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서도 스케이팅 "우리 선생님이 미쳤어요"
교무실에서도 스케이팅 "우리 선생님이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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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이웃] 스케이트 마니아 제주영주고 교사 전지환 씨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다. 앞의 ‘미친다’는 미친 사람(狂人)을 가리키고 뒤의 ‘미친다’는 도달한다는 뜻인 미칠 급(及)을 일컫는다. 어느 일을 이루려거든 미칠 만큼의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 고흐, 에디슨, 스티븐 잡스, 이른바 ‘괴짜’들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다. <제주의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미친’ 이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케이트 배우실래요?”

토요일 오후 제주시 탑동공원. 어린이들부터 중년 부부까지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웬 남성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뉴 스포츠를 즐겨요”라는 팻말이 그의 뒤를 받친다. 열 켤레는 족히 넘는 엑스라이더(스케이트의 한 종류)가 줄지어 놓여있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강습회를 연다고 했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 "스케이트의 매력이요? 몸 따라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갑니다" 제주영주고 교사인 전지환(53)씨.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주인공은 자타공인 ‘스케이트 마니아’ 제주영주고 컴퓨터 공업과 교사 전지환(53) 씨.

이 ‘무료 강습회’는 그가 부회장을 맡은 인터넷 게임 중독 및 퇴치 교사 연구회 ‘노리로’가 마련한 자리다. 초·중·고등학교, 특수학교 교사들이 게임 중독으로 미래를 잃는 청소년을 지키고자 모인 단체다 실제로 이들은 직접 게임을 해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보다 건강한 즐길 거리를 누리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전 씨는 인터넷 게임 중독 대안으로 ‘스케이트’에 주목했다. 컴퓨터 앞이 아닌 바깥으로 시선을 끄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단다. 작년 4월부터 주말이면 탑동에서 살다시피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로는 외국인에게 스케이트 타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 씨의 뜻을 전해들은 회원 선생님들이 “우리도 같이하자”며 나오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돈을 모아 기구도 샀다. ‘스케이팅 무료강습’ 팻말까지 갖다놓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청소년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1년간 주말교실을 스쳐지나간 청소년들이 1000여명에 이른다.

“위험할 거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균형 감각을 몸으로 깨우치고 나면 금방이에요. 게다가 안 쓰는 근육을 자극하니 이만한 운동이 없거든요. 모든 이에게 ‘강추(강력추천)’입니다”

▲ 엑스라이더를 배우러 온 초등학생에게 시범을 보이고 있는 전지환 씨.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생활체육 동아리를 맡아 ‘스케이팅’도 가르친다. 지난해부터 매 주말마다 전 씨를 따라 탑동에 나왔던 제자들은 대학 진학을 앞둔 3학년이 됐어도 토요일이면 여전히 그를 따라 나온다. 전 씨가 눈짓을 보내면 제자 셋이 나란히 스케이트에 올라탄다. 말이 오가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선생과 제자 사이를 넘어 스포츠로 다져진 ‘남자’간의 끈끈한 정이 엿보인다.

“나이가 어려 그런지 훨훨 난다니까요”라며 전 씨가 제자들을 가리켜 ‘청출어람’이라 표현했다. 점프는 기본이고 한 발로도 탄다. ‘사뿐’하게 땅에 닿으며 순식간에 현란한 묘기를 구사한다. 제자들의 묘기가 끝나자 전 씨가 나서 시범을 보인다. 한 뼘도 채 안 되는 발판에 몸을 싣고선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린다. 곡선도 자유자재다.

 

▲ 세 제자와 나란하게 어깨를 걸고 묘기를 연습하고 있는 전지환 씨.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지금은 그을린 피부에 다부진 몸매를 과시하지만 한때는 ‘약골’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심장이 약했던 그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스포츠나 운동 따위는 남 이야기였다.

그러던 그가 ‘스케이팅’에 푹 빠지게 된 것은 8년 전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두 아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자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아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선 아빠가 먼저 배워야했기 때문이다.

▲ "배우느라 혼났어요" 전지환 씨가 최근 마스터한 외발 자전거를 타고 자세를 취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스스로 운동은 젬병일 거라 여겼던 그였다. 인라인 스케이트에 몸을 싣자 균형 감각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운동도 있구나’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는 체격이 왜소했을 뿐 ‘균형감각’ 타고난 수준이었다. 겁도 없었다.

나이 마흔 넘어 말 그래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다. 세상에 온갖 탈 것들이 눈에 띄었다. 모터보드, 엑스라이더, 오비트 휠, 프리라인, 유고보드…. 호기심이 일어 바퀴만 달렸다 하면 가리지 않고 일단 ‘구매’부터 했다. 8년쯤 지나니 3만원 안팎에 저렴한 가격대에서부터 100만원을 훌쩍 넘는 기구까지 컬렉션도 꽤 된다.

▲ 전지환 씨가 유고 보드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이름마저 생소한 이 기구들. 막상 사 놓고 나니 어디 하나 가르쳐주는 곳 없어 막막했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스스로 타는 법을 익혀야 했다. 엑스라이더처럼 30분이면 ‘쌩쌩’ 달릴 수 있는 기구도 있었지만 한 달 꼬박 매달려야 겨우 균형이 잡히는 기구도 있었다. 최근엔 외발자전거에도 도전했다. 균형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페달을 멈추면 곧바로 서 버리는 탓에 감각을 몸에 익히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는 틈만 나면 바퀴 위에 올라선다. 심지어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엔 교무실에서도 탄다. 엑스라이더는 한 평짜리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동료 교사들도 호기심에 한두번 올라타더니 이젠 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탄단다. 이쯤 되면 ‘전도사’라 부를 만하다.

전 씨 본인이야 좋지만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퀴’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아내는 영 마땅찮았을 것이다. 게다가 기구 사는데 돈 아까운줄 모르고 쏟아 부으니 아내의 속이 타들어간다. 게다가 작년 9월엔 심장 수술을 받느라 학교까지 쉬느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전 씨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코앞에 학교 동아리 스케이팅 묘기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데….” 애가 탔다. 의사는 운동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연습이라도 지켜봐야 한다며 끝내 신산공원으로 출근했다. 아내도 못 말린다며 손을 내저었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그를 달리게 하는 걸까. "스케이팅의 매력이요? 몸 따라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갑니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달리고 싶어요"라고 답하는 그의 얼굴에서 소년같은 해맑음이 묻어난다.

<제주의소리>는 독자 여러분 주변에 ‘미친 이웃’을 소개받습니다. 퇴근 후 연극배우로 변신하는 직장인, 주말이면 철인3종경기에 매진하는 한의사, 제빵에 푹 빠진 택시기사 등 자신의 취미생활에 ‘미친’ 이웃이 있다면 메일(imty@jejusori.net), 휴대폰(010-9442-3628)로 제보 바랍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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