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기 칼럼>   ‘시간의 꽃’을 가꾸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라는 제목의 이 짤막한 시는 얼마 전 어느 회사의 간판에도 적혀 있었다. 마침 그 회사 건물이 늘 지나는 길가에 위치해 있어 한 계절동안 이를 음미하고 다녔는데, 쓰지 신이치의 『행복의 경제학』에서 소개된 어린왕자의 이야기와 매우 상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별에서 저 별로 여행을 하다 지구라는 별에 내린 어린왕자는 5000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는 정원을 발견하였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작은 별에 혼자 두고 온 한 송이의 장미를 생각하며 엉엉 울고 말았는데, 그 때 여우가 나타나 어린왕자를 달래며 말한다.

  “너의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게 된 건, 바로 네가 그 장미꽃에게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란다.”

  독일의 아동문학가 미하일 옌데가 오래 전에 발표한 『모모』라는 동화에서도 ‘시간’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였다. 이야기의 주인공 모모는 단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아이였다. 그것이 그 아이의 ‘재주’였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통해 희망을 얻고,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찾았다. 싸우던 사람들도 화해하게 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빨리 일하고, 시간을 아끼고, 명성을 쌓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여유 없이 바쁘게만 살아가게 되었고, 모모는 뭔가 잘못됐다 생각을 하게 된다. 회색신사들은 다름 아닌, 사람들 저 마다에게 있는 ‘시간의 꽃’을 훔치는 ‘시간의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결국 모모는 거북이와 시간 관리자인 호라박사와 힘을 합쳐 시간 도둑들을 물리쳤고, 사람들은 다시 밝아졌다. 시간이 예전처럼 풍부해진 것이다.

  작년 여름, 얼마 동안 강정마을에 있으면서 나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공권력의 무분별한 탄압이나 안보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여러 종류의 폭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작고 약한 존재들에게 시간이란 거대한 물리력을 동반한 권력과의 싸움에서 참으로 힘겨운 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시간’이야말로 적이 아닌 작고 약한 존재들이 함께 꿈을 꾸는 방법을 알게 하고, 각자를 풍부하게 이끄는 매우 소중한 친구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은 자세히 보는 것을 허락하는 유일한 친구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오래 본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것을 통해 비로소 존재의 존귀함과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다. 빨리만 지나치는 세상살이에서는 자신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것들을 놓치고 말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조차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간’을 친구로 한다는 일은 자신을 소중히 키워가는 일일 뿐만 아니라, 행복해지는 길일 것이다. 모모가 모든 마을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사람들 각자에게 있는 ‘시간의 꽃’과 진정 친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잘 살지만 불행한 나라 ‘일본’

  부탄은 가난하지만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아직 이십 대의 젊은 나이이던 1972년에 각국의 정상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이 말을 했다고 한다.

  “GNP보다는 GNH가 더 중요합니다”

  그는 경제선진국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이었다. 부탄은 2008년 공포된 최초의 헌법에 GNH(국민총행복)를 중심개념으로 반영하였다. 그야말로 행복이 국가발전전략인 셈이다. 쓰지 신이치에 따르면, 2006년 영국의 한 대학이 세계 각국 80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 부탄은 세계 8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90위였고 한국은 103위를 기록했다. 올해 UN이 발표한 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56위를 기록했지만, 보고서는 “특히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유엔 인간개발지수 같이 객관적 지표에 비해 설문조사 방식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낮은 경향에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탄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지만 또한 행복한 사회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적 이유가 아닌 분명히 국가정책의 결과였다는 것도 상기해야 한다. 수년 전, 한 언론에 소개된 부탄 해외 유학생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다니던 한 부탄 유학생이 외국에서의 고소득 직장마저 포기하며 고국으로 돌아갈 결정을 했다는 것인데, 그는 다음과 내용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행을 많이 하고 외국에서도 살아봤지만 그럴수록 우리나라에 있는 것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직도 부탄의 거의 모든 해외 유학생들은 고국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언론은 부탄이 국민보건, 교육, 환경 개선에 힘 쓸 뿐 아니라, ‘뜬구름 잡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 전하고 있다.

부탄이 ‘국민총행복지수’를 측정하는 핵심지표는 불과 아홉 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의 활용’이다. 경제적 풍요와 물질적 만족의 곧 행복이라고 믿어왔던 세계에서 행복은 GDP순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는 부탄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행복의 뿌리를 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해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도 GDP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지표를 찾기 시작했다. UN도 올해 세계행복보고서를 내면서 “국내총생산(GDP)을 근거로 한 경제조사 방식이 국내총행복(GNH)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한강의 기적’은 ‘불행’의 씨앗...국민에게 ‘시간을 꽃’ 한 송이 건내 줄 지도자를...

  고도의 산업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미 충분히 불행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단기간의 경제성장이라는 자랑이 그 불행의 씨앗이었음을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한지는 오래다. 단기간에 이뤄놓은 경제업적을 지속하고 더 크게, 더 많이 쌓아가려 하다 보니 산업성장의 결과는 고통스런 일상을 힘겹게 버텨가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더 이상 달콤한 열매로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나 기업, 심지어 대부분의 지식인들조차 여전히 성장을 이야기한다. 아직까지도 경제성장은 국가의 중요한 목표이자 추구해야할 독보적인 가치이다.

  성장은 크고 늘어나는 것인데,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틀린 말이 망연스레 유통돼 왔다. 성장이 마치 절대진리의 키워드인냥 쓰여지다 보니, 나무도 ‘성장 시킨다’.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는 것’인데 ‘나무를 성장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인 것이다. 채소 중 재배기간이 비교적 오래 걸린다는 시금치의 성장을 빠른 시간으로 단축시키는 파괴적 압축이 문명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달걀도 부화되는 것이 아니라, 부화시키는 존재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닭들의 평균수명이 30년이라는데 놀라곤 하는데, 단기간에 많은 양의 달걀을 부화시키는 닭들의 숨 가쁜 운명이 실은 그 달걀을 ‘만들고’, 사서 먹는 인간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탈성장, 탈물질의 시대다. 최소한 경제적 풍요가 행복을 대체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물질문명의 거대한 축적과 경쟁에 희생된 행복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이 때, 지금 한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한국 나름의 시간의 맥락에서나,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결정하는 참으로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바라건대, 새로운 대통령은 거친 역사와 산업화의 험로를 통과해 온 국민 각자에게 ‘시간을 꽃’ 한 송이씩 선사해줄 수 있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물질의 성장을 바삐 따라야 하는 영혼들로서의 국민이 아닌, 영혼이 따라올 수 있는 충분한 걸음과 더불어 그 ‘시간의 꽃’을 가꿀 줄 아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국민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국민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쓰지 신이치 선생의 말대로, ‘시금치와 닭들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진정한 힘’을 갖춘 국가의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제주의소리>

<고유기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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