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31) 세상의 모든 일보다 급한 일, 제주어 살리기 ①

- 절멸 속도 못 쫓아가는 제주어 회생의 노력

원희룡 새 도정이 들어섰다. 탕평과 협치를 내세운 새 도정은 도정목표를 “제주의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워 궁극적으로 세계를 품는 제주로 발전한다.”라고 밝혔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의 가치는 그렇다 치고,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건 문화의 가치인데, 원희룡 도정은 제발 제주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는 도정이 되길 바란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세상을 가장 풍부하게 이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제주도지사로서 제주어의 가치를 무엇보다 알아주기를 바란다.

슬프게도 제주문화의 모태인 제주어는 지금 절멸 위기에 처해 있다.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가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라고 등록했다. 우 도정 시절 여러 경로를 통해 제주어 위기의 심각성을 설파한 바 있으나, 그런 바람이 현실을 바꾸는 데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원 지사는 이러한 엄정하고 다급한 상황을 이해하고 발 빠르게 대처해주었으면 한다.

이 글은 새 도정에 대한 기대와 제주어의 담론을 확장시켜, 이미 유네스코 절멸 위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 동안 거북이걸음으로 파국을 재촉해 온 도정의 제주어 보전 노력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각심을 일깨우고, 새 도정의 최우선 사업으로 긴급한 조처를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해 보았다.

※ 늘 그렇듯이 글이 제법 길다. 긴 글이 부담스러운 분들은 그냥 넘기셔도 된다. 그래도 일독하고 싶은 독자는 총 5편의 연재 글 중 한 편씩 잘라서 보아도 무리 없을 것이다.

유네스코 지정 “아주 심각하게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 제주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죽을지도 몰라.”

호주 북부의 소수어인 ‘달라본(Dalabon)어’의 마지막 화자(話者)인 ‘앨리스 뵘(Alice Bohm)’의 외마디다. 그가 표현한 이 ‘죽는다는 것’은 그 언어가 통용되던 하나의 언어공동체가 간직한 전통과 지혜,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문화 전반의 소멸을 뜻한다. 그의 이 외마디에는 언어의 운명, 언어를 잃는 자들의 운명이 담겨 있는 것이다. 즉, 말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말이 곧 문명이고 인간이고 삶이다. 그러므로 말이 절멸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의 절멸과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을 제주어의 현실에 빗대면 “제주어가 사라지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제주인이 죽을지도 몰라.”가 될 것이다.

제주섬이 영속하는 한 제주에는 사람들이 살 것이므로 제주인이 쓰는 언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어가 죽으면 제주인도 죽는다니, 어쩌면 생뚱맞은 말인지도 모르지만, 앨리스 뵘은 이를 죽는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표현은 무엇보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우리가 쓰고 있는 제주어에는 섬의 오랜 역사와 그 역사시대를 산 섬 주민들의 신화와 그들의 정서 그리고 섬의 환경에서 오래도록 전수되어 온 섬사람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지식들을 당대까지 전수시켜 온, 이 섬에서 명멸해 간 수많은 이야기꾼들, 즉 훌륭한 구전기술자들인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숨소리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주어가 죽는다는 것은 곧 그 오랜 전승의 대가 끊기는 일이며, 제주인의 시대가 저무는 일인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혈연공동체가 아니라 문화공동체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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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인의 모습(1949년). 조랑말, 갈중이, 촌로, 한라산, 너븐드르가 펼쳐진 이 한 장의 사진은 제주문화의 정수랄까, 원형질이 느껴진다. 지금 저 노인의 말을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을까?

“우리 어머~어~엉 날 날 적에 에~에~에에 어느 바다아아아~앙 미역국 먹엉 엇쌰 엇쌰!”라는 구절을 다른 어떤 언어로 부를 수 있을까? 피어린 역사인 4․3 당시 서청의 대창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손주에게 “날랑 내부러동 도르라 도르라.” 했던 이름 모를 하르방의 언어도 제주어였다. 남태평양을 건너오는 태풍의 서늘한 기운에 “놀 불엄쪄.” 하며 올렛담 넘어 남 들으라고 외치던 경계의 소리도 제주어였다. 팔순 노모가 다섯 살 어린 손녀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열어주며 “아이구, 우리 강생이 이래 기어들라!”라는 말만큼 정겨운 표현이 또 있을까?

