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0) 톳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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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톳밥. ⓒ 김정숙

봄볕은 활동적이며 찰지다. 머무는 자리마다 싹이 돋고 꽃봉오리가 터진다. 텃밭에 터주 대감인 부추, 미나리가 기지개를 켜며 올라온다. 그래봤자 봄철 밥상은 가난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년기 대부분을 할머니 손에 자랐다. 떨어진 동백꽃을 다 주워 모아도, 송아지를 못살게 굴어도 고사리 꺾으러 간 할머니와 저녁은 늘 더디 왔다.

그 봄날 할머니와 같이 먹던 톳밥은 잊을 수 없는 음식이다. 톳밥은 춘궁기에 밥을 늘리기 위해 해 먹던 음식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보릿고개를 벗어난 시기라 누구나 보리밥은 배불리 먹고 살았다. 할머니의 톳밥은 별식이었던 셈이다. 고사리를 꺾다가 꿩마농(달래)을 만난 날 해먹는 밥이다. 말린 톳을 물에 불려 적당히 썰어 넣고 밥을 짓는다. 물론 보리밥이었다. 밥맛은 특별하지 않다. 솥에 되직하게 된장을 풀어 끓이다가 달래와 기름을 넣는다. 이 된장으로 밥을 비벼 먹었다. 볶음쌈장 비슷하다. 달래가 들어가면 특별히 더 맛있었다.

한동안 잊혀지는 듯 했는데 요즘 건강식으로 톳밥 인기가 좋다. 톳은 칼슘, 요오드 등 무기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반면 칼로리는 낮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해서 수출도 많이 했다. 톳과 함께 여러 가지 식품들을 혼합해 밥을 짓기도 하고 비빔장도 취향대로다. 여러 가지 나물을 같이 넣고 고추장이나 양념간장을 만들어 비벼도 좋다. 강된장찌게나 양념볶음된장도 좋다. 입에 익어서인지 달래 넣고 볶은 된장이 구수하고 맛있다.

해안 마을에서는 마을공동으로 톳을 채취하는 시기다. 가을부터 자라기 시작한 톳은 봄볕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미역, 고사리, 무말랭이와 함께 톳은 제주사람들이 저장하는 봄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고 별반 내 세울 것 없는 날 만만하게 먹을 요량으로 준비한다. 톳냉국, 톳나물, 톳밥. 어딘지 모르게 애잔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톳은 귀티가 난다. 진가를 알게 됐고 다양하게 가공하며 수요가 많아졌다. 좋은 음식을 먹고 살았다는 문화 부심마저 하게 된다. 

사람이 걸으면 길이 되고 함께 걸으면 문화가 된다. 회오리처럼 일으켜주는 것도 아니고, 품어주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함께 걸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겉만 봐서는 모르는 게 사람만은 아닌 듯 싶다. 수수해도 여러모로 쓰임새 좋고 변함없는 영양가를 지닌 톳 같은 사람들이랑 오래 함께 걷고 싶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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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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