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9) 마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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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농지. ⓒ 김정숙

마농지 담글 시기다. 마농지는 제주의 대표 장아찌다. ‘지’는 장아찌를 말한다. 장아찌는 주로 채소류를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에 담가 삭힌 전통발효음식이다. 저장음식으로 든든한 밑반찬이다. 채소를 갈무리하는 시점에 간장보다는 주로 된장이나 고추장에 담근다.

제주음식에서 장아찌는 흔하지 않다. 된장이나 고추장에 담그는 경우는 없고 육지부와는 달리 간장에 담갔다. 마늘, 무말랭이, 반치라고 하던 파초줄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것마저 거의 사라졌지만 마농지만 예외다. 사계절 신선채소가 흔해서 저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농지는 집집마다 담가 놓는 제주도민의 밑반찬이었다. 겨울을 초록으로 버틴 마늘은 봄기운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지 담는 마늘은 쫑이 나오기 전에 뽑아서 잎을 따내고 줄기만 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묵힌 간장에 담가 삭힌다. 무말랭이를 섞어 담기도 한다.

여름부터는 밑반찬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간장의 감칠맛이 마늘에 스며들고 발효되면서 맛이 깊어진다. 짜서 손으로 조금씩 찢어 먹었다. 저장성을 가지려면 어쩔 수 없었다. 김치와 마농지가 밥상 위 양대 산맥이었다. 보리밥에 물 말아 먹을 때는 마농지 이상의 궁합은 없었다.

목장에 가는 사람도, 밭에 가는 사람도, 학교 가는 도시락에도 마농지 하나로 통일하던 시절도 살았다. 질리게 먹다가 고등어나 갈치가 생기면 마농지를 넣고 조려 먹기도 했다. 장독대에 간장, 된장 다음에 큰 항아리가 마농지였다. 그렇게 먹고 살았어도 질려서 먹지 않는다는 사람은 못 봤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많은 먹거리가 넘쳐나도 제주사람들은 마농지를 놓지 못했다.

마농지의 변신은 무죄다. 부피기준으로 진간장1, 물1, 식초0.5, 설탕0.5의 비율을 기준으로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서 조미액을 만든 다음 끓인다. 뜨거운 조미액을 준비한 마늘에 부어 익힌다. 집에서 담근 식초라든지 살균하지 않은 발효식초를 쓸 때는 나중에 따로 넣는데 마농지에 부은 조미액이 식은 후 붓는다. 뜨거운 조미액을 붓는 이유는 오래 두어도 마늘이 물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발효음식이라기 보다 피클에 가깝다. 담가서 2~3일 후부터 먹을 수 있다. 장아찌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나 젊은이들 입맛도 곧잘 잡는다.

주변 지인들 중에는 육지부에 나가 사는 자녀들에게 보내기 위해 마농지를 담는다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일본에 까지 보낸다는 사람도 있다. 반 서울사람이 된 우리 아이도 ‘엄마 마농지 좋아, 근데 여긴 왜 없지?’ 한다.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김치와 같이 양대 산맥의 자리를 넘보는 건 과욕일까. 그래! 제주에는 마농지 문화가 있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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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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