방파제를 넘어오는 ‘거센 파도’라는 표현만으로 부족할 때 “아이구 절 쎄었져.”라는 말만큼 적절한 표현은 또 있을까? 짙디짙은 푸른 바다를 “시퍼렁 헌 바당”이라고 부르는 제줏말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은 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 거다. 제주인들에게 제주어란. 제주어가 사라지면 제주인이 죽는다는 말은, 그런 제주어로 대화하고 그런 제주어로 감성을 나눌 제주인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섬의 대지와 바다와 오름 위에서 추출해 낸 언어들이 사라짐으로써 섬과 섬 위에 사는 인간과의 교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과한 가정인가? 하지만 그 우려가 정말 아무도 모르게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당장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진실의 모습은 짐짓 놀라움의 대상일지 모르나,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사건들의 결말일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제주어가 절멸 위기어로 선정되었다고 통보를 받고 아주 놀라거나 또는 아주 놀란 체하는 해프닝으로 도배했다.

유네스코를 통해 바라본 세계 언어들의 상태

2011년 1월 17일, 유네스코는 인도의 ‘코로(Koro)어’와 함께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2010년 12월에 공식 등록한 사실을 통보해왔다. 많은 제주도민들은 속된 말로 ‘헐!!!’, ‘허~참!!!’ 했다. 그것은 마치 ‘아무렴 제주어가… 우리 사투리가 그렇게까지 전락했을까?’ 하는 의문과 위기감과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자의식의 발로 같은 것이 뒤섞인 반응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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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사라지는 언어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했다. 4단계라면 “아직은 1단계가 남았네.” 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 5단계는 소멸 그 자체다. 그러니까 유네스코는 “제주어는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당신들의 모태어임을 좀 아시고 정신 차리고 어떻게 좀 살릴 궁리를 해보시죠!”라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마치 전사자 통지서를 들고 온 양반이 “아드님은 조국을 위해 분연히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아드님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위로하는 것처럼, 그냥 통보하면 좀 그러니,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등록한 것은 ‘제주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언어로서의 ‘제주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제주어’를 문화유산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약간 기름칠을 한 채 말이다. 그래선지 언론들은 오히려 이 립서비스에 방점을 찍고, 제주어의 가치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 있게 다루는 촌극도 연출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제주어의 ‘절멸 위기에 대한 경고장’이다. “낼 모리 어서저불” 제주섬사람들의 말에 대해 자각하고 소멸을 늦추거나 극복할 마지막 기회가 있음을 전언한 것이다. 누가? 그동안 세계적 차원에서 많은 언어들의 죽음을 모니터링하면서 목격해 온 전문가들이 말이다. 바로 유네스코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의 사라지는 언어를 6단계의 언어의 세대 전승으로 분류하고, 이 중 안전한 상태를 뺀 나머지 5개의 층위를 1단계 ‘취약한 언어’부터 5단계 ‘소멸한 언어’까지 분류하고 있다. 또한 1993년 ‘위기 언어 프로젝트’를 채택해, 지구상에서 소멸됐거나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에 대한 보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상의 언어는 6,700여 개로 알려져 있다.

이 수치는 학자나 기관마다 엇비슷하면서도 상이한데, 그만큼 언어사용의 수치화가 어려우며 복잡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대체적으로 6,000~7,000개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필자는 유네스코의 공식적인 수치를 사용했다. 이 가운데 2,473개 언어가 소멸됐거나 소멸 위기의 언어로 등록됐다. 유네스코는 2010년 3월 아프리카 언어담당인 독일 ‘마티스(Matthias Brenzinger) 교수’를 제주에 파견해, 제주어 현황을 파악하고 보고서를 제출받아 검토했다. 제주대 국어문화원(원장 강영봉)은 유네스코에 《제주어사전》과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 《제주지역어 생태지수 조사보고서》 등을 제출했다.

유네스코에서 발간하는 보고서인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에 따르면, 지난 1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200여 개의 언어가 사라져갔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언어가 한 국가와 민족의 문화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점을 고려해 본다면, 언어의 위기는 지구촌의 다채로운 문화들이 사장(死藏)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적신호”(유네스코 한국위원회)라고 보고 있다.

또한 세계 6,000여 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미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3세기 동안 많은 언어들이 사라져갔다. 이러한 과정은 특히 남북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극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적어도 3,000개의 언어가 절멸 위기에 처해 있거나(endangered), 심각한 절멸 위기에 처해 있고(seriously endangered), 또 사라져가고 있다. 국제하계언어학연구소(SIL International)가 발간한 에스놀로그(Ethnologue)의 2005년 판은 6,912개의 언어 중에서 516개(7.5%)를 ‘절멸 임박(nearly extinct)’ 언어로 분류하였다. 그 수는 태평양 지역(주로 오스트레일리아) 210개, 남북 아메리카 지역 170개, 아시아 지역 78개, 아프리카 지역 46개, 유럽 지역 12개로 보고하고 있다.(언어다양성 보존 활용 센터)

