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만인보⑦]서귀포시 표선면 천미천 현장을 가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이 통과된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제주에는 개발 광풍이 불어닥쳤습니다. 하지만 개발에 대한 이익과 환경파괴, 그리고 성찰은 없었습니다. 창간 7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와 20년이 된 <제주참여환경연대>, 그리고 <천주교 제주교구 생명특별위원회>는  특별기획으로 제주개발의 빛과 그림자를 현장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한라산 만인보'가 그 프로젝트입니다. 한라산 만인보(萬人步)는 '제주의 과거를 거슬러 미래를 밝히기 위한 만인의 행보'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올바른 제주개발의 대안과 방향성을 찾아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천미천 정비사업 구간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천미천’. 한라산 백록담 동쪽 돌오름에서 발원한 천미천은 길이가 27.5km로 제주시 조천읍과 구좌읍을 거쳐 서귀포시 표선면과 성산읍의 경계를 만들고 바다로 들어간다.

천미천 주변에 40여 개의 오름이 분포되어 있어 유로와 지형을 형성하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하류 해안선 부근의 하천 폭은 100m에 달할 정도로 매우 넓다.

천미천은 유역 면적이 125.14㎢로 제주지역 지방2급 하천 60개 중에서 가장 큰 하천이기도 하다. 유역면적만 볼 경우 국가하천 지정 50㎢ 기준 보다 갑절 이상 넓어 제주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국가하천으로 지정받을 수도 있다.

중장비로 용암석을 깨어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미천은 제주도의 모든 하천처럼 건천이지만 굴곡이 심해 아래로 흐리기도 하다가 금방 위로 올랐다가 옆으로 꺽이지기도 하는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이런 특성으로 천미천은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계곡과 물웅덩이에 물이 많아서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하지만 천미천은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해 표선면 성읍리와 하천리, 성산읍 신천리에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한다.

행정당국에서는 성읍리와 하천리, 신천리를 상습재해구역으로 설정,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천미천 일대 하천정비사업을 실시했다.

하천정비사업을 하며 깨어낸 용암석 자국. 1m가 훨씬 넘는다.
신천리와 하천리 하류 지역에 130억원, 성읍리 중류지역에 274억원 등 총 414억원(국비 60%, 지방비 40%)을 들여 11km 이상 하천정비를 했다.

하천정비사업은 방수로, 호안정비, 전석쌓기, 옹벽 설치 등 거창하지만 실상은 하천변에 있는 원시림을 베어내고, 수백만년에서 수천만년 사이에 형성된 용암석을 깨어내 하천 바닥을 평탄화하고, 깨어낸 암석으로 석축을 쌓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하천의 원형을 완전히 파괴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한라산 만인보> 답사팀이 지난 11일 성읍리 인근 천미천 중하류를 찾았을 때에는 모두 아연실색했다.

수해방지 명목으로 천미천 폭을 50m 이상 넓혀 놨을 뿐만 아니라 하천 바닥을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어 마치 넓은 도로를 만든 듯 했다.

하천 정비공사를 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주변에는 잡풀만 났고, 예덕나무와 자귀나무 등이 몇그루 있었을 뿐이었다. 성읍마을까지 2.5km 이상 상류로 올라갈 때까지 똑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천미천 정비사업은 굴곡있는 하천을 직강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천을 직강으로 만들면 집중호우 시 유속이 빨라져 범람 우려가 높고, 퇴적물이 쌓여 하천의 원형을 잃게 만든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형이 유지된 영주산 인근 천미천
천미천 정비사업은 성읍마을 천미교까지 진행됐고, 농어촌기반공사가 조성중인 영주산 인근 ‘성읍지구 농촌용수개발지구’까지 2km 구간은 원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원형이 보존된 천미천에는 사행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또 노루 발자국이 보이고, 뱀과 백로 등 야생동물들이 물을 먹고 가는 쉼터를 형성하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용암으로 형성된 각종 기암괴석과 야생식물 등 사람의 손 때를 타지 않은 태고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상류로 올라갈수록 하천정비사업으로 인해 내려온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천미천의 훼손되고 있었다.

농촌용수개발지구 구간부터 1km 가까이 하천정비사업이 진행돼 하류와 마찬가지로 옹벽이 쌓이고, 하천 바닥은 평평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하천정비가 수해예방이라는 치수목적에 국한시키면서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며 “원형이 보전된 곳과 하천정비사업이 진행된 곳의 생태계는 극과 극”이라고 말했다.

하천정비사업을 벌인 곳과 원형이 유지된 하천은 극과 극을 보여준다.
김홍구 오름보전지킴이 대표는 “하천 웅덩이에서 무더운 한여름에 멱을 감고, 개구리나 미꾸라지를 잡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며 “하천의 용암석을 모두 파헤쳐 평평하게 만들면서 예전의 추억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하천의 원형을 파괴하고 획일적인 단면과 직강화된 하천정비가 제주지역 대부분의 하천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식의 정비사업은 집중호우가 올 경우 유속을 더 빠르게 만들어 하류지역에서 범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