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전 회장(워싱턴도민회 고문, 64세)을 만난 것은 지난 10월 16일 오후 5시경. 그의 오토바디 회사에서다. 연간 매출 300만불(30억)을 올리는 회사 사장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각종 기계공구로 가득찬 공간. 김고문의 복장 또한 방금까지도 작업현장에서 일했던 폼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모습.


이 회사에서 연간 3백만불의 매출을 올린다. 그것도 단 12명의 직원이. 최소 23명 정도는 되야 하는데 이 숫자로 이정도 매출 올리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비결은 무얼까?
“효율적으로 직원을 배치하면 가능합니다. 또한 숫자가 적은 대신 월급을 많이 주지요. 우리 회사의 탑 바디맨이 연봉 20만불, 메니저가 연봉 10만불 정도 됩니다” 김고문의 얘기다.
이러한 회사로 성장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고문의 부친은 제주에서 ‘동방택시’를 운영하던 김찬수(95년 작고)씨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와 인연이 깊은 셈이다. 43년생으로, 당시 7살 나이에 겪은 4.3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북초등교를 졸업(46회)한 후 서울로 상경 이모집에 살면서 성동 중고교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67년)했다. 이후 ROTC 장교로 2년간 군생활을 마친 후 서울 한양공고 자동차과에서 3년동안 교편생활을 했다. 당시 김고문은 학교 뿐만 아니라 차량정비기술학원에서 정비 주임을 맡아, 당시 월남이나 중동등 해외기술자 취업을 위한 노동청 2·3급 자격증 취득반 과정을 가르쳤다. 그래서 수입도 꽤 짭짤했다.

“이 양심도 없는 친구야. 네가 어떻게 자동차 기술을 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나? 원시적인 방법으로 자동차 수리 방법을 가르치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종주국인 미국에 와서 배워라. 오려면 학생으로 오지 말고 ‘자격이민’으로 와라...”
충격이었다. 자존심도 상했고...고민 끝에 일단 수속 신청을 했다. 경력이 믿을만 했는지 한달 만에 비자가 발급됐다. 그게 69년이다. 비자가 나온 이후에도 몇 년 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국내에 머물렀다. 언급했듯 당시 김고문은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고, 막상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에 가려니 겁이 난 것. 72년 말이 비자 만기가 되는 시기였는데 10일 남겨놓고서야 미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미국에 온 김고문은 처음 알렉산드리아 도요다 딜러의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게 된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여 밤 12시에 퇴근 할 정도로 다른 직원들 보다 3배나 더 일했는데도 보수는 똑같이 받는 등 인종차별을 당했다. 매니저가 유색인종을 싫어하는 이였다.
어딜 가나 차별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3년 동안 일하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독립하기로 결정한다.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작은 자동차정비공장을 차렸다. 처음 1년은 고생했다. 그러나 점차 단골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운영자금이 고갈돼 버렸다. 부속 살 돈 조차 없었다.

매니저가 돌아간 후 자동차를 살펴보았더니 예상 외로 간단한 문제였다. 단 하루 만에 차를를 완벽하게 수리하고 쿰스에게 갖고 가라고 연락했다. 요청한 수리비는 단 120불.
다음날 쿰스에게서 전화가 왔다. “Please come to my office again!"
은행에 찾아갔더니 자기 권한 하에서 2만불 대출을 해주겠다는 거다. 5년 내 상환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이 돈으로 리프트도 구입했다(당시는 이를 구입할 돈이 없어 일일이 트랜스로 차를 올렸었다. 당시 구입한 리프트는 아직도 쓰고 있다). 이러한 영화같은 스토리를 통해 지금의 ‘베스트 오토바디’ 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항상 정직해야 합니다. 항상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에 올 때 달랑 500불 갖고 들어왔어요...”
이렇게 오토바디 회사 경영을 통해 번 돈으로 부동산도 구입했다. 워싱턴 다운타운 부근에 1,800평 정도, 레스토랑으로 세 주고 연 20만불을 받고 있다, 또한 5에이커 6천여평 땅을 구입해 호텔을 지어볼까 구상도 하고 있다.
김고문은 딸만 셋이다. 첫째(Dohee Kim, 38세)와 둘째(Junhee Kim, 36세)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셋째(Enhee Kim, 35세)는 임신 중에 이민 와서 태어났다. 세 자매 모두 다 버지니아 최고 주립대학인 UVA를 졸업했다. 첫째는 사회학을, 둘째는 경제학을, 셋째는 산업사회학을 전공. (아래 사진 좌측 부터 아내, 막내, 첫째딸 순)

도희씨는 현재 카운티 도서관 부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대학원까지 졸업한 둘째 준희씨는 이비인후과 의사와 결혼하였고, 셋째 은희씨는 캘리포니아 소재 도요타 LA본사 트럭부문 매니저로 12년째 근무하고 있다.
김고문은 얘기한다. “재미있었고 보람있다. 지금 죽어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 I'm fine!"
제주에 전기자동차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김고문. “나중에 미국에서 번 돈을 제주에 투자하고 싶다”고 이어 얘기한다. 김고문의 새로운 도전이 조만간 제주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