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텅 빈 광장, 레닌을 보며 상념에 젖다
'인생무상'…텅 빈 광장, 레닌을 보며 상념에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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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3) 아르한겔스크 ②

새벽녘은 약간 한기가 돌기도 했으나, 날은 금세 더워졌다. 드비나 강변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몇 개를 보고나면 그다지 가볼 곳도 없을 것 같아 오전에 서두르면 오후엔 다음 여정으로 생각한 솔로베츠키 군도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을 나서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약도를 보고,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에는 밀집된 콘크리트 상가건물과 아파트들 사이로 오래된 낡은 목조주택들 보였는데,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것을 알리는 팻말을 명찰처럼 붙이고 있었다. 곧이어 거대한 레닌동상이 세워져있는 광장이 나타났다. 이름하야 레닌광장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침 광장엔 동상주변을 청소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일 뿐, 인적이 없이 썰렁해 보였다.

▲ 아르한겔스크 시내 중심의 광장에 서있는 레닌 동상. ⓒ양기혁

텅 빈 광장의 레닌 동상 옆 벤치에 앉아 잠시 상념에 젖었다.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거대한 제국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마치 기초가 부실하게 지어진 고층 빌딩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앉듯 저절로 붕괴하고 말았다. 러시아와 14개 국가로 분열된 잔해들만 남았다. 맑시즘과 소비에트라는 이념과 정치체제는 사라지고 서구의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맑스의 사상이? 아니면 그 이론을 바탕으로 혁명을 실천한 레닌에게? 레닌이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후계자이며, 권모와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까? 혹은 구태의연하고 타성적으로 권력을 계승하고, 행사한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같은 계승자들에게 잘못이 있었을까?

맑스가 추구했던 것은 ‘자본의 착취가 없는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었다고 한다.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갈수록 비대해져가는 자본과 거기에 예속되어 노예와도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변화시키고 극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혁명의 해가 시작되는 1848년 1월 발표된 ‘공산당 선언’에서도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부르주아적 사회를 대신하여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하나의 사회’를 갖게 될 것으로 예언하고 있었다. 적어도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휴머니즘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자신이 인간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원했으므로.

한 사람의 권력자 아래 거대한 관료집단으로 변한 볼셰비키들의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국가는 감시와 억압에 의해 통제된 사회이며,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획일화 된 이념과 강요된 삶 속에서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란 말 그대로 공상속의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혁명전 후진적 경제체제를 면치 못했던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체제에서 공업화를 이룩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우주개발과 과학기술을 비롯한 몇 가지 분야에서 소련은 미국보다 앞서거나 대등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퇴폐와 낭비를 없애고, 계획경제에 의한 자원의 적절한 배분으로 시장에서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완전고용조차도 가능할 것이란 점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앞선 체제임이 틀림없다고 많은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생각했으며, 미국의 대학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Economics)에도 20세기 말엔 쏘련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치 몸 속 알 수 없는 저 깊은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씩 커가던 암덩어리가 어느 날 치명적인 본색을 드러내며, 목숨을 앗아가고 말듯이 소비에트 체제는 70여년의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레닌광장을 지나 동쪽으로 가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고, 해변에는 길게 파라솔을 펼쳐놓은 간이주점과 산책로가 이어졌다. 스칸디나비아풍의 고풍스러운 목조건물도 여러 채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론리 플래닛에도 아르한겔스크의 심장이요, 영혼이라고 표현한 고스트니 드보르(Гостиный Двор)이다. 영어로는 Merchant's Yard라고 번역된 것을 보니 오래전 17세기 번성했던 무역항이었을 때, 상인들이 몰려들었던 장터와 같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건물 앞에 한 노인이 있어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었는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0시에 문을 여니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 고스트니 드보르, 17세기 번성했던 무역항이었을 때, 영국과 네덜란드 같은 유럽에서 온 상인들이 거래를 하던 곳. ⓒ양기

