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26) 명감 사만이본풀이

1. 액막이

'액막이'는 시왕맞이가 끝날 무렵에 하늘이 준 짓궂은 액연(天爲厄緣)에 의해 병든 사람의 목숨 대신 희생으로 닭을 죽여 액운을 막는 굿이다. 목숨차지 신 명감(命監) 사만이본풀이에 의하면, 소사만은 시왕맞이 굿을 하러 지상에 내려온 차사를 잘 대접하였다. 차사는 소사만의 정한 목숨(定命)은 저승의 장적에 三十이었는데 단명한 사만이의 기록에서 十字를 千字로 고쳐주어 3000년을 장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삼아 액을 막는다고 하면서 사람 목숨 대신 닭을 잡아가라고 수탉을 죽여서 바깥으로 내던져 환자의 액을 막는 굿이 액막이다. 

2222qq.png
▲ 역가올림의 액막이 상.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1) 액막이의 제차

시왕도올리고 석살림
도올림-향촉권상-역가올림-산받아 분부사룀-상단숙여 소지사름
액막이(액막이상을 문 앞에 놓고)
날과국섬김-집안연유 닦음-사만이본풀이-<액막음>-산받아분부사룀-비념
나까도전 침(나까시리놀림-지장본)

시왕맞이가 끝나갈 때 심방은 시왕의 신들을 시왕당클(하늘)로 올리면 석상림 굿을 하는데, '액막이' 상을 문 앞에 놓고 심방은 향로를 들고 '향로춤'을 추다가 술잔을 들고 술을 뿌리며 '주잔춤'을 추는데 이를 향촉궈상이라 한다. 소미 둘이 액막이상(보답상)을 들고 본주는 절을 하는데 이를 역가올림이라 한다. 심방은 엎드려서 요령을 흔들며 사설을 하다가, 소미가 닭에 소주를 뿌리고 본주 앞에 가져가면 본주가 손을 가져다 댄 후에 절을 한다. 

심방은 산판과 신칼을 들고 자리에서 돌면서 춤추다가 산판점을 친다(산받아 분부사룀). 심방이 무명 천 위에 저승사자의 옷과 신발 등을 싼 다음 불을 붙여서 들고 “삼차사 관장님 액을 나걸랑 곱게 막아줍서”라고 하며, 불 붙인 것을 들고 자리에서 빙빙 돌며 춤추다가 소미에게 건넨다. 닭을 들고 자리에 서서 춤을 추다가 닭의 목을 빙빙 돌린다. 심방은 신칼점을 치고, 소미는 술을 뿌린다. 심방은 자리에 앉아서 요령을 흔들며 사설을 하다가 징에 담긴 쌀을 집어 쌀점을 친다. 소미는 물그릇에 쌀을 몇 줌 쥐어서 담은 후에 물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aaqqaa.png
▲ 액막이 닭.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2) 대명대충(代命代充)

목숨차지 신, 명감 사만이 본을 풀고 액을 막는다는 것은 대명대충(代命代充), 인간의 목숨 대신 희생(犧牲)으로 닭의 목숨을 대충한다는 것이다. 굿을 할 때는 희생으로 닭을 죽여 액을 막는다. 이를 대명대충이라 한다. 

명감(사만이) 본풀이는 큰굿의 액막이 때 구송되며, 농사짓는 분들이 밤에 산으로 가서 조용하게 제를 지내서 농사를 잘 되게 해주십사 빌 때, 또 마소를 기르는 테우리들이 마소를 잘되게 해 주십사 해서 정성을 드릴 때, 정명이 다된 목숨을 길게 이어달라고 비는 신화(본풀이)를 '명감(사만이)본풀이'라 한다. 명감본풀이는 시왕맞이의 막판 '시왕도올림'이 끝에 '나까시리놀림' 굿을 하기 전 '액막이'에서 구송된다. 이 액막이 굿은 삼명감(三命監) 삼차사(三差使)라 해서 차사님이 인간에 주년국땅 소사만이라는 사람을 잡으러 올 때에 소사만이가 그것을 미리 알아서 차사님에 인정을 걸어서 대신에 딴 사람을 저승에 데리고 갔다. 이렇게 해서 집안에 궂인 액(厄)을 당할 때에 또 ‘멩감본’을 풀어서, 그와 같은 본(本)을 받아서 이 액(厄)을 막는 굿인데, 이때 멩감(사만이) 본풀이를 구송한다.

