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중년 여성들이 제주에 던져버린 것은?
사연 많은 중년 여성들이 제주에 던져버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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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주올레, 여자 전용 테마형 여행 프로그램 ‘온리유’ 개시..."힐링 여행 기대" 

“6.25 상처를 제주에서 모두 씻어버렸지...”

혼자 제주에 여행 온 팔순을 바라보는 임필애(79.부산) 할머니. 그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6.25 때 말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임 할머니는 시부모를 모시고, 자식 농사를 짓느라 인생의 여유란 없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나서야 임 할머니는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더 젊게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날, 홀연히 제주를 찾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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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필애 할머니가 직접 따고, 무친 고사리를 다른 참가자에게 맛을 보라며 권하고 있다.

임 할머니는 유난히 제주 올레길을 좋아한다. 매년 찾을 정도다. 일본 규슈에 올레길이 생겼단 말을 듣고 일본을 찾기도 했다.

“다른 나라 그 어디가 아름답다 해도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최고죠”

임 할머니는 기자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임 할머니는 인터넷을 하다 우연히 (사)제주올레의 여행 프로그램 ‘온리유’(Only-you)를 알게 됐다. 그러곤 직접 참여를 신청했다.

더 이상 버릴 마음의 짐이 없다는 임 할머니는 제주에서 더 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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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년지기 친구 정미선(왼쪽), 이은미(오른쪽)씨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35년지기 친구랑 같이 왔어요"

정미선(52.서울)씨는 35년 전 서울 풍문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다소곳한 한 친구 이은미(52.서울)씨를 만났다. 당시만 해도, 그 친구와 35년 넘게 단짝친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은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집이 가까워 꾸준한 만남을 이어왔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둘의 만남은 계속됐다.

어느새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50세)을 넘어섰다.

삶에 지친 두 친구는 같이 이곳저곳을 여행 다녔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제주였다. 수십번 찾았던 제주였지만, 이번에는 남달랐다.

제주에서 직접 고사리를 꺾었다. 50을 넘겼지만, 고사리 꺾는 방법을 이제서야  알게됐다.

제주에서 단짝 친구들은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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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분 할머니(왼쪽 노란 옷)가 직접 만든 뭉게죽(문어죽)을 며느리 안혜경(오른쪽 짙은 파란색 옷)씨와 함께 맛보고 있다.

"고부갈등이 뭐죠? 말다툼조차 없었어요"

경북에서 태어난 유정분(74.군산) 할머니는 수십여년 전 4형제 집 장남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일 때 유 할머니는 ‘아차’ 싶었다고 했다. 4형제가 아니라 10남매였던 것.

하지만, 유 할머니는 “내가 선택한 남자”란 생각에 궂은 일을 도맡으며 맏며느리로서 집안을 이끌었다. '강한 어머니상'의 전형이랄까.

묵묵히 가족 뒷바라지를 해온 유 할머니는 20여년전 며느리 안혜경(50.서울)씨를 얻었다.

안씨는 시어머니가 배려심이 깊어 그 흔한(?) 말다툼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고부갈등은 TV에서나 등장하는 단어였다. 

이들 고부는 1년에 한 번은 꼭 제주를 찾는다. 제주 고사리를 식탁에 올리기 위해서다.

유 할머니는 이번 여행에서 제주 바다에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고 한다. 노년을 즐겁게 보내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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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이 직접 제주 토속 음식을 만들어 보고 있다.
오직 여자만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 ‘온리유’

노년에 여유를 찾은 70대 할머니, 35년 단짝친구, 화목한 고부... 이들이 제주에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제주올레의 여자만을 위한 테마형 여행 프로그램 ‘온리유’ 덕분이다. 온리유는 육아, 살림, 업무 등 일상에 지친 여성들 마음 한 켠에 남은 짐을 청정제주에서 훌훌 털어버리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21일 시작된 2박3일 일정의 온리유 첫 번째 여행에는 전국 각지 여성 20명이 참가했다.

첫 여행지는 제주 올레 19코스(숙소 =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일대다. 당초 여행 참가 조건은 40~60대 여성으로 국한했지만, 다양한 연령층이 몰리면서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했다. 단짝친구, 고부 말고도 동서들도 눈에 띄었다.

단연 주부가 많았지만, 은퇴한 초등학교 교장,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나홀로 여행객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첫째 날 제주시 조천만세동산부터 함덕서우봉해변까지 걷는 동안 마음의 짐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오한숙희 소장의 수다(?)는 윤활유로 작용했다.

둘째 날인 22일엔 다양한 체험 행사가 이어졌다. 직접 고사리를 꺾어 제주 토속 음식 뭉게죽(문어죽)을 만들어 먹고,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둘러봤다.

참가자들은 23일 각자 마음의 짐을 버린 장소와, 무엇을 버렸는지 소개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다.

제주올레 관계자는 “온리유는 여성들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제주 자연에서 위로받고 도민들과 함께 토속 음식을 만들고, 수다를 떠는 여성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이라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중년 여성들의 우울증을 치유하는 힐링 여행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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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고사리를 따고 있는 온리유 여행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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