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밥상 다른 세상] 서구식 식단과 리비히의 눈물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의 사망 통계를 분석해  '만성질환 글로벌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심장병, 뇌졸중, 암, 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한 해 3500만명이 죽어가고 이는 전체 사망자의 60%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 해 심근경색증·뇌졸중 등 심혈관질환(1753만명) 암(759만명)이 사망했다.  대표적인 전염병 에이즈(AIDS) 사망자 283만명을 압도한다.

국내에서도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가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섰다. 20세 이상 성인 3명 가운데 1명꼴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은 최근 5년간 뇌졸중 등 10세 이하 성인병 환자가 3만명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서구식 식단'을 지목한다. 과연 '서구식 식단'이란 무엇일까?

# 만성질환 주범은 서구식 식단

첫째, 육류와 가공식품 중심의 식단이다.
현재 동물성 식품은 미국은 전체 칼로리의 26% 영국은 27.5%를 섭취한다. 한국은 1969년만 해도 3% 정도인데 이제 20%를 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가공식품 섭취 비율은 58%와 63% 이다. 반면에 두 나라의 식물성 자연식품 섭취율은 모두  5%미만(감자를 제외한 경우)이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채소와 과일 1일 권장 섭취량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단지 6.7%에 불과했다. 김치를 제외한 채소는 30% 과일은 40% 수준이다.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는 인식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채소와 과일을 통한 영양 섭취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흰 쌀밥 흰 밀가루 등 탄수화물에서 얻는 칼로리를 40%로 잡고, 당에서 얻는 칼로리를 평균 15%로 잡는다면 통곡식이 아닌 정제 탄수화물로 하루 총 칼로리의 55%이상을  섭취한다. 여기에 무슨 영양이 있겠는가?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현대인의 식단은 비자연적인 것으로 전락했다.

둘째, 자연과 종의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 식단이다.
토양의 복잡함을 단지 질소 인 칼륨 세 가지 요소 화학비료로 대체했다. 식용으로 3000개의 종이 널리 쓰여 왔는데 오늘날 단지 곡물은 쌀 밀 콩 옥수수 4종만을 재배한다. 가축과 과일 채소도 대부분 단일 품종이 장악하고 있다. 저비용 대량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감자나  바나나 멸종위기에서 보듯 다양성을 잃은 단 하나의 품종은 그 품종에 천적인 전염병이 발생할 때, 음식 자체가 사라지거나 대규모 기아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무엇보다도 다양성은 동식물과 지구의 면역력에 해당한다. 다양성 결핍은 신종플루 등 인수공통 전염병과 환경파괴에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

셋째, 칼로리를 얻는 대신에 미량영양소는 포기한 식단이다.
고칼로리 저영양 즉 영양 불균형을 야기하는 식단이라는 말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의 식품정책은 단 한 가지, ‘어떻게 하면 싼 가격으로 대량의 칼로리를 공급할 것 인가’로 요약된다. 화학농으로 인해 예전에 1개의 사과가 갖던 철분을 얻으려면 이제 사과 3개를 먹어야 한다.

식품산업은 더욱 더 많이 팔기위해 소금 지방 설탕을 조합해 감칠 맛 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조작하고 먹보이론을 동원한다. 가공정제를 통해 영양을 파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몇 개 영양소를 첨가하고 기능성 식품을 광고한다.  미량 영양소가 부족한 사회는 중독성 배고픔을 일으켜 과식과 비만을 부추긴다. 전 세계적으로 16억 명 남짓한 사람들이 칼로리 과다섭취로 비만과 과체중 상태이다.

넷째. 식품과학이 음식문화를 압도하는 식단이다.
토양과 가축 그리고 인간의 건강은 연결된다는 음식에 대한 생태적 관점이 사라졌다. 옛날에는 국가적 민족 지역적 문화에 따라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했다. 거기에 생태적 시각이, 어머니가 있었다. 대개 집단의 음식문화를 계승한 인물은 어머니였다. 이제는 영양학과 식품과학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음식을 산업화한 결과 매년 17000개의 새로운 식품아 시장에 등장한다. 공장으로 부터 식품의 지식과 통제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우리의 밥상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것이 과연 진보일까?  음식은 일종의 의사소통체계이다. 음식과 음식을 생산하는 방식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관, 경제관, 사회관, 인간에 대한 개념,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생각 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서구식 식단은 생명과 산업간 ‘충돌’

현대사회의 합리성과 효율성 추구가 도살장 해체작업에 맨 처음 적용된다. 포드가 이를 목격하고 자동차 산업의 일괄공정 라인을 착안한다.  ‘포디즘’(Fordism)은 모든 산업분야 합리화의 상징이 되고 거꾸로 식품생산 전반에 변화를 일으킨다. 산업화 된 음식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맥도날드는 소비를 분석하여 마케팅에 그 원리를 최초로 적용시킨다. 이를 계기로  맥도날드와 햄버거가 산업화된 음식의 세계적 아이콘으로 우뚝 선다. 그리고 현대인의 삶과 사회 곳곳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불합리성’을 낳는다는 ‘맥도날드화’ 란 개념까지 등장한다.

우리의 음식과 식습관은 지난 50년간 그 이전의 만년 보다 더 변해 왔다. 만년 동안의 느린 변화에 익숙한 우리의 몸과 유전자에게도 이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한마디로 서구식 식단은 생명과 산업의 충돌이다.

한 때 인류는 합리성과 진보의 이름으로 서구식 식단을 권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서구식 성장모델을 추구하듯이 맹목적으로 서구식 식단을 뒤쫓고 있다. 소위 과학과 영양학이 이 작업을  주도했다.  화학비료의 아버지라는 과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동시에 최초의 인공이유식, 즉 영양학의 선구자였던 사실을 아는가. 셀 수 없는 무수한 미생물로 가득한 토양을 몇 개의 원소로 대신하듯  음식도 그저 몇 개의 원소,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류에게 크게 유익하리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대로  헌신했으나 말년에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신께 참회하며 눈을 감았다 한다.

괴테의 말처럼 '한 인간의 위대한 장점은 개인의 것이고 단점은 시대의 것이다'

▲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제주의소리 DB
이제 서구식 식단은 극복의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전통음식에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서구식 식단의 극복은 음식을 넘어 사고방식 즉 문화의 전환이기도 하다.

문명을 연구하는 석학들은 어찌하던 인류 문명이 이번 세대에 유쾌한 방법이던 불유쾌한 방법이던 결정될 것이라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외부효과와 늘어나는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가 새로운 식단에 반영되어야 한다. 인류는 식품과 인간 지구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하는  단 한번 뿐인 역사적 기회에 직면하고 있다. 그야말로 밥상혁명의 순간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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