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5주년] 총리 대독 尹대통령 추념사, 원론적 입장뿐 실천의지 없어
당선인 시절 추념사와 대동소이...문재인 전 정권 추념사와도 대조
대통령 불참의 아쉬움을 달랠 것으로 기대됐던 윤석열 정부의 첫 4.3추념사가 내용이나 분량에 있어서도 도민사회의 염원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이 담겼을 뿐, 무엇을 하겠다는 실천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은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통상 업무'를 이유로 참석치 않았다. 보수정권 첫 대통령 참석이 불발된 올해 추념식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해 윤 대통령의 추념사를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국민과 함께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며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자유와 인권이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곳 제주가 보편적 가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저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여러분께서 소중히 지켜온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승화시켜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추념사 전체를 통틀어 4.3과 관련된 내용은 이 뿐이었다는 점이다. 글자 수 600자를 겨우 넘긴 추념사의 나머지 절반은 '문화관광 활성화'나 'IT콘텐츠', '디지털 기업 육성' 등 4.3과 별다른 연관이 없는 다소 생뚱맞은 단어들로 채워졌다.
무엇보다 4.3의 넋을 보듬겠다는 약속과는 별개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부연설명도 담기지 않았다. 하다못해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했던 4.3희생자·유족에 대한 복지 확충과 같은 기본적인 약속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 유족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추념사 도중 'IT', '반도체'와 같은 표현이 나오자 곳곳에서 한숨과 나즈막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고, 자리에서 일어나 추념식장을 떠나는 이들까지 목격됐다.
올해 윤 대통령의 추념사는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했던 지난해 추념사와도 대동소이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는 표현이 고스란히 다시 쓰였다. 추념사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도 유사했다. 한 해 사이에 바뀐 것은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에서 대통령이 됐다는 것 뿐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추념사는 사사건건 비교 대상이기를 자처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도 선명한 차이를 보였다.
임기 5년 중 3번을 참석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4.3추념사를 돌아보면 2018년 70주년 추념사는 2700자, 2020년 72주년 추념사는 3200자, 2021년 73주년 추념사는 2700자로 구성됐다. 심지어 2019년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해 낭독한 추념사의 분량도 1500자에 달했다.
단순 분량을 떠나 추념사의 내용도 4.3희생자·유족을 향한 위로와 국가폭력에 따른 사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공약과 실천 의지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실제 2018년 공언했던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 4.3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의 현안을 비롯해 2020년 지원을 약속한 4.3특별법 개정 등도 임기 중 마무리지은 바 있다.
한편, 대통령실은 추념식 전날 대통령실 출입기자단과의 대화에서 윤 대통령의 4.3추념식 불참과 관련 "지난해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했고, 같은 행사에 매년 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며 "올해는 총리가 가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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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추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국민과 함께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정부는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생존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보듬어 나갈 것입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자유와 인권이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곳 제주가 보편적 가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번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저와 정부,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 있습니다. 저는 제주를 자연, 문화, 그리고 역사와 함께 하는 격조 있는 문화 관광 지역, 청정의 자연과 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보석 같은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품격 있는 문화 관광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콘텐츠 시대입니다. IT 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제주에서 활약하고, 세계의 인재들이 제주로 모여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제주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무고한 4·3 희생자들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는 저의 약속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소중히 지켜온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승화시켜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3년 4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윤 석 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