11qqqqq.png
▲ 액막이.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2. 명감(命監) 사만이 본풀이
(1) 명감(命監) 사만이 본풀이의 시놉시스

옛날 주년국 땅에 소사만이가 살았다. 가난한 터에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이 없었다. 비록 거지 생활을 하여도 행실이 얌전하여, 동네 어른들이 돈을 모아 장가를 보내 주었다. 사만이 부인은 바느질 솜씨가 좋았다. 어느 날 부인이 가위로 머리를 잘라 놓고 남편에게 장에 가서 팔아 아이들 먹여 살릴 쌀을 사오라 하였다. 사만이는 부인의 머릴 팔아 돈 석냥 받고 그것으로 조총을 사고 돌아왔다.

그날부터 사만이는 총을 메고 사냥을 나섰다. 어느 날, 황혼이 지는 산길을 걸어오는데 왼쪽 발이 툭 채였다. 풀잎을 헤쳐 보니 백년 해골이 뒹굴고 있었다. 그냥 가려니 다시 채이고, 세 번이나 왼쪽 발에 채는 것이었다. 이 해골이 집안을 지켜 줄 조상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는 백년 해골을 곱게 모셔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사람 몰래 고방 큰 독에 모셔 놓고, 제사∙명절 때마다 음식을 차려 조상님이라 위하였다. 그로부터 사만이는 재수가 대통하여 삽시에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꿈에 백발노인이 사만이를 불렀다.

“사만아, 너의 정명이 서른 셋, 만기가 되어 저승 염라대왕한테서 너를 잡으러 삼 차사가 내릴 듯하다. 어서 일어나 내일모레 밤이면, 삼차사가 내려올 터이니, 맑은 음식을 차려 향촉을 돋우고 네 성명 석자 써서 제상에 붙여 놓아라. 누가 와서 세 번째 부르거든 머리를 들어 대답하여라. 그리고 사만이 부인은 날이 새면 심방을 청해 염랫대(閻羅竿)를 세워 시왕맞이 굿을 하되, 염라대왕에게 관디(冠帶) 세 벌, 띠 세 개, 신발 세 켤레에 큰 주석 동이에 좋은 쌀을 담아 올리고 황소 세 필을 대령하여 액을 막아라.”

삼 차사는 사만이를 따라 사만이의 집으로 갔다. 집에는 염랫대를 세워 시왕맞이 굿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정성이 지극하였다. 후한 대접을 받은 삼 차사는 저승에 돌아가 동자판관실에 있는 장적에 사만이의 정명을 고치기로 의논하였다. 삼 차사는 사만이를 잡지 않고 저승으로 돌아가, 염라대왕이 동자판관을 데리고 시왕맞이 굿을 받으러 인간 세계로 내려가 버린 사이에 장적의 三十의 열십자(十字) 위에 눈을 딱 감고 한 획을 비껴 그어 버렸다. 사만이의 정명은 삼천 년이 된 것이다.

11qqa.png
▲ 산받음(쌀점).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2) 명감(사만이) 본풀이 이중춘 구송본

(요령) 
천앙(天皇) 열두 멩감님(十二命監)도 내립서. 
지하(地皇) 열한 멩감님도(十一命監) 내립서.
인황(人皇) 아홉 멩감님(九命監)도 내립서. 
동(東)의 청(靑)멩감 서(西)의 백(白)멩감, 남(南)의 적(赤)멩감, 
북(北)의 흑(黑)멩감 중앙(中央) 황신(黃)멩감님도 내립서 
천황차사 관장(天皇差使官長)님도 내립서
지황차사 관장(地皇差使官長)님도 내립서
인황차사 관장(人皇差使官長)님도 내립서 
연직사자(年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시직사자(時直使者) 관장님도 내립서. 옥황 금부도사(禁府都事), 저승 이원사자, 이승은 강림사자, 물(水差使)엔 부원군 삼차사 관장님, 본당차사, 신당차사, 군관 신관 삼차사 관장님도 내립서.
여든여덟 비꿀 사자, 이른 여덟 바쁜 사자 관장님도 내립서 

