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칼럼] 앞뒤 바뀐 우근민 도정의 현실

며칠 전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세계7대 자연경관 D-34일입니다. 투표 많이 해주세요.’ 현업에 있었을 때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던 제주도청 공무원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자를 받은 순간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근민 도정의 핵심 과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 해결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문자는 해군이 구럼비 해안에서 시험 발파를 한 다음날 온 것이었다. 이날 제주도청은 이례적으로 긴급하게 움직였다. 보도자료를 통해 시험 발파 소식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해군의 일방적인 행태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제주도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언론들은 “제주도가 해군의 밀어붙이기식의 공사 강행을 강한 톤으로 나무랐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종교 단체와 교수 등 도내 각계의 여론에 비한다면 이 같은 제주도의 반응은 일종의 ‘면피용’이라는 의심을 사게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주의 소리 등 보도를 종합해보면 차우진 기획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가 요구하는 것은 15만톤 크루즈선의 자유로운 이용과 확실한 민항기능 보장, 예산 지원 등 크게 세 가지”라는 것이다. 단서 조항을 달았다. “10일 국회 소위 논의 결과를 보고나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이렇다. 여기서 우리는 제주도의 기본 입장을 읽어야 한다. 제주도는 적절한 예산지원과 정책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언제든 해군기지 건설 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루즈선 이용과 민항 기능은 단서조항이다. 관건은 예산지원이다. 그렇다면 예산규모가 문제다. 제주도가 해군기지 주변지역 발전사업과 관련해 정부에 우선 지원해달라고 요구한 액수는 1361억원이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 확실한 민항보장과 크루즈선 이용은 건설 단계에서 재협의할 수 있다는 정도의 협의만 정부와 이뤄진다면 제주도로서는 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예산지원이 거절된다면 제주도는 명분도 실리도 잃을 것이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명분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제주도의회의 반응이다. 문대림 도의회 의장은 구럼비 발파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도의회와 제주도가 한 배를 탈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시민단체와 야 5당은 제주특별법 개정으로 공유수면 점용·사용 승인과 취소권한이 제주도지사에게 있는 만큼 우근민 도지사가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제주도의회와 함께 보조를 맞춰달라는 압박이다.

 그렇다면 이제 제주도로 이관된 공유수면관리및매립에관한법률의 취소권한을 살펴봐야 한다. 법률에 따르면,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를 받은 자가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점용·사용허가를 받은 경우’ ‘허가사항을 위반한 경우’ ‘점용료·사용료를 내지 아니한 경우’ ‘사업의 일부 또는 전부가 폐지된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해군의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가 부정성 여부가 될 것이다. 해군측의 공유수면 점용·허가가 ‘거짓이나 주정한 방법을 허가를 받았느냐가’ 법률적 쟁점이 될 수 있다.

 이른바 2009년 4월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도 3자가 맺은 이중협약서가 ‘거짓이나 부정’이냐는 법률적 판단이 개입된다. 이른바 법률적으로 3자간의 협약서가 ‘위계’냐는 법률적 공방이 예상된다. 만약 현 상황에서 제주도가 공유수면 점용·사용허가를 취소한다면 해군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행정소송도 불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협약의 위계문제가 법정에서 다퉈질 것이다. 제주도가 승소할 가능성은. 예상하건대 지금의 제주도는 이러한 법정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우근민 지사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대화보다 서울행을 한 우근민 지사의 속내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우근민 지사의 정치적 입장일 텐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우근민 지사는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번도 정치적 해결의 주체를 자임한 적이 없다. 시민단체와 야 5당, 제주도의회만이 우근민 지사가 지사직을 걸고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형국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앞뒤가 안 맞는 형국이다. 여기서 일반론을 한번 생각해보자. 정부 국책사업이 추진된다. 지역의 반대여론이 드세게 일어난다. 자치단체장이 지역의 여론을 업고 정부와 협상한다. 정부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얻어내고 국책사업과 관련한 갈등을 마무리한다. 갈등 해결의 공은 자치단체장에게 돌아간다.

해군기지 건설 추지과정에서는 이런 프로세스의 한 축이 삐끗했다. 전임 김태환 도정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우근민 도정까지 지역의 여론을 등에 업고 협상의 파트너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중협약서 문제가 불거지면 그것은 전임 도정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해군이 구럼비에서 시험 발파를 하면, 향후 논의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이다.

▲ 김동현. ⓒ제주의소리
전현직 도지사가 중앙정부에 무슨 커다란 약점이라도 잡히지 않은 이상, 이런 어정쩡한 모습을 보일리는 만무할 일일 테고 도대체 무슨 내막이 있는 것일까. 정치력의 문제인가, 아니면 철학의 문제인가. 불행하게도 지금으로서는 둘 다 맞는 것 같다. 정치력도, 철학도 부재한, 오로지 미래 제주도를 먹여 살릴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모든 공무원을 내모는 우근민 도정의 ‘7대경관 승부’에 쏟는 열정의 10분지 1만 해군기지 문제에 쏟아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까. /김동현 국민대 대학원 박사과정(현대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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