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 빈곤화 성장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Ⅰ.빈곤화 성장의 의의와 형성 원인 빈곤화성장(immiserizing growth)이란 나라 경제는 성장하는데 부(富)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양극화함으로써 다수 국민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기존의 시장원리로만은 해결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됨에따라 중산층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회사의 경영실적이 일취월장하고 있을 때도 ‘거안사위(居安思危)’를 곱씹으며 자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노심초사로 오히려 몸을 낮추며 겸허하게 자아를 성찰했다. 이러한 겸손과 긴장의 자세가 오늘날 삼성을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국민
지금 제주사회는 적자생존으로 대변되는 세계화라는 생태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과거 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내세워 주입된 왜곡된 폐쇄적 특성에 얽매여 특유의 진취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고주의(緣故主義) 향수에 더욱 깊숙이 빠지면서 모든 현안을 배타적이고 근시안적인 자기안위라는 틀로 재단하는 가치관의 틀 속에 갇혀 있다
한 때 세계 최강의 자리를 넘보던 일본경제가 장기간에 걸친 경기침체의 결과 2010년에는 세계 2위의 타이틀마저 중국에 맥없이 넘겨주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방사능 유출 등 미증유의 재앙으로 인해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위기의 일본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저출산 고령화’,
1980년대 일본 경제는 마치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것 처럼 기세등등했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40년 만에 막강한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일본의 저력을 보면서 당시 세계인들은 경탄했고, 일본 경제의 성공은 우리에겐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그랬던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초 자산버블의 붕괴와 함께 장기 침체에 빠져 제자리 걸음을 해 오다가 최근에는 미증
글로벌 시대를 맞아 무역장벽이 사라지면서 해외의 값싼 농산품들이 하루가 다르게 밀려들어오고 있다. 그 여파로 옛날 ‘천야지대본’이라 불리었던 농업은 기반이 초토화 되었고, 농민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식량공급의 생명줄인 농업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고, 또 농업이 환경보전 및 녹생성장 패러다임과 밀접한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고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핵심과제다. 고려시대의 ‘국자감’, 조선시대의 ‘성균관’ 같은 곳이 바로 국가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던 교육기관들이다. 국자감과 성균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국가는 생활비를 지원했고, 또 뛰어난
지난 1970년대 한국경제가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지속하자 당시 세계 언론들은 "한국 기업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수출전선의 선봉에서 승승장구하는 우리 기업들에 대해 찬사와 함께 위기의식을 표출했다.수출주도 성장정책은 부존자원과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로서는 선택 가능한 최선의 전략이었고 이에 발맞추어 정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네 삶의 아픈 기억들은 아득하게 희미해지며 미화되어, 실패한 과거라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그러나 아프고 고되었던 역사적 진실은 지워질 수 없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역사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변화하고 혁신하고 노력한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사멸되었다. 예전에는 10년이면 강
우리는 지금 세계화의 개방시대에서 생존경쟁의 갈림길을 눈앞에 두고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세계화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으로, 우리나라의 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우리국민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함으로써 경제도약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하며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로서는 개방화를 통한 양적・질적
예전에 “제주도청에 이메일로 투자의향서를 보냈는데 몇 개월 동안 열어 보지도 않았고, 또한 그간의 노력에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는 교육계의 원로 한 분의 볼멘소리를 들으며, “잘 받았다” “감사하다”라는 간단한 인사 한마디만이라도 친절을 베풀었다면, 건실한 제주의 후원자를 확보할 수도
조선조 때 한 고을에 두 서생이 서로 다른 성품으로 인해 확연히 구분되는 인생관을 갖고 있었다.위만 쳐다보고 사는 서생은 만사가 불만족이고 처지를 비관하며 항상 빙퉁그러졌고, 아래를 받아들이며 사는 서생은 만사가 만족하여 희희낙락하며 있는 것을 쪼개어 남을 도울 여유까지 있었다.어느 날 두 서생은 서로의 살림살이는 피장파장인데 어째서 면상은 전혀 딴판인지
한국 대학 개혁의 산실(産室)이며 표본인 KAIST의 서남표 총장을 퇴진시키려는 수구세력의 찻잔 속 반란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유기적인 사회 구조를 나의 작은 영육의 범위 내에서 사유를 해본다.흔히 육신은 습속이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으로 안주하여 외부의 자극과 변화를 거부하며 습관적인 답습으로 안일만을 꾀한다. 정신이 육신을 통제하고 유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