옛날이라 옛적에 주년국 땅에 소사만이가 양친부모 몸에 탄생하니세 살(三歲) 적엔 아버지가 죽어불고, 다섯살(五歲)이 되니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사만이는 혈혈단신(孑孑單身)되고 외로운 몸이 되었다. 사만이는 의지할 곳이 없어 거리걸식, 문전걸식(門前乞食)을 하며, 동녕바치(거지) 노릇을 하며 얻어먹으러 다니며, 밥 빌어당 죽 쑤워 먹으멍 구명도식(求命圖食) 하여 살아갔다. 하루는 삼도전 거리에서 장대감의 따님아기도 소사만이처럼 아방 죽어불고 어멍 죽어부난 얻어먹으러 다니고 있었다. 둘이서 삼도전에서 만나서 양단 홀목을 뷔여잡고 동녕질을 하며 구명도식해연 살아가는 것이 열다섯 십오 세가 근당(近當)하여지난 남녀구별 법을 알게 되어 가난 물 한 사발 떠놓고 인간 백년언약을 해연 부부간(夫婦間)을 삼안 살아가는 것이 아긴 낳는 건 보난 오망속속 솟아났다. 

아기들은 한살 두살 커 가난 밥을 줍서 옷을 줍서 비새같이 울어 가난  소사만이 각시는 하루 한 때라도 이 아기들 배불리 밥을 먹이려고 쉰댓자 수패머리를 잘라 소사만에게 이르는 말이 이걸 가지고 가장(市場)의 강 팔아서 쌀을 받앙 옵서. 이 아기들 한 끼라도 배부르게 먹이게 마씸. 소사만인 각시 머리를 가지고 장터에 간 돈 석량(三兩)을 받안 그 머릴 팔아서 장 구경을 하러 다니다보니 세상(世上) 아니 보아난 게 있어 이건 뭣을 하는 겁니까 물으니, 이것만 들고 굴미굴산(谷尾谷山) 노조방산 아야산을 올라가면 나는 꿩에 총을 쏘아 맞혀서 가죽과 머린 팔고, 살코기는 아기들 먹여 구명도식을 한다하니, 그건 얼말 받겠소 하니, 돈 석량을 받겠다 하니, 각시 머리 판 돈 석량을 다 주고 마세기총(마상조총 馬上鳥銃, 사냥총)을 사서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오는데 소사만이 각신 어느 때라도 쌀 받아 오면 이 아기들 배부르게 밥이나 먹일까 하다 보니 어깨에 부지깽이 닮은 걸 둘러매고 왔으니,

“이 어른아. 쌀은 어디에 두고 그 어깨에 매고 온 건 무엇이꽈?” 

