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86) Before Sunrise / 환상약국

noname01ㅇ.jpg
▲ WALKING IN THE DREAM /환상약국(2016).

TV 일기예보에서 기상 캐스터가 말했다. “태풍이 소멸되면서 비를 뿌리겠습니다.” 그 말이 시처럼 들렸다. 태풍은 사라지면서 빗방울로 흩날리는구나. ‘산울림’의 노래 중에도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가 있지 않은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대비가 쏟아졌다. 길모퉁이에 놓은 쟁반 위 음식에도 빗방울이 다닷다닷 떨어졌다. 기상 캐스터 그녀는 분홍색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다. 기상 캐스터가 날씨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은 이미 관습이 되었다. 안개가 많은 날에 그녀는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안개꽃처럼 흔들렸다. 비가 오면 FM 라디오에선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꼭 틀던 시간이 있었다. 비에 대한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는 내기를 함께 했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태풍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녀는 황사가 심한 날에 마스크를 끼고 나온 적이 있다. 밴드 ‘환상약국’은 팀 이름만으로는 몽환적인 음악을 할 것 같지만 약간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락앤롤을 한다. 계절이나 날씨는 알약처럼 녹아 공중에 퍼진다. 기상 캐스터는 약사가 되어 약을 조제한다. 저녁에 비가 내린다고 했으니 우산을 준비해야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처방전을 명심해야 한다. 음악은 끝나면서 바람이 되어 분다. / 현택훈(시인)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