유네스코는 1999년 제30차 총회에서 문화정체성의 주요 수단인 모어(母語, Mother Language)의 역할을 강화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매년 2월 21일을 ‘세계 모어의 날(International Mother Language Day)’로 지정했다. 이는 유네스코 차원에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국제적인 캠페인의 하나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원제: Dying Words)》의 저자로 명성이 높은 호주국립대 교수이자 언어학자․인류학자인 ‘니컬러스 에번스(Nicholas Evans)’는,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구사한 이들이 고수해온 전통과 지혜,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문화의 여러 장면들을 한꺼번에 잃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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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원제: Dying Words)》의 표지(왼쪽). 호주의 원주민 아티스트 ‘셀리 가보리(Sally Gabori)’와 작품에 대해 논의 중인 ‘니컬러스 에번스(Nicholas Evans)’ 교수(오른쪽).

즉, 어떤 한 언어의 소멸은 단순히 입말, 글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의 모태가 소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비로소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요인들 중 가장 본질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 곧 언어다. 같은 국가와 민족 내에서도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지방색이 드러난다. 제주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 전래의 문화정체성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현재 제주어가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은 바로 ‘제주의 위기’이기도 한 것이다.

‘니컬러스 에번스’는 “현재 전 세계 6,000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들 사이에서 언어 소멸의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2주마다 한 명씩, 세계 어느 곳에선가 쇠미해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話者)가 죽음을 맞고” 있으며, 그래서 결국 금세기 말이면 6,000개 언어 중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이대로라면 제주어 역시 당연히 그 절반에 포함될 것이다.

언어제국주의 시대, 절멸 위기에 처한 세계 언어들의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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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한 강희제.

언어를 지킨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일찍이 중원을 경영했던 청제국의 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청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중국에 동화될 것을 경계했다.

청의 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는 “지금의 만주인에 대하여 짐은 그들이 만주어를 모를 것이라고 염려하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태어나는 자제가 점차 한어(중국어)를 익히고 결국에는 만주어를 잊어버릴까 두렵다 (1673년 4월).”라고 우려했으며, 그리하여 만주어를 지키기 위해 ‘국어기사(國語騎射)’를 만주인이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쳤다.

국어기사란 “국어, 즉 만주어를 말하고 기사, 즉 말을 타고 활을 쏘던 전통 생활을 지킨다.”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염려를 계승한 5대 황제인 옹정제(雍正帝)는 즉위 원년인 1722년에 다음과 말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시행하게 했다.

만주인 중에서 만주어를 잘 말하고 말 타고 활쏘기를 잘하는 자는 ‘피갑(披甲-만주팔기의 군대 조직 단위의 하나)’으로 뽑고 두 사람의 실력이 비슷하면 활 잘 쏘는 자를 뽑아라. 그리고 ‘좌령(佐領, 관직명)’, ‘보갑(步甲-보병의 일종)’의 위치에 사람이 부족하면, 만주어에 능숙하지 않고 활쏘기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잠시 보갑에 앉히고, 만주어와 활쏘기를 잘할 수 있을 때에 ‘마갑(馬甲-일종의 기마병)’으로 뽑아라.
 
즉, 만주어를 제대로 못하면 청나라 최고의 부와 영예의 상징인 팔기군(八旗軍)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조처를 통해 만주어를 사용토록 유인하고, 만주어를 최소한 지배층의 언어로라도 유지하려 노력했으며, 스스로 국사를 편찬하고 만주어 사전을 만드는 등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결국 청이 멸망하고 난 뒤에는 1천만 인구의 만주족들조차 만주어를 구사하지 못한 채 소멸된 언어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언어는 아무리 지배세력의 언어이거나 당대에는 늘 쓰는 언어일지라도 세대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문화어로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못할 때는 사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의 제주어 역시 세대 전승은 이미 끝난 게임인지도 모른다. 거기다 우리는 팔기군을 보유하고 있지도 못하다. 그런데 어찌 한 세대를 더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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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blog.besunny.com

