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5주년] 행불인 유족들 “학살당한 양민들에게 이념 어디있나” 일갈

“4.3 폄훼 정치인, 서북청년단...유족 입장들 생각해보라!”

“제주4.3 유족들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정치인들, 다시 등장한 서북청년단은 4.3 유족들 입장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어떻게 자기들 주장만 하고 있나요.”

1950년 7월 대구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숙부님을 30여년 모신 제주도민 이모 씨는 복받치는 울분과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이야기했다.

제75주년 4.3 추념식날 대구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숙부 고 이동오 씨를 모시는 이모씨.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75주년 4.3 추념식날 대구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숙부 고 이동오 씨를 모시는 이모씨.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75주년 4.3 추념식이 열린 3일 오전, 영남지역 행불인희생자 지역에서 만난 그는, 숙부 故 이동오 씨의 제사상을 홀로 차렸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가족이지만, 그가 30년 넘게 숙부를 기억하는 이유는 생전 할머님의 간곡한 당부였다.

“정말 복받치는 것은, 작은 아버지(이동오)와 같은 혐의로 대구로 끌려간 동네 분이 계세요. 그 분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돌아오셨는데, 언젠가 그 분이 찾아오신 적이 있으십니다. 할머니, 아버지, 저 포함 가족들이 있는 앞에서 ‘작은 아버지(이동오)는 살아 돌아올 일이 거의 없을 겁니다. 부디 잘 모셔달라’로 당부하셨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그 기억만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 짓습니다.”

작은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할머니의 한은 깊었다. 시신 없는 가묘를 차리고, 손자에게 남은 시간을 부탁한다고 신신당부할 만큼. 이씨가 올해도 4월 3일 평화공원을 찾는 이유다.

그는 최근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들쑤신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과 망령과도 같은 서북청년단에 대해 분개했다.

“그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유족 입장에서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자기주장만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70여년 전 제주에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이념 이런 게 었었나요.”

4.3평화공원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비.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4.3평화공원 행방불명희생자 위령비.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1948년생 표선면 출신 오모씨는 자신이 갓난아기 때, 군인들에게 끌려가 그 이후로 행방불명된 아버지(故 오만석)를 위해 오늘도 평화공원을 찾았다.

훌쩍 큰 손녀까지 둘 만큼 아버지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뿐이다. 아버지는 경인지역 행불인으로 구분됐지만, 알고 보니 그 마저도 불확실해 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그 역시 4.3폄훼 세력들을 향해 불만과 안타까움을 애써 정제해 표현했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4.3유족이라면 그들에 대한 마음은 다 마찬가지 일겁니다. 모든 유족들이요.”

1살 때 이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위해 4.3평화공원을 찾은 1948년생 오모씨(오른쪽)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1살 때 이후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위해 4.3평화공원을 찾은 1948년생 오모씨(오른쪽)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양윤학 씨(84)의 아버지(故 양달조 당시 36세)는 그가 8살 되던 해에 폭도들에게 쌀을 줬다는 이유로 토벌대에 끌려가 주정공장에 수용됐다. 이후 경인형무소에 수감된 아버지는 7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 씨는 “3일만 기다리면 돌아오겠다던 아버지는 74년 만에 표지석으로 돌아왔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4.3을 공산폭동이라 폄훼하는 이들을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75년 동안 조사한 결과 김일성과 남로당이 4.3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하나라도 있었나요. 지금도 저와 같이 연좌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4.3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희생자와 유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면 도저히 벌일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팔순이 넘는 양 씨가 보수정권 출범 후 더욱 노골적으로 4.3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극우성향 정당과 단체들을 향해 일갈을 날렸다.

양윤학 씨(84)가 8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의 표지석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양윤학 씨(84)가 8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의 표지석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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