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최근 관광, 역사, 사회학계 모두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과거 국가 권력이 저지른 폭력의 기억, 현장을 돌이켜보면서 오늘 날 반성과 깨달음을 얻는다. 제주의 경우 4.3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진지동굴, 알뜨르비행장 등 다크투어리즘으로 활용할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진주만 공습의 장소였던 하와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제주도 다크투어리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하와이와 제주, 그리고 다크투어리즘] ② 침몰 전함 위 기념관, 생존자 기억 전면에
보통 하와이하면 대표적인 명소로 두 가지를 떠올린다. 와이키키 해변과 진주만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전투기들이 공습했던 진주만은 ‘가보면 기념 건물 정도 있겠네’ 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막상 가보면 사뭇 진지하고 장엄한 분위기와 마주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가이드들도 ‘숙연하고 성스러운 장소’라고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과 미국이 정면으로 충돌한 일명 ‘태평양 전쟁’의 시작이 바로 진주만 공습이다.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 50분경(하와이 기준)부터 일본군 전투기 350여대는 두 차례에 걸쳐 진주만 미군기지를 습격했다. 이 공격으로 2390명이 사망했고 117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 민간인은 49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미 육·해·공군과 해병대원이다. 항구에 정박해 있던 전함 8척 중 5척이 침몰했고, 선박 21척이 침몰하거나 심하게 망가졌다. 항공기는 164대가 완파됐고, 159대가 부서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전쟁에서 미군의 핵심 전력이었던 엔터프라이즈호 등 항공모함 3척은 기습 당시 진주만에 없었다. 대규모 유류저장시설, 잠수함 기지, 해군용 부두와 선착장도 미군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으로 피해를 입지 않아 추후 반격의 기회를 살릴 수 있었다.
현재 진주만 일대는 추모 공간과 함께 군사기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 태평양사령부도 이곳에 있다. 진주만 습격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의 정식 명칭은 ‘World War II Valor in the Pacific National Monument’(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국립 추모명소)이다. 1962년 개장해 미 해군이 관리해오다 1980년부터 '국립공원'으로 격상시켜 미국 내무부 소속 국립공원관리국에서 관리한다. 이곳은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방문자 센터와 함께 세 가지 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매해 12월 7일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린다.
진주만 공습 때 일본군 전투기 폭격으로 침몰한 전함 ‘USS 애리조나’를 추모하는 기념관과 마찬가지로 ‘USS 오클라호마’ 기념관, ‘USS 유타’ 기념관이다. 한국어로 ‘기념관’(Memorial)이란 표현을 붙였지만 실제로 보면 흔히 생각하는 단순 건물만은 아니다. USS 애리조나는 가라앉은 전함 위에 수상 건물을 지었고, USS 오클라호마는 인근에 퇴역전함 미주리호를 상시 정박시켰다. 세 곳을 방문하려면 미 해군이 운영하는 수송선을 타야만 한다. 정박이 힘든 악천후에는 근처까지 이동해 둘러만 보고 온다.
이중 1962년 지어진 USS 애리조나 기념관은 진주만 공습 희생자 모두를 기리는 일종의 대표 상징으로서 ‘미국의 3대 추모 기념물’로 꼽힌다. 바다 위에서 침몰 전함을 내려다보는 독특한 구조로, 공습 때 사망한 900여명의 선원·해병이 잠들어있다.
USS 애리조나 기념관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습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USS 애리조나 선원 6명은 ‘자신은 죽어서 동료들과 함께 하겠다’는 취지의 유언을 남겨 사후 전함에 안치됐다.
방문자센터는 크게 전시관, 극장, 기념비, 잠수함(USS Bofin) 등을 갖추고 있다. USS애리조나가 사용했던 닻과 종, 희생자 이름 한 명 한 명을 써넣은 추모비를 포함, 전체적으로 마치 공원처럼 조성돼 있다. 어디에 가도 USS 애리조나 기념관과 미주리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방문자들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전시관은 ▲전쟁의 길 ▲공격이란 이름의 두 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전쟁의 길은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기 전 미국, 일본의 사회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한다.
미국 함대로 인해 일본이 강제로 개항한 1853년부터 거슬러 올라가, 공습이 벌어진 20세기 초중반 양국의 정치와 스포츠, 음악 등 문화까지 상세히 나열해 놓고 있다. 이런 구성은 전쟁이 매우 복잡한 흐름 속에 벌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공격 전시관은 그 시기 사용하던 레이더, 대공포와 함께 혈흔이 묻어있는 해군복까지 전시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모은다. 일본에서 제작한 영상 자료들도 대거 등장한다.
‘World War II Valor in the Pacific National Monument’에서 가장 크게 주목할 점은 바로 ‘생존자’의 증언을 비중있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7개 언어로 제작된 오디오 안내 시스템은 진주만 공습을 경험한 고사포 조종수, 해병대원, 군사부호 해독자 등의 실제 목소리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폭격을 맞은 전함에서 불기둥이 수백 피트나 솟아올랐습니다.”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에, 살덩이들이 엉망으로 나뒹굴었죠.”
“그때 진주만은 상상할 수 있는 파괴 그 자체였습니다.”
생존자들은 미사여구나 미화 없이 각자가 기억하는 1941년 12월 7일 아침 진주만 모습을 들려준다. 이 뿐 만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순간을 기억하는 생존자 인터뷰가 전시관 곳곳에서 영상으로 나온다. 공습 때 활약했던 군인, 의사, 간호사 등 주요 생존자들의 삶과 예전, 최근 사진도 전시관 마지막 출구에 집중있게 배치했다. 한해 150만명에 달하는 인원이 이곳에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주만을 기억한다.
추모 공간에서 역사의 순간을 경험한 생존자 기억을 음성, 영상, 자료 등 다각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진주만 사례는 제주4.3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관련기사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