“설운 가속아. 이건 마사총(馬上銃)이란 건데 이것만 가지고 굴미굴산 노조방산 아야산 신산곳을 올라가 나는 꿩에 총을 쏘아 맞혀 가죽 머린 팔아 돈을 벌고 살코기는 애기들 먹여서 구명도식(求命圖食)하려고 사왔다”고 소사만이가 말을 하니, 사만이 각신 아이고, 이 어른아. 한 일은 알고 두 일 모르는 이 어른아. 밥 한 때도 굶언 이 애기들 우는 걸 봅서. 저 어른만 가지고 가 잘 먹고 잘 쓰멍 삽서 하니, 소사만인 마사총을 둘러매고 굴미굴산 노조방산 아야산 신산곳을 올라가 나는 꿩에 총을 쏘니 헛방이고, 나는 꿩에 총질하면 헛방이고, 서산에 해 지도록 새 한 마리도 못잡고 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졌구나.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려 해도 그럴 수도 없고 하니, 돌멩일 주어서 돌담을 쌓고 초경(初更) 이경(二更) 사서삼경(四書三更) 깊은 밤을 거의 새웠는데, “주년국땅 소사만아, 주년국땅 소사만아”하고 이름 삼자(三字)를 불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사만이가 겁이 바짝 나고 밤에 부르는 소리니, 한번만 더 불러서 세 번 부르면, 대답해야지 하는데, 두 번만 부르고 다시 아니 부르니, “분명 무슨 곡절이 있구나”하며 뜬 눈으로 밤을 세웠는데 날이 밝아 아침엔 먼동 금동 대명천지가 밝았더라. 부르는 방향으로 가 보니, 백년 묵은 대가리가 땡그르르, “너가 주년국땅 소사만이냐? 나는 백정승(白政丞)의 아들인데, 굴미굴산 노조방산을 올라가 네가 매고 있는 총으로 사냥을 하다가 모진 광풍(狂風)을 만나, 나의 몸은 이와 같이 되었구나. 너는 나에게 태운 인간이니 나를 모셔다가 연양(靈延) 상고팡(上庫房)에 모시고 나를 잘 위해주면, 너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노라” 하니, 저 백년조상(百年祖上)의 해골을 얼싸안고 집에 돌아와 안에 들어가면, 또 각시한테 무슨 욕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하여 올레 멀쿠실낭(멀구슬나무) 한 가지에 걸어두고 소사만인 집안으로 들어간 각시에게 하는 말이 굴미굴산 노조방산 아야산을 올라가 백년조상을 만나 모시고 와서 저 올레 멀쿠실낭 상가지에 걸어두고, 나 왔소 하니, 아무 때도 부인의 의견은 빨랐던지, 소사만이 각시 맨 보선 발에 문 앞에 나가 보니, 멀구슬 나무 가지에 걸어둔 백년조상은 바람에 떨어져 땡그르르 궁굴고 있었구나. 

법지법이나 하나 마련하려고 오뉴월 염천(炎天) 한 더위에 멀쿠실낭 아래 누었다가 선뜻 하여 일어나면, 병을 주어 얻어먹는 법 마련해 두고, 백년조상을 얼싸안고 안으로 들어가 향(香)을 삶아 목욕(沐浴)을 시켰다. 연양상고팡으로 상다락 중다락 하다락을 매어놓고, 상다락에 모셔서 기진 메를 떠 올리고, 술 석잔 올리고 삼선향을 건드렁이 피워서, 소사만이하고 소사만이 각시하고 애기들과 조상에서 오늘부터 우리들 구명도식(求命圖食)을 시켜주십사 부탁를 하여두고 뒷날 아침은 밝으니 소사만이 마사총을 둘러매고 굴미굴산 노조방산 아야산 신산곳을 도올라 나는 꿩에 총을 쏘면, 백발백중으로 맞힙데다. 맞혀오면, 가죽 머리는 팔고 살코기는 구명도식하고 동네 전준이 기철관(譏察官 : 조선조 때 죄인의 탐정수사(探偵搜査)에 종사하는 포도청의 한 벼슬, 기찰포교) 존위(尊位 : 한 면이나 또는 한 동네의 어른이 되는 사람.) 으뜸(향장)들 몫도 나누고 하는 것이 한달 두달 한해 두해 넘어가니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도 생기고, 남단북답(南田北畓) 너른밭도 나오고, 몰마쉬(牛馬) 유기전답(鍮器田畓) 재물재산(財物財産)을 이루어 부자로 살게되니, 소사만이는 부모조상은 잊어불고, 백년조상만 위하니 저승법은 이수농장법(맑고 공정한 법이란 뜻)이라 죽는날 참실 같은 법이라서 오월은 초나흘 팔월은 열나흘 섣달 그믐이 되면, 저승 팔대문을 열어서 저승간 영가(靈駕)들을 다 내보내어 인간에 내려가면 삼명일(三名日:설, 단오, 추석 세 명절)을 받아먹고 오라고 저승 팔대문을 열었는데, 하루는 염내왕(閻羅王)이 우도나철 좌도나철을 거느리고 순례차를 뎅기단 보난 왠 한 영가(靈駕)들이 비새같이 울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인간에 내려가 애기 자손들한테 삼명일(三名日)을 아니 받아먹으려 해서 울고 있느냐?”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인간 세상에 가서 주년국 땅에 살았으면서도 애긴 아들 하나 소사만일 낳아 두고 왔습니다.” 