해변을 따라 이어진 길에는 1693년 이곳에 조선소를 세우고 러시아 해군 최초의 전함을 만들어 진수시키고, 직접 북극해도 탐험했다는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는 탑과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시의 무명용사들의 동상과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조금 더 멀리에는 아름다운 정교회 사원인 성모승천 교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이곳에 조선소를 만들고 최초의 전함을 만들어 북극해를 탐험한 표트르 대제 기념탑. ⓒ양기혁
▲ 탑의 꼭대기에 러시아 국가 문장인 쌍두독수리가 있고 아래쪽에 전함을 배경으로 표트르 대제가 부조되어있다. ⓒ양기혁
▲ "대조국전쟁에서 전사한 북방의 용사들! / 우리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94,311명의 주민들을 기억하라!/ 영웅들에게 불멸의 영광을!" 이런 글귀가 탑에 새겨져있고, 영원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양기혁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돌아와서 고스트니 드보르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250루블(약 9천원)인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자 150루블을 더 내라고 한다. 지고 있는 무거운 배낭을 한쪽에 벗어놓고, 관람객이 거의 없는 한적한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봤다.

박물관은 험난했던 북극해 탐험과 사냥에 쓰였던 총과 도구들, 그들의 신앙심을 표현해 주는 성화와 십자가들을 진열하고 있었고, 시대에 따라 도시건설의 변천 과정을 낡은 흑백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20세기 초 아르한겔스크에서 출발한 북극권 탐험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 ⓒ양기혁
▲ 고스트니 드보르에서 찍은 사진. 백해의 어부들이 사용한 배와 도구들. ⓒ양기혁
▲ 얼음 위를 달리는 썰매와 사냥도구들. ⓒ양기혁


▲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특이한 형태의 십자가들. 세 개의 가로대가 있는데, 발이 있는 곳의 가로대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양기혁

 

▲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그린 이콘(정교회의 성화). ⓒ양기혁

밖으로 나와서 해변의 주점에 앉아서 아침 겸 점심으로 숯불에 구운 고기인 샤쉬릭에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주인에게 물었다.

"에따 리까 일리 모례( 이것은 강입니까, 바다입니까)?"

넓게 펼쳐져있어서 나에게 바다처럼 보였던 이곳을 남자는 뜻밖에도 강이라고 말했다. 드비나 강. 러시아에는 드비나 강이 두 개가 있다. 러시아 서부에서 벨라루시와 라트비아를 거쳐 발트 해로 흘러가는 서드비나 강과 모스크바 북동쪽 코미공화국의 남부에서 시작하여  백해로 흘러들어가는 북 드비나 강이다. 서드비나 강은 러시아가 폴란드나 발트 해의 국가들과 치른 수많은 전쟁, 그리고 독일과 치렀던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격전의 중심 무대였던 반면 북드비나강은 북동 내륙에서 북해로 흘러들어가서 다소 생소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그런 구분을 하지 않고 그냥 드비나 강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 어젯밤 하루 묵었던 호텔 이름도 ‘북’을 뺀 그냥 드비나 호텔이었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에 흑빵과 채소를 얹은 샤쉬릭과 맥주 한잔으로 한 끼 식사를 때우고, 레닌광장 쪽으로 다시 나왔다. 아르한겔스크의 볼거리라고는 레닌광장에서 드비나 강변을 따라 조성된 도로변이 핵심이고 그 외에 하우스 뮤지엄이라는 개인 박물관들이 좀 있을 뿐이었다. 비싼 호텔에 더 머물기보다 다음 여행지인 솔로베츠키 군도로 가는 기차 편을 알아봐야했다. 광장 한쪽편의 버스 정류장에서 낡은 버스가 왔다가 사라지는 걸 한참 동안 지켜보았으나 어느 버스가 기차역으로 가는 지 알 수 없었다.

