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수의 복지칼럼> 복지서비스 제공자, 사회복지사를 위한 복지는 어디에 있는가

# 지난주 금요일 3월 30일이 ‘사회복지사의 날’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사회복지사의 날 기념식은  유독 어두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연달아 세 사람의 복지담당공무원이 격무를 호소하며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는데 밝을 리가 있겠는가.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노동자인가 아니면 전문가인가. 혹자는 사회를 밝게 하는, 사회의 소금이라며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한다. 단언컨대 사회복지사는 전문성을 갖는 노동자이다.

협의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여성, 아동 등의 권리를 현장에서 보호하고 각종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이들의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광의적으로는 국민의 보편적 생존권과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복지체계의 핵심구성주체로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노동자이다.

물론 춥고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소명의식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덕성이지만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는 봉사적 신념을 강요하는 일부 사회적 시각은 너무 이기적이며 가혹하다.

# 제주에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을 포함하여 약 4300여명의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복지시설과 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한 직업군에 있는 노동자로서 적지 않은 인력분포라 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처우와 노동환경은 어떤가. 특정해서 미안하지만 아동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의 월급은 100여만원을 약간 넘어 선다-물론 같은 사회복지현장 내에도 임금편차가 존재한다. 여성상담소나 아동보호시설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는 가해자의 폭력, 협박, 생명의 위협을 다반사로 받고 있음에도 이를 감내하고 있다.

작년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사협회가 조사한 ‘제주도내 사회복지종사자 폭력실태현황’을 보면 주거시설 종사자의 88.9%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응답하고 있으며 종사자의 25.5%가 언어폭력을, 9.7%는 신체 폭력을 받은 바 있다고 했다. 또한 성적수치심을 자극하는 폭력과 정서적 폭력을 포함해 4가지 다중폭력에는 29.5%가 피해를 본 봐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위협을 받을 경우 심리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복지사들이 존재하고 이직을 희망한다고 하고 있다. 민간복지현장을 택한 일부 사회복지사들과 복지를 전공한 대학생들은 대우와 직업 안정성이 높은 복지담당 공직을 희망한다. 그러면 이들의 여건은 어떨까.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각종 공공부조, 바우처, 보육비 지원뿐만 아니라 행복e음 통합 후 폭증한 민원처리에 녹초가 되고 있다. 사회복지업무의 특성이 요구되는 복지담당공무원의 대폭적 증원 없이 발생하는 이른바 ‘깔때기’현상이다.

민간현장 역시 노동강도가 세기는 마찬가지다. 주거시설의 3교대는 아직 희망사항인 시설도 있고 저녁 6시에 퇴근이 가능하지만 10시 퇴근과 주말근무가 당연시 되는 노동현장이 존재한다. 노동강도만 본다면 공직이든 민간직이든 크게 구분되어 질 정도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의 삶과 인권보호를 사명으로 하면서 진작 자신의 권리는 포기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대선 때 복지국가논쟁이 벌어졌었다.

5년 전 대선의 화두가 ‘경제’였음을 복기해보면 ‘복지’가 경제와 동급의 화두로 거론된 것은 한국사회의 구성원 격차가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한국사회 구성원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OECD 34개 회원국 중 8년째 자살률 1위, 평균노동시간 1위이며 부의 편중과 빈곤율을 포함하는 행복지수는 32위로 최하위수준이다.

국민다수가 행복하지 않은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들로 국민총생산은 선진국에 근접했다고 하지만 사회전반에서 경제, 교육, 의료,주거 격차는 심화된 것이다. 최장시간의 노동에도 발생되는 경제적 격차와 각종 의료와 교육, 주거의 격차는 가족해체는 물론 인간으로서 품위와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 자살률 세계 1위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것이다.

작년 대선 때 벌어진 복지논쟁은 경제만이 우릴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는다는 국민의식의 저항이고 ‘문제는 경제’에서 ‘문제는 복지’로 정책궤도의 수정을 요구했다는 의미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이제 국민들은 실업, 질병, 장애, 주거, 출산과 양육 등 노출된 모든 사회적 위험에 대해 국가의 적극적 대처를 요구하고 있고 정치권도 이전에 비해 정책적 수용의지도 높다고 하겠다. 본디 좌파는 국가의 복지 책임영역의 확장을 요구하지만 지난 대선 때 당선된 우파 대통령도 복지를 강조하는 좌클릭 현상까지 보여주고 있다. 우파 대통령이 앞으로 복지정책을 어떻게 가져 갈지 두고 볼 일이지만 복지가 확장될수록 사회복지전달체계에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증대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 지점인데 복지인력의 역할은 증대함에도 불구하고 복지인력의 공급량 확대와 처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 있다.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복지에 대한 민간업체를 활용한 시장기제 작동은 이전에 비해 더욱 확대되었다. 노인돌봄이나 보육 등 복지영역을 공공영역으로 끌어드리기 보다 복지를 민간시장화 하는 양적 인프라 팽창이 더욱 도드라졌는데 2007년에서 2011년까지 노인요양시설은 900개소에서 3000개소로, 보육시설은 2만4000개소에서 3만4000개소로 급증한 반면 운영주체는 대부분 민간업체이다.