소사만이 이 애기에게, 고대광실 높은 집도 못 물려주고 남단북답 너른 밭도 못 물려주언, 세살은 되니 아방이 오고, 다섯 살은 되니 어멍이 저승에 와버려서 거리 걸식, 동녕바치 짓을 하여 얻어먹다가 굴미굴산 올라가 백년조상을 만나니, 백년조상을 연양상고팡에 모시고 백년조상은 잘 위하면서도  우리는 삼명일 기일제사(忌日祭祀) 때가 되어 내려가도 물 한적(一滴)을 아니 주니 내려가도 물 한적을 못 얻어 먹엉 올거난 비새같이 울고 있습니다 하며 하소연을 하니, 염내왕이 하는 말이, 이런 괘씸한 불효자식이 어디 있겠느냐. 염내왕이 몸받은 삼차사를 불러다가 주년국땅 내려가서 소사만일 잡아오라 하니, 삼 차사는 남방사주(藍紡紗紬) 붕애바지(솜을 넣어 만든 바지) 북방사주(白紡紗紬) 저고리, 벌통행경(筒行纏)에 백농(白綾) 보선에 섭수(夾袖)(섭숭메, 동달이, 군복의 일종, 검은 두루마기에 붉은 안을 받치고 붉은 소매가 달렸으며, 뒷솔기가 길게 째졌음.) 미투리에 종이 반절 달아매고, 남수화주(藍水禾紬) 적전대(赤戰帶) 남비단에 섭지(夾袖), 여비단에 쾌지(快子), 운문대단 안 받쳐놓고, 수꾸리 댄 짐을 하고 홍사줄(紅紗-)를 차려놓고, 억금 창검 비서리 창검을 둘러받아 금세상(今世上)으로 살대같이 내려서가는구나. 

백년 초상은 연양 상고팡에서 이걸 미리 알고 이거 큰일났구나. 소사만이가 죽어버리면, 물 굶게 되었다하여 백년초상은 연양 상고팡에서 주년국 땅 소사만아. 주년국땅 소사만아. 하도 요란하게 불러가니, 소사만이 각신 하도 요란하게 불러 귀 듣기도 싫으니 백년 초상도 배불러가난 별 요망을 다 하고 있다며 연양 상고팡에 날려들어 벡년조상을 들러다가 뒷밭으로 던져버리니, 땡그르르 소사만아, 땡그르르 소사만아. 백년 조상은 그대로 소사만일 불렀다. 소사만인 그날도 마사총을 둘러매고 굴미굴산 노조방산을 올라가 나는 꿩에 총질하면 헛방이고, 총질하여 맞추면 헛방이고, 이거 필유곡절한 일이로구나. 집안에 무슨 일이 당했구나 하여, 소사만이가 집으로 내려오는데, 귀에 쟁쟁 이름 삼자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뒷밭으로 바라보니, 백년 초상이 땡그르르 소사만아. 소사만아. 너는 부모 조상 박접한 죄로 차사가 너를 잡으러 오고 있다 외쳐가니, 아이구. 조상님아, 이건 어떵허난 이 노릇이 되었수과. 그런게 아니라 너는 부모 조상에 물 한적을 아니주었던 죄로 염내왕의 부린 사자가 너를 잡으러 온다고 하니, 이걸 말해주려고 하도 널 불러가니까, 너의 각시는 그것도 모르고 나를 이처럼 박대하였구나. 조상님아. 과연 잘못했습니다. 여자란 건 산으로 돌아앉아 소피를 보면, 치메깍(치마자락) 젖는 걸 생각 못하는게 여자의 몸이 아닙니까. 죽을 점(占)은 하고 살 점은 못합니까. 살 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 그러면 대공단(大貢緞)에 고깔들여 머리 삭발(削髮)하고 상탕(上湯)에 메를 짓고, 중탕(中湯)에 목욕하고, 하탕(下湯)에 수족을 씻어서, 여기 높은 병풍과 젯상을 차리고, 실과 전상을 차려놓고, 굴미굴산 노조방산 아야산에 태역단풍 청결한 곳으로 가서 제물제향(祭物祭享)을 다 차려놓고, 삼차사 몫으로 신발체를 차리고 인정을 많이 걸어서 병풍에는 주년국의 소사만이라 이름 삼자 써 붙혀 두고, 삼선향(三仙香)을 피워서, 백보(百步) 밖에 엎드려 있으면 알 도리가 있으리라. 