▲ 레닌광장의 버스정류소 맞은편 길모퉁이에 세워진 전광판. <러시아의 날> 6월 12일 12시 드라마극장 건물 앞 광장에서 행사가 진행되며, ‘러시아의 애국자들’이라는 보컬 그룹도 참가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아래 플래카드에는 '영광스러운 전쟁을 수행한 도시-아르한겔스크!'라고 쓰여있다. ⓒ양기혁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주변을 살펴보고, 한 젊은 청년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서툰 러시아말을 알아들은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서 마침 그에게로 다가서는 여성에게 팔을 벌려 가벼운 포옹을 하고는 나에게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도 기차역으로 가야하니 같이 가자고 말하고는 다가온 버스에 그들과 함께 올라탔다. 버스 차장으로 보이는 나이든 여인이 일일이 가슴에 매단 영수증을 승객들에게 끊어주며 16루블(약300원)을 받았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기로는 백해(white sea) 한가운데 있는 솔로베츠키 군도(群島)에 가기위해서는 카렐리아 공화국의 ‘케미’라는 곳까지 기차를 타고 간 다음 선착장이 있는 ‘라보체오스트로프스크’라는 작은 어촌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가야 한다. 청년은 내가 갈려고 하는 ‘케미’라는 곳을 잘 모르는지 기차역안의 직원 몇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 기차표를 살 수 있었으나 기차는 내일 저녁 9시 50분 출발이다.

어쩔 수 없이 아르한겔스크에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그는 내게 더 도와줄 일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여자 친구와 함께 기차역을 나갔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일정을 고민을 하고, 로모노소프 유스호스텔로 다시 가봐야 하겠다고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청년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는 뒤늦은 아쉬움을 느끼며 역 밖으로 나왔는데, 두 젊은 연인은 역 앞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애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한 장 찍고, 수첩을 꺼내서 이름과 연락처를 써줄 것을 요청했다.

▲ 파벨 푸프코프(Павел Пупков)와 알료나 콥챠코바(Алёна Коптякова). ⓒ양기혁


파벨은 두 사람의 이름을 쓰고, 알료나의 페이스북으로 연락하면 된다고 페이스북 주소를 내 수첩에 썼다. 소셜 네트워크 문맹인 내가 러시아의 아르한겔스크에 사는 파벨과의 연락을 위해서 페이스북에 어쩔 수 없이 입문해야 할 것 같다.

▲ 2층의 왼쪽편 일부가 로모노소프 유스호스텔이다. ⓒ양기혁

파벨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로노모소프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어젯밤 버스터미널에서는 150루블이던 것이 이번엔 비슷한 거리인데 100루블이다. 100루블은 택시 기본요금인 것 같았다.

유스호스텔은 어제와 달리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입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마침 이층의 다른 사무실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이층 복도의 오른쪽 끝에서 다시 우측으로 꺾어진 어두컴컴한 곳에 유스호스텔의 입구가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젯밤 그렇게 찾아 헤매었던 유스호스텔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혹시 이곳을 여행할 기회가 있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잘 찾아보길 바란다. 로모노소프 거리 84번지의 로모노소프 유스호스텔을. 썩 좋은 곳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호텔비가 비싼 러시아에서 싼 맛에 하룻밤 이용하기에는 충분하다.

로비 겸 휴게실로 쓰는 방에 마련된 데스크에서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여직원은 방과 화장실 등을 안내해주었다. 방에는 이층으로 된 침대가 양쪽으로 두 개씩 네 개가 놓여있었는데, 안쪽 침대 하나에 짐과 음식들이 놓여있어 사람이 있는 흔적이 있고, 나머지는 비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내를 돌아다닌 터라 침대에 누워 휴식을 좀 취한 후 오후 늦게 간편한 차림으로 시내로 다시 나왔다. 두 번째인 중심가와 강변의 거리들이 익숙해지고 유스호스텔에서도 무척 가까운 거리였다.

다시 찾아간 강변에선 록밴드 공연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고 백사장에선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과 강변도로를 달리는 롤러스케이트와 자전거, 그리고 한가하게 거니는 연인들의 풍경이 한가롭고 평화롭다.

얼마 안 있어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자 금세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강변의 록 공연과 백사장의 일광욕도 파장 분위기로 돼버렸고, 간이주점으로 비를 피한 나도 흑맥주 한잔으로  북방의 도시 아르한겔스크에서의 하루를 마감하기로 했다.

