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동물테마파크 논란 선흘2리를 가다](1) 주민총의 절차 없는 7억원 '상생협약' 날치기 비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과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선흘곶자왈, 세계최초의 람사르습지도시로 선정된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평화롭던 이 마을에 '대규모 동물테마파크' 개발 광풍이 불며 주민 간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마을 이장 등 일부 주민이 사업자 측과 거액의 마을발전기금을 댓가로 하는 소위 '날치기' 상생협약을 체결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주민갈등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민주적 주민총의 절차없이 일부 주민들이 밀어붙이며 마을공동체를 파괴한 강정 제주해군기지 사태가 연상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조성사업은 대명그룹이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곶자왈 인근 58만㎡ 부지에 사자·호랑이·코끼리 등 20여종 500여 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관람하는 시설과 4층 규모의 호텔 120실(9413㎡), 글램핑장, 사육사 등을 조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초 2007년 개발 사업 승인을 얻은 이후 재정난 등으로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해 2011년 공사가 중단됐다가 2016년 대명그룹으로 사업권이 넘어간 뒤 재추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사 중단 이후 7년이 경과하면 환경영향평가를 새롭게 받아야한다는 규정을 피해 6년 11개월만에 공사를 재개하는 등 꼼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세계 최초 람사르습지도시에 빛나는 조천읍 일대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적정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제주동물테마파크는 추진 과정에서부터 지역 주민들과의 정당한 협의 없이 강행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 동물테마파크 대책위→반대위 전환...다수의 주민들 '반대' 의지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을 두고 주민 간 갈등이 비화된 것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흘2리마을회가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 재추진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지난해 3월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 이후 같은해 5월 16일 열린 마을총회에서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갑작스레 마련됐고, 이 자리에서 마을 차원의 대책위원회가 긴급 구성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책위는 찬성 또는 반대 성격을 지니지 않고 주민들의 총의를 모으기 위한 성격으로 구성된 협의체였다. 사업의 행정적 절차가 진행되기 전에 주민들의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문제는 대책위에 참여한 마을 개발위원회 임원들과 이장 등이 사업자측과 만남을 가지면서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일종의 '딜'을 하면서 불거졌다. 최초에는 5억원 플러스 알파(+α)라는 구체안이 사업자측과 오갔고, 마을 개발위원회에서 승인 여부가 다뤄지기까지 했다.
이에 다수의 주민들은 '마을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지, 누가 대책위에게 협의를 해오라고 했느냐'는 취지로 대책위의 행보를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사업 절차가 진행되기 전에 임시 총회라도 열어 주민들의 총의를 모을 것을 요구했다.
이듬해 1월이 되어서야 열린 정기총회에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거셌고, 대책위는 보다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공식 명칭을 '반대위원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지난 4월 9일 열린 마을 임시총회에서도 동물테마파크 사업의 찬반에 대해 표결에 부친 결과, 반대 107명, 찬성 17명으로 77.8%의 주민들이 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넉달전 '동물테마파크 중단' 외친 마을 이장, 밀실 '7억원 상생협약'에 날인
그러던 중 주민들의 총의를 대변해야 할 위치에 있는 마을 이장이 독단적으로 사업자측과 협약을 맺으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정 모 이장이 지난 26일 사업자인 대명 측과 7억원의 마을발전기금을 지급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생방안 협약서'를 체결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다.
논란이 된 협약서에는 '사업자는 사업 조성과정 및 사업장 운영시 주민들의 고충과 민원이 발생할 경우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마을회는 동물테마파크의 지연된 사업의 신속한 재개를 위해 행정절차상의 인허가, 급수공급 관련 협의, 지역사회와의 협의 등 행정관청, 언론, 유관단체 등과의 실무진행 지원에 의무를 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대내외 민원 및 이슈사항에 대한 지역민의 협조의견 전달 △지역 인력 및 개발 자원의 조성공사 및 운영참여 △공사 진행 및 운영 과정에서의 모니터링과 상생적 협업 △동물테마파크 사업장의 직원들을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어울릴 수 있게 노력하는 일 등 구체적인 협조 의무조항을 명시하기도 했다.
협약서에 명시된 마을발전기금 7억원이라는 금액이 어떻게 산정됐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 이장은 "독단적이라면 독단적일 수는 있는데, 제주동물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마을 내에서도 찬반이 양론화 된 문제다. 이장으로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며 "이장으로서의 권한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번복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아한 것은 지난 3월 선흘2리마을회 명의로 진행된 '동물테마파크 중단 촉구' 기자회견장 전면에 정 이장이 서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정 이장은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한 사업자 측의 꼼수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투자유치라는 이름으로 사기업의 돈벌이를 지원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업계획서를 포함해 환경영향평가 변경심의 및 인허가 과정 전반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고, 공청회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당사자였다.
넉 달이 지나는 현 시점까지 이 같은 요구조건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정 이장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지적이다.
◇ '심의 조건' 피하기 위한 꼼수..."강정 날치기 사태와 흡사"
민주적인 주민총의 확인 절차가 없었기에 주민들의 반발이 익히 예상됐음에도 사업자와 이장 간 '밀실협약'이 이뤄진 배경에는 지난 4월 12일 열린 환경보전방안검토서(보완서) 심사위원회가 내건 조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심의위는 환경보전방안 이행과 지역 상생 등 주민협의를 원만히 할 것과 람사르습지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치라는 보완사항을 내걸고 사업을 '조건부 통과'시켰다. 이날 심의는 사업 승인을 위한 사실상의 마지막 행정절차였다. 즉, 주민협의라는 과제만 해결되면 사업의 걸림돌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8월까지 사업 인허가 절차를 완료하고 10월부터 착공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지닌 사업자 측은 결국 정 이장과 소리 소문없는 만남을 갖고 상생협약을 체결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의 의사를 결정하는 절차는 일절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흥삼 제주동물테마파크 선흘2리 반대위원회 위원장은 [제주의소리]와 만난 자리에서 "마을회의 공식적인 절차 없이 이장이 독단적으로 체결한 협약이 어떻게 효력을 지닐 수 있겠나. 고작 7억원에 마을을 팔아먹기 위해 기습적으로 체결한 협약서는 원천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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