너의 각시랑 집안 안으로 천신기(天神旗)는 기 낮추고 흑신기(월덕기)는 도투어 천지월덕(큰굿을 할 때 큰대에 달아매는 기. 창호지로 3각형 모양으로 크게 만드는데, 보통 ‘월덕기’라고 한다.) 이망주법 상버리줄(큰대를 지탱하는 지선(支線)) 토시(겨울에 손목에 끼는 것) 전명녹이를 메우고 안으로는 사당클(큰굿을 할 때, 상방(마루방) 사방 네 벽에 선반처럼 달아맨 4개의 기본 당클(祭棚). 삼천천제석궁당클, 시왕당클, 문전본향당클, 마을영신당클을 말한다.)을 메어 팔만금사진(八萬軍士陣)을 기치발립(旗幟發立) 하여서 저승 염내왕을 청하여 염내왕의 몸받은 차사님 전에 관디(冠帶) 삼베(세벌) 띠 삼베 훼(鞋)(신의 일종. 수혜자(水鞋子).) 삼베, 대 말치(大斗) 소 말치(小斗) 주석 상동이(좋은 동이)상백미(上白米) 중백미 하백미를 잔뜩 싣고, 인정 걸어 집안에서 큰굿하여 방액(防厄)을 막고 있으면, 알 도리(道理)가 있을 거라 하니, 주년국땅 소사만인 벡년조상 시키는대로 해서 산으로 올라 정성을 드리고, 소사만이 각시는 집으로 이전처럼 정성을 드리는 가운데 삼차서는 내려서다 보니, 초미연단향 내(香臭)가 건드렁허게 나니, 상냇발(향내 나는 쪽)을 따라서 가고 가는 것이, 소사만이 차려놓은 데까지 내려가니, 우선 시장하여 시장기를 멀리고 신발을 갈아신고 노잣돈(往來路需)을 받고 삼차사가 생각해보니, 남의 것을 공짜로 먹으면 목걸리고 등걸리는 법이로구나. 주인 모른 건 무명지제물(無用之物)이라 했으니 주인 공사나 알아보려고 병풍쪽을 쳐다보니 주년국땅 소사만이란 이름 삼자를 써 붙였으니, 아차 불싸 소사만이를 잡으러 오는데 소사만이 정성을 받게되었구나. 그 법으로 기일(忌日) 명일(名日) 식게(祭祀)법 할 때는 지방(紙榜)을 써 붙이는 법도 마련해두고, 소사만일 찾아보려고 주년국땅 소사만이를 부르니 소사만인 백보 바깥에 엎드려서 “저 소사만이 여기 있습니다.”

삼차사가 달려드러 홍사줄을 내어놓고 사문결박(私門結縛)을 하여가니, 차사님아. 차사님아. 한 백코(백개의 고름, 고, 올가미)만 풀어줍서. 우리집에 가서 가속(家屬)에게 울며 마농먹듯 따르는 아기들에게 난 저승 간다 말해두고 차사님과 같이 저승 가쿠다 하니, 차사님도 생각해보니 남의 걸 그저 먹을 수도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하니, 차사는 소사만이 앞을 세워 소사만이 집으로 들어서 가니, 울랑국범천왕(큰북) 대제김(큰북) 소리 소제김(작은 북) 소리가 왈강실강 나고, 삼차사의 타는 말안장 들여 대액년(大厄緣)을 막고 있었다. 삼차사가 곰곰히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로구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인정이 과숙하민 천하(天下)도 받지 말라는 법처럼 조금이라도 살아나려고 해서 천수방액을 막고 있으니, 이걸 풀어주면, 사필이 집을 가르쳐 달라 하고 사필이네 집엘 들어간 홍사줄을 내어놓고 사필이를 사문절박(私門結縛)을 해서 저승을 데리고 들어가니, 염내왕의 몸받은 우심판관(右審判官) 좌심판관(左審判官)들이 문서(文書)를 걷어 보니, 사필이가 죽을 연령(年齡)은 아니 됐구나. 