▲ 드비나 강변에서 벌어진 록밴드 공연. ⓒ양기혁

 

▲ 강변의 백사장과 산책길. 멀리 정교회 사원인 성모승천 교회가 보인다. ⓒ양기혁

 

▲ 북 드비나 강변의 성모승천 교회. ⓒ양기혁

아침. 휴게실로 나가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에 상트 뻬쩨르부르그에서 온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왔고, 뒤늦게 들어온 뽈랴와 쏘렌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은 마치 자기 집에서처럼 저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더니 탁자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고나서 나에게 지금 버스를 타고 백해로 가서 바다 구경을 할 거라고 말했다. 아마도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예감에 오늘 저녁 나는 아르한겔스크를 떠날 예정이며, 며칠 후 상트 뻬쩨르부르그 가게 되면 꼭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어제 마리아가 전화번호를 써준 것을 상기시켰다.

그들이 다 나가고 나서 방으로 들어간 다음 배낭을 챙겼다. 어제 저녁부터 내가 부르는 소리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안쪽 침대를 쓰고 있는 중년의 뚱보아저씨는 내가 배낭을 다 챙기고 일어설 때에야 쳐다보면서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귀를 가리키며 손을 저었다.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한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코스로 레닌 광장 옆에 있는 미술관 한곳을 둘러보고, 강변으로 나와 파라솔 아래서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한 다음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 개인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아침에 로모노소프 유스호스텔에서 헤어져 북해 구경을 떠났던 학생들과 박물관 앞에서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그들은 벌써 북해구경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곳 개인 박물관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아침에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는데 그들도 몇 번씩 마주친 인연을 즐거워하며 반겨주었다.

그들이 학생답게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꼼꼼히 전시된 것들을 살펴보는 동안 함께 있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러시아어로 쓰인 것을 알아 볼 수도 없어서 대충 둘러보고 나서 밖으로 나와 다시 혼자 강변길을 걸었다. 

그리고 배낭을 맨 채 걸어 다니는 것이 힘들고, 지겨워지기 시작하자 버스를 타고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는 저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역 대합실에서도 시간을 죽이면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 하우스 뮤지엄에서 본 러시아 전통 물 끓이는 기구인 여러 종류의 사모바르. ⓒ양기혁

우리의 인생이 잘 짜여진 계획에 따라 사는 게 아니듯이, 사람들 사이의 어긋남으로 인해서 우리의 인생이 한없는 기다림일 때가 있듯이, 시간과 장소의 어긋남으로 인해서 모든 여정이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일 때가 많다. 특히나 역에서 다음 행선지를 향하여 떠날 때까지의 기다림은 때로 설레게 하기도 하지만, 지루하고 질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행은 매번 낯선 곳을 향하여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여행은 새롭게 떠나기 위한 기다림이기도 하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지쳐서 끄적거리기도 하고, 그리곤 역 앞의 그늘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릴없이 쳐다보기도 한다.

여자 매표원이나 역무원들이 유니폼을 입은 채 재떨이가 있는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ОХРАНА(오흐라나, 경비)’라고 등에 새겨진 검정색 점퍼를 입고 있는 경비원들도 남녀가 다정하게 담배를 나눠피우고는 역 안으로 사라진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으로 담배를 즐겨 피운다. 남녀를 가린다든가 위, 아래를 나누는 담배 예절 같은 것도 없다. 그저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일 뿐이다.

기차를 탈 때쯤에는 탈진한 듯 피로가 심하여 기차에 오르자마자 침구를 깔고 쓰러졌다.

   아르한겔스크 역에서 산 기차표의 내역은 아래와 같다.
   6월 9일 21시 51분 아르한겔스크 출발
   6월 10일 13시 21분 카렐리아 공화국 케미(КЕМЬ) 도착 (15시간 30분 소요)
   17번 차량, 24번 침대
   1117.3루블 (약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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