지금 세계는 언어제국주의 시대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극심한 언어의 주도권 쟁탈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두드러지는 경향은 언어 소멸의 가속화 현상인데, 이는 언어학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지구화로 인해 자본주의 종주국들의 주류 언어, 특히 영어의 영향력이 민족과 국경을 넘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으며, 영어에 의한 지역어의 말살과 오염 등은 이전 시대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와 규모로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국내의 영어공용화 문제와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영어공용화 논쟁 등이나 소위 글로벌 경영을 위한 대기업들의 영어공용화 등은 기실 이런 세계화 시대에 지역어들이 겪는 흔들림 현상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언어와 문화마저 경제적 이윤추구의 도구로 환원해버리는 도착적 풍조를 조장한다. 국립국어원의 최용기는 언어를 정치적 실재로 인정하면서 그에 따라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가 형성되며, 이는 언어제국주의의 침탈과 그에 저항하는 언어민족주의의 경향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언어는 ‘정치적 실재’로서 여기에서는 언어의 각종 층위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선 특정 공동체가 의사소통수단으로 삼는 매개어의 기능을 하는 언어는, 지배언어로서 항상 국어 또는 공용어의 지위에 있거나, 최소한 그 지위를 지향한다. 이러한 지위에 이르지 못한 다른 군소언어들은 주로 소수집단의 언어로서 갈등관계에서 밀려 피지배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

또 지배범위를 넓혀 온 대규모언어들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언어들 간의 갈등과정을 거쳐 국제어, 제국언어 또는 식민언어의 지위에 오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를 둘러싸고 언어민족주의와 언어제국주의의 갈등 관계가 벌어지는 것이다.(최용기, 2009)

《에스놀로그(Ethnologue, 민족어: Languages of the World)》’는 ‘하계언어학연구소(SIL,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의 웹 및 인쇄 출판물을 말한다.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인 SIL은,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며 기록하여 언어학 발전과 문맹 퇴치, 소수 언어 발전 및 성서 번역을 통한 선교를 돕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국제 SIL이 출판하는 《에스놀로그》는 전 세계의 알려진 언어에 대한 각종 통계치를 집대성한 것으로, 언어학 연구에 있어 소중한 자료이다.

단행본 형태와 홈페이지(Ethnologue.com)를 통해 출판된다. 이 《에스놀로그》에는 현재 6,909개의 살아 있는 언어가 등록되어 있다. 이 중 1억 이상의 인구가 모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순위별로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 아랍어, 힌디어, 벵골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9개이고, 5천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독일어, 자바어, 펀자브어, 텔루구어, 베트남어, 마라티어, 프랑스어, 한국어, 타밀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등인데, 모두 합해 20개의 언어다.

전체 인구의 38.7%가 8개의 언어를, 39.4%가 77개의 언어를, 20.76%가 3,015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누적 98.8%) 나머지 1.2%의 인구가 3,801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 언어의 모어 화자를 모두 합한다 해도 전 세계 인구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 언어들은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결국 화자가 죽으면 그 언어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금세기에 일어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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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는 세계 언어들이 처해 있는 상태를 판단하여 언어들의 생명력과 소멸 또는 절멸 위험의 정도를 다음의 6단계로 설정하여 구분하고 있다. 이 6단계의 언어의 상태는 다음 9개의 요인들에 의해 설정된다.

즉, ①세대 간 언어 계승의 정도 ②사용자 수 ③전체 인구 대비 사용자 비율 ④다양한 공적․사적 영역에서 언어의 사용 ⑤새로운 영역들과 매체들에 대응하는 반응 ⑥언어학습 및 교수 기자재 ⑦정부와 기관 차원에서 언어적 태도와 언어정책: 공식적 쓰임과 지위 ⑧자신들의 고유 언어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태도 ⑨문서화(documentation)의 유형과 질 등의 요인들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제주어의 소멸 위기 정도는 전체 6단계 중 안전한 단계를 제외한 5단계의 층위 중에서 소멸 직전의 언어인 4단계 위기의 언어로 판명된 것이다.

또한 자본의 전 지구화가 이루어지면서 초강대국 간의 언어투쟁의 양상이 격화될 것이다. 물론 이는 좀 더 먼 얘기일 수 있다. 현재는 영어가 자본주의 세계어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이 역시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다. 특히 문화적 자긍심, 소위 중화주의 자존심이 강한 중국어, 즉 한어(漢語)의 도전이라면 말이다. 국제통화인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향후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것으로 미래학자들이 내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에 있어서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가 결국 세계어의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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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주요 언어국가들의 분포>(위키백과 지도그림)

한국의 경우도 현재 5천만 명의 언어국가로서 불변의 지위가 보장될 것 같지만 이 역시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소위 ‘어륀지’ 파동을 겪기도 한 우리나라의 영어조기교육 열풍, 영어공용화 논란 등을 보면, 언어를 경제도구와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은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여, 한국어의 미래도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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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사실 한국어의 방언들 중 중추적인 충청, 전라, 경상도어의 경우도 이미 세대 전승에 있어서는 병들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TV와 각종 IT 매체에 의한 표준어의 강력한 영향력은 이미 한국어의 일정 범주를 변형시키고 있다. (2편에 계속)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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