진행되는 특별재심에 출석한 아흔살 고태명 할아버지가 판사에게 최선의 판단을 요구했다. 

15일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 심리로 4.3 당시 생존수형인 고태명(1932년생) 할아버지 등 34명이 청구한 재심사건 두 번째 심문절차가 진행됐다. 

재심을 청구한 34명은 4.3 광풍에 휩쓸려 국가보안법 위반과 포고령 위반, 내란실행방조, 방화연소 등 혐의로 일반·군사재판을 받은 피해자와 유족들이다. 

특별재심 개시 결정에 앞서 재심청구인 중 5명의 진술이 이뤄졌다. 5명은 4.3 광풍의 직접 피해자 고태명 할아버지와 4.3 피해자의 유족 3명, 조카 1명 등이다. 나머지 청구인들은 법정 진술을 서면으로 대체했다.

1932년에 태어나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살던 고 할아버지는 17살이던 1948년 4.3 광풍에 휩쓸렸다. 

당시 김녕중학교에 다니던 고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동복리장의 권유로 야학에서 교사 역할을 했다. 

그렇게 야학에서 글을 가르쳐 주는 과정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주민이 고 할아버지를 불러냈다. 그곳에는 고 할아버지를 포함해 고 할아버지를 불러낸 주민과 주민의 어머니, 또 자신을 하도리민이라고 하는 사람까지 총 4명이 있었다. 

처음 만난 하도리민과 대화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고 할아버지를 체포했다. 

고 할아버지는 자신을 체포한 경찰의 이름도 기억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체포된 고 할아버지는 겁이 나 경찰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제주 관덕정에 있던 제주경찰서로 끌려간 고 할아버지는 각종 고문에 시달렸다. 

어떤 날은 경찰이 각목으로 맞았고, 어느 날은 전기고문을 당했다. 또 다른 날은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에 막대기를 끼운 상태에서 무릎을 꿇어 허벅지를 짓밟힌 날도 있었다. 

계속되는 고문 속에 경찰은 “여성동맹위원장을 교육했느냐”,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느냐”며 자백을 강요했다.

고 할아버지가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할수록 경찰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고문의 강도를 높였다. 

일주일 이상 이어진 고문에 지친 고 할아버지는 경찰들이 하는 말에 “네, 네, 네”라고만 대답했다. 

그렇게 고 할아버지는 제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법정에서 고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안했다고 하면 계속 때렸다. 너무 힘들어 그냥 ‘네’라고 대답했다”고 호소했지만, 당시 판사와 검사 모두 “정말 아무것도 안했으면 아무리 때려도 ‘아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면서 고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난 고 할아버지는 제주시내에 살던 아버지 지인의 집에서 살다 부산으로 떠났다. 고향 구좌읍 동복리로 돌아오면 더 큰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고 할아버지 부모의 판단이었다. 

당시 사건 이후 고 할아버지는 다니던 김녕중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육지에서 생활하는 사이 고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음력 1948년 12월18일 4.3 광풍에 희생됐다. 

군 생활을 마치고, 고 할아버지는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경찰이 되면 17살 때 당했던 일을 다신 겪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합격 통지서를 들고 경찰전문학교로 향한 고 할아버지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폭도의 가족은 경찰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찰 합격이 취소된 것. 

4.3 광풍 속에 굴곡진 인생을 살던 고 할아버지는 4.3의 아픔으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다 20여년 전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이날 특별재심 심문기일에 출석해 진술하던 고 할아버지는 재심 청구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판결문을 처음 봤다고 증언했다. 

판결문에 고 할아버지는 북한의 인민 자위대 가입을 약속했고, 주변에 김일성 정부가 남하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 공소사실이 적혀 있었다. 또 1948년 7월에 경찰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망을 봐준 혐의 등이 적용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 할아버지는 곧바로 재판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판사님, 제가 정말 억울합니다. 어릴 때 (경찰에게) 잡혀 가서, 아무것도 안했는데 고문 등으로 했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일상생활도 힘듭니다. 판사님이 최선의 판단을 해주십시오”

고 할아버지에 이어 다른 4.3 피해자의 유족과 조카 등의 진술이 이어졌다. 

각종 증언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검찰 측은 재심 청구인들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당시와 이후 겪었던 고초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재심)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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