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코 출신 건축 거장의 아시아 유일 일반 공개 작 '더 갤러리'
건물소유주vs토지소유주 의견차로 사라질 위기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 중 하나인 제주 서귀포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중문 컨벤션센터(ICC)의 앵커호텔인 ‘카사 델 아구아’는 호텔·콘도·문화공간을 갖춘 복합레지던스로 2007년 기공에 들어갔다. ‘더 갤러리’는 호텔을 짓기에 앞서 앵커호텔 홍보관 겸 모델하우스로 2009년 3월에 지어졌다.
설계를 맡은 맥시코 출신 건축가 레고레타는 세계 지역주의 건축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답게 전 세계 곳곳에 지역적인 요소와 보편적인 예술감각을 섞어낸 작품을 남겼다. 사람이 편해야 좋은 건물이라는 지론을 고집했던 레고레타. ‘보편성을 가진 동시에 지역성을 가진 건축가’라는 평을 받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내는 한편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제건축가연맹(UIA)상을 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물의 집이라는 뜻인 ‘카사 델 아구아’는 빛과 색, 물로 설명되는 레고레타 특유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극도로 조형을 단순화한 디자인과 중남미풍의 강렬한 색감,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가 잘 어우러졌다. 제주의 자연을 헝클어뜨리지 않고 조화롭게 배치돼 더욱 눈길을 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하우스’이라 불릴 정도로 레고레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2011년 레고레타가 세상을 뜨면서 이 건물은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아시아에 둘뿐인 그의 작품 중 나머지는 개인 주택(일본)이어서 내부가 공개되지 않는다. 때문에 건축학도 사이에선 견학 코스로도 이용돼왔다.

‘더 갤러리’는 본건물인 콘도와 호텔 ‘카사 델 아구아’ 건설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시행사인 제이아이디(JID)와 시공사 금호건설의 갈등과 자금난에 맞물리면서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이 와중에 지난해 토지주가 ㈜부영주택으로 바뀌면서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제이아이디는 ‘더 갤러리’를 모델하우스가 아닌 VIP룸으로 쓰기 위해 지었다. 따라서 임시건물 상태인채로 2년마다 사용승인을 연장해왔다. 지난해 6월 (주)아시아신탁과 (주)부영주택이 콘도와 호텔을 인수하면서 ‘더 갤러리’ 건물을 인수대상에서 제외한데서 문제가 시작됐다.
부영은 올 9월 개최될 세계자연보전총회에 맞춰 건축물을 철거한 뒤 공원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서귀포시는 더 갤러리 건물 소유주인 제이아이디 쪽에 최근 행정대집행 영장을 발송했다. 제이아이디가 철거집행 중지 가처분을 신청해 일단은 철거가 중단된 상태다.
서귀포시 건축과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당시 사용승인을 갱신하면 철거명령은 내리지 않았을 텐데 제이디아이측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제이디아이 조강원 대표는 “지난해 6월 앵커호텔 건설을 이을 후속사업자가 정해지던 때 ‘더 갤러리’도 당연히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승인을 갱신할 필요가 없었다. 부영과도 구두로나마 합의가 된 상태였기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토지소유주가 아닌 서귀포시를 통해 철거 소식을 듣게 돼 더욱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공평갤러리 심영진 아트디렉터는 “‘더 갤러리’는 건축가가 지은 아시아 유일의 작품으로 그 보존가치가 충분하다. 한 기업의 금전적인 논리가 아닌 세계적 가치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보존만 제대로 하더라도 국내외 건축학도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텐데 반드시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