문제는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보육교사 등의  보편적 처우는 개선되기 보다 비정규직(계약직)화 시키고 있으며 정규직과 격차도 55%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쟁 기제 확충으로 복지인력은 하층계급화 하고 있다. 국가가 공공영역으로 복지재원확충 방안보다 시장경제를 더욱 확충하는 방법으로 복지인력 확충에 방점을 찍는다면 복지인력의 처우개선은 불가능하다.

# 지난주까지 우근민 지사를 정점으로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이 각각 직접 복지담당공무원들의 애로를 청취했다고 한다. 우근민 지사는 ‘멘토제’를 실시하고 올해 복지직 8명 채용예정에서 18명으로 증원 검토를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충원검토는 홀로 근무하는 농촌지역 복지공무원들을 위한 대책이다. 복지직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처우상황이 열악한 민간복지현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복지담당 공무원과 민간사회복지종사자를 포함해 근본적인 대책과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우선 복지전달체계의 급진적 변화를 주지 말아야 한다. 점진적으로 변화·발전시키되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진행된 실험적 전달체계 개편은 ‘깔때기현상’을 부채질해 왔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로 이어진 근 15년간 복지전달체계 모델의 개편과 실험은-복지사무소 모델부터 주민생활지원모델, 통합전산망 행복e음모델 등- 그 부침이 심했고 근착하지 못한 채 연속성을 방해해왔음은 물론 현장의 피로도를 가중시켰다.

둘째, 복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시장기제 확충을 중지하고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복지는 재정확충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제기했듯 시장기제의 확충은 정부의 재정을 최소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시장기제는 일면 경쟁을 통해 질 높은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지만 복지의 지향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서비스의 질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또한 시장 기제작동은 복지종사자들의 임금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 하향평준화는 전문성과 사기를 떨어뜨려 서비스의 질 역시 저하하게 한다.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는 공공영역이라는 근간에 있어야 국가정부라는 파트너를 상대로 실적 인력확충과 처우개선 등 정책의제 요구와 형성이 가능하다.

셋째, 현재의 노동량과 강도, 스트레스에 대해 조사를 권한다. 사회복지담당 공무원과 민간영역 사회복지사들의 노동현황조사는 현장별로 느끼는 편차가 크다. 노동현황 조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필요인력의 수급계획이 합리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 노동현황 분석은 사회복지종사자들의 법정 노동시간 외 근무에 대해 재정지원의 합리적 근거가 될 것이며 적정한 ‘쉼’의 기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사회복지인력들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확인과 노동자 운동이다. 복지업무는 상명하달의 결재, 수직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순직한 공무원은 유서에서 “일이 많은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지시와 명령에 따라 부속품으로 견디는 것은 사투보다 치열하다”고 적고 있다. 지인인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은 자기의 색깔은 ‘회색’이라 하였다. 인간을 다루는 사회복지사이면서 창조성을 가로 막는 관료제에 섞여 자신들의 정체성 혼란을 빗댄 한탄사이다.

이해하고 공감한다. 민간복지현장 역시 다르지 않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복지업무, 본디 이 업무는 클라이언트의 삶을 즉시 해결해 줄 없는 것이기에 시간을 갖고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개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노동자라는 정체성 확인이라 생각한다. 내가 배운 학문과 경험, 전문성은 사회적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이를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이 열쇠는 사회복지사들 자신에게 있다. 자신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전체 시민들에게 질이 높아진다는 것을 어떻게 주장하고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인가. 단결 없는 각자의 부르짖음이 사회적으로 공명하겠는가. 단결권은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 처우개선의 방점은 무엇일까. 지난 주 있었던 사회복지사의 날 기념식장에 등장한 피켓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사회복지미래연구회장. ⓒ제주의소리

“사회복지사도 저녁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생을 달리한 세 분의 사회복지사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한다. /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사회복지미래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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