삼차사를 불러다가, 너는 인간에 내려가 사만이를 잡아오라 하였는데, 사만이에게 뇌물(賂物)을 먹어서 사필이를 잡아 왔으니, 사필이는 다시 인간세상에 내보내 두고, 삼차사를 죽이려 하였다. 저승 법도를 어긋났으니, 모래 뒷날 사오시(巳午時)가 근당하면, 죽이겠다 하여 전옥(典獄)으로 하옥하니, 하루 이틀 넘는 게 염네왕에 몸받은 좌심판관 우심판관 좌도나철 우도나철 문서(文書) 책(冊)지기들이 순례차 나와서, 팔자동간(八字同官) 유학성제(幼學兄弟)가 아닙니까. 우리들을 살려줍서. 인간에 간 받아온 뇌물(賂物)을 다 드리겠습니다 하니, 인정이 과숙하여 어찌해야 우리가 삼차사를 살릴 도리(道理)가 있느냐 하니, 그리말고 오늘 저녁 염내왕이 옥롱성에 잠을 자버리면, 저승 문서(文書)를 내어놓고 주년국땅을 찾아 소사만이 이름 아래 서른에 죽으라는 걸 열 십자(十字) 위에 새 한 마리를 올려놓아 한 글자를 비껴쓰면 일천 천자(千字)가 될 것이니, 이것만 고쳐줍센 하니, 걸랑 기영 하시게. 내게 무관(無關) 아니로다. 

그날 저녁엔 염내왕이 옥롱성에 잠이 드니, 삼차사 말하는 대로 큰 붓을 들고서 서른에 죽으라는 걸, 한 자(字)를 비껴 일천 천자(千字)로 고치고 삼천년(三千年)으로 고쳐두고, 뒷날은 모래 뒷날 사오시(巳午時)가 되었더라. 앞 밭에 가 작두(斫刀) 걸라. 뒷 밭에 가 벌통(罰桶)걸라. 자객(刺客)놈을 불러다가 동에 펏뜩 서에 펏짝, 삼차사를 죽일 팔로 둘러가니, 삼차사가 하는 말이 우린 무얼 잘못한 죄로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마는 주년국땅 소사만이 서른에 죽으라는 문서를 우리 눈쪽으로만 보여줍센 하니, 염내왕의 몸받은 좌심판관 우심판관 좌도나철 우도나철은 저승 문서를 펼쳐보니, 서른에 죽으라는 게 아니라 삼천년(三千年)이 되었더라. 아차 불싸 이거 서로 쳐다봐도 난 모른다는 듯이 일이 되니, 저승 문서를 고치고 삼차사는 전옥(典獄)에서 나왔던 염내왕에 몸받은 삼차사가 되었습니다. 저승법은 이수농장법이라 인정 실은 배(船)가 파할 수 있습니까. 이 공을 드려 이 정성을 드리거든 집안 만고 무사태평(無事泰平) 시켜주소서. 끝.

aaaaa.png
▲ 나까시리(시루떡) 놀림.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187666_215473_4247.jpg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나까도전침'(나까시리 놀림)

시왕맞이 액막이 끝에 한다. 큰 시루떡을 들어 공중에 던졌다 잡았다 하며 춤추다가 시왕(十王)에게 이것을 올리고, 각종 하위 잡신도 대접하는 제차이다. 이 때의 큰 시루떡을 나까시리라 하고, 시루떡을 놀리며 춤추는 것을 나까시리 놀림이라 한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시인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