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기 칼럼> DMZ와 강정, 평화를 위해 손잡다

가을 초입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평온한 저녁,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안에서는 의미있는 음악회가 열렸다. 퓨전국악과 록밴드, 성악, 자연주의 기악연주 등 다채로운 공연을 무대위에 올리며 펼쳐진 이 음악회의 목적은 제주 강정마을을 후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년째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응원하는 내용이었지만, 'from DMZ to JEJU'라는 모토처럼 이 음악회에는 DMZ와 제주의 만남이라는 각별한 의미가 베어 있었다.

▲ from DMZ to JEJU 모토로 열린 강정후원 음악회의 제목은 ‘레가토’이다. ‘레가토’는 음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의미의 음악 용어인데, 평화가 DMZ에서부터 제주에까지 이어지길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DMZ가 강정을 만난 이유

남북을 가르는 경계지대 DMZ와 ‘평화의 섬’ 제주의 만남,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군사적 대립의 장소와 적극적 가치로서의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만남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만남을 매개한 강정마을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만남에는 그 동안 ‘군사안보’의 다른 이름으로 왜곡돼 온  ‘평화’를 새롭게 쓰자는 염원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군사기지가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 평화는 곧 군사안보를 의미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군사력에 기대지 않는 평화는 그 곳의 오랜 염원이 되었고, 비로소 조금씩 그 싹을 틔워 왔을 것이다. 그 몸부림이 군사기지 건설문제에 고통 당하는 강정을 불러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DMZ가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을 초대해 이뤄진 만남 그 자체는 오늘 날 매우 불온한 것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다. 분단에 따른 군사적 대치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그것도 그것의 접경지역에서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을 초대해 만나다니.

▲ 음악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3시간 넘게 이어졌다. ⓒ 송복남
 # 안보와 평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 제주 해군기지 문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평화’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2007년에 정점을 이뤘던 그 문제의 쟁점은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가 양립가능하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평화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힘(군사력)이 있어야 평화가 유지되는 것인지, 평화의 유지와 확장은 평화적 수단으로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 하는 물음이 이 논란의 중심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물음은 과거에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응당 총을 든 군인이나 ‘멸공’ 옆에 비둘기를 그려놓는 식으로 형상화하곤 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총을 들어야 평화도 지켜진다는 믿음이 신념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주입되고 각인되었다. 이런 까닭에 안보, 특히 군사안보에 대한 물음은 그 자체가 금기시 되었고, 국가가 펼치는 안보사업은 성역사업이 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평화는 곧 군사안보만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제 국민들도, ‘안보’, ‘국가기밀’, ‘군사기지’, 이런 것들에 대해 당연히 물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터져 나온 것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이다. 따라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비단, 제주에 이런 군사기지가 적합하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금기시되고 성역시되었던 국가안보사업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임은 물론, 나아가 과연 군사안보에 기댄 평화란 오늘 날에 가능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 DMZ의 평화는 이제 새로 쓰여져야 한다. ⓒ 페이스북 엄미경
 # 남북을 가르는 DMZ, 미래를 가를지 모르는 제주해군기지

일찍이 DMZ는 남북을 가르는 철책선으로서 만이 아니라,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경계가 되었다. 분단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해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 생각조차 가능한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의 구분을 금기와 강제로서 형성해 나갔는데, DMZ는 그것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DMZ가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경계의 골을 깊게 하는 동안, 정작 DMZ 안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꽃들이 피어나고, 수많은 종류의 새가 둥지를 틀거나 철따라 이동하는 천연의 정거장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도, 이 곳 DMZ의 녹슨 경계가 왜 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철책을 경계로 대립하는 분단의 상황이 더 이상 서로에게 이롭지 못할 뿐 아니라, 굳이 필요치 않다는 또 다른 당위로 새롭게 대체되는 상황이다. 굳이 완성된 통일이 아니어도 남북이 소통하고 교류와 왕래가 필요하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DMZ는 오랜 세월, 남북을 가르는 경계의 상징 장소가 되어 왔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자칫하면 평화로 흘러야할 남쪽 바다를 긴장과 갈등의 바다로 가르는 미래의 경계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이럴 때, DMZ와 강정이 만난 것이다. DMZ는 안보와 군사적 논리에 기댄 평화를 새롭게 다시 써야 할 처지에 서 있고, 제주는 해군기지 문제로 인하여 평화의 섬의 논리와 내용을 새롭게 써나가야 하는 처지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불온한’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 이제는 'from JEJU to DMZ'로!

지금 대선이 한창이지만,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차기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할 가장 큰 숙제로 끌어안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큰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DMZ 평화가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는 염원들이 생겨나고, 바로 이러한 때에 강정이 평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 평화란 어떤 실체이어야 하며,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어떤 프로세스로 나가야 하는지, 이를 기반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한반도는 어떤 위치와 역할이어야 하는지의 문제에 한 가운데 놓여있는 것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이다.

이런 까닭에, 한반도 평화문제의 가장 민감하고 첨예한 장소인 DMZ를 바라보는 일도 제주 강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안에 DMZ도 놓여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DMZ의 초대로 이뤄졌지만,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제주에서 DMZ를 초청한 만남이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from JEJU to DMZ' !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제주의소리>

<고유기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 게재된 것입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