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환쟁이, 딴따라
글쟁이, 환쟁이, 딴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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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15)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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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건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야”

요즘 제주4.3에 관해서 강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난감합니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4.3에 대해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기관 입장에서는 어른 강의보다 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일수록 더 어렵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들 강의는 막연한 공포감까지 생깁니다. 한 번은 1~2학년 앞에서 4.3이나 제주도 설화에 관한 그림책을 읽었다가 진땀을 뺀 적이 있습니다. 제주도에 관한 내용은 담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재미가 없다고 푸념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역시 공부가 부족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3 시를 많이 썼고 관련 활동도 누구보다 많이 했던 선배에게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선배님은 자료를 이것저것 챙겨주시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이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현기영 선생님께서 최초로 4.3소설을 쓰고 기관에 불려서 얼마나 많이 맞은 줄 몰라. 학자들, 역사가, 정치가 똑똑한 사람들 많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글쟁이(작가), 환쟁이(화가), 딴따라(음악인·영화인 등)야. 용감하게 앞뒤 계산 하지 않고 밀어붙이니까.” 
저는 선배의 말을 듣고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고립된 제주에서의 항쟁은 무모했다”고 4.3을 평가한 한 역사가의 기록이 떠오르고 《김대중 자서전》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세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는 다녀오면 바로 구속될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 세력이 탄압을 받습니다. 셋째는 민주화 운동이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북에 가는 것은 국민의 지지와 동의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허가 없이 멋대로 가면, 다른 사람들도 제멋대로 방북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혼란을 어떡하겠습니까. 또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래도 문 목사는 다녀와야겠다고 우겼다. 문 목사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분이다. 용기가 있고 어떤 경우라도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만을 좇다가 가끔씩 현실을 못 볼 때가 있었다. 그것을 탓만 할 수는 없다. 옳으면 행하는 것, 그것은 순결한 영혼을 지녔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문동환 의원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하지만 문 목사는 우리 말을 듣지 않았다. - 《김대중 자서전1》 중에서
1989년 봄 문익환 목사와 당시 대학생이었던 임수경 전 의원이 평양을 방문한 일로 공안 정국이 시작되었죠. 문익환 목사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1988년 7월 7일에 발표한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의 6개 항 중에서 첫 번째 항을 믿고 방북을 결행했습니다. 제1항은 '남북 동포 간의 상호 교류 및 해외 동포들의 자유로운 남북 왕래'였습니다. 방북에 앞서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를 방문한 자리에서 격한 토론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김대중 총재 입장에서는 ‘방북’이라는 좋은 빌미를 정권에 줄 수 있기 때문에 만류를 한 것입니다. 이는 좋은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철저한 이성에 근거해 판단을 할 것인가, 심장에서 외치는 고동 소리에 몸을 내맡길 것이냐.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토론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문학, 영화를 다른 장르보다 더 많이 보는 편입니다. 토론을 하더라도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나서 ‘문학 토론회’를 합니다. 문학이나 예술은 어떤 주장을 하거나 답을 보여주지 않고 ‘거리’를 두기 때문에 토론이 자리 잡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대학 교수나 지식인이 시대를 대변했다면 이제는 작가나 영화감독, 예술가가 시대를 대변할 것입니다. ‘이상한 영화감독’에 대한 중학생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영화감독이라면 이상한 영화를 만들 것이다. 아마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표현할 것이다. 예를 들면 잘못된 것을 마치 맞는 것인 양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다.

사회적 문제나 여러 가지 논란을 ‘OO주의’ 같은 걸 믿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영화를 본 관객 중에 ‘맞아, 보니까 이게 사실이네.’라는 사람이 생기고 현실에서도 문제로 가득해질 수 있다. - 어느 제주지역 중학교 1학년 학생 글 
철저히 이성으로 가는 작품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철저히 가슴이 두드리는 대로 표현하는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영화, 특히 한국영화들이 가진 특징은 ‘반거들충이(배우던 것을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 같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들의 수준은 무척 심각합니다. 감성에 호소하는 것 같지만 고정관념에 의존하고, 허무맹랑한 주장에 논리를 어쭙잖게 입혀서 관객의 착각을 만들어냅니다. 관객들은 그런 작품들을 신앙처럼 믿습니다. 출판시장이나 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그런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입니다. 

4.3에 대한 생각이나 현재 우리나라 정치나 사회에 대한 생각은 자유이지만 이런 저런 고정관념과 편견, 맹목적 신앙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아주 오랜 세월 지혜롭고 순수한 독자들의 손에 손을 거친 문학고전과 예술을 찾으세요. 10대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대공황 직전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엄청난 호황을 누릴 때였기에 어디서든 사치스런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전쟁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은 안도감에 취해 미친 듯이 흥청거렸습니다. 

‘개츠’라는 아이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화려한 미래에 대해서 꿈꿨고 그것을 매일 상상하여 거의 현실로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이름도 ‘개츠비’로 바꿨죠. 당시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 완전히 등극하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개츠비’라는 인물이 어째서 가장 미국적인 인물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작정 집을 떠나 방황하다가 우연히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을 위기에 빠진 부자를 구해주고 나서 인생의 행운을 움켜쥔 개츠비는 장교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아름다운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데이지를 차지할 만한 배경도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도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데이지는 기다리다 지쳐 톰 뷰캐넌이라는 전통 가문의 부자와 결혼해 아기까지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기를 출산한 날 톰 뷰캐넌은 자신의 정부(情婦)를 만나러 가버립니다. 남편에 대한 환멸감은 개츠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번집니다. 데이지와 개츠비의 사랑이 다시 꽃피려는 순간 데이지는 머뭇거립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소설가 김영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츠비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도 모르는’ 이른바 ‘뉴 머니’(new money)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데이지와 남편 톰 뷰캐넌 등은 전통적인 부유층인 이른바 ‘올드 머니’(old money)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올드 머니의 딸인 데이지는 끝내 뉴 머니의 남자 개츠비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남편인 톰에게 돌아섬으로써 비극이 되고 맙니다. 

이제까지 미국 사회를, 또는 세계를 이끌어왔던 전통적인 자들의 허세와 허영, 무지, 방종, 나약함에 맞서는 새로운 인물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 이야기는 10대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줍니다. 

“다들 썩었어.” 내 외침이 잔디밭을 건너갔다.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 《위대한 개츠비》의 작중 화자인 닉이 개츠비에게 한 말
데이지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여자입니다. 개츠비 역시 자신의 환상을 사랑한 것이지 실존하는 데이지를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외도하는 남편을 차버리고 싶지만 남편과 이혼하면 양육의 부담과 이제까지 누려 왔던 사치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혼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개츠비에게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용기를 내고 남편과 이별 선언을 할 수 조차 없죠. 차를 몰아 남편의 정부(情婦)를 치어 죽인 것은 데이지였지만 그 책임은 개츠비가 떠안았습니다.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개츠비가 죽었을 때 데이지는 장례식 참석은 커녕 조화조차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거듭 의존하는 것으로 생을 이어가며 단 한 번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인간군상의 밭에 피었다가 이내 시들어버린 꽃 한 송이의 슬픈 이야기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동명의 영화인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데이지와 남편 톰 뷰캐넌의 됨됨이가 훨씬 잘 표현돼 있습니다. 

어른들이 10대에게 지금과 같은 세상을 남겼다는 사실이 같은 어른으로서 참으로 창피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세상의 벽을 넘지 못했다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데이지와 톰 뷰캐넌처럼 이용만 했습니다. 

제가 언론운동을 할 때 전국의 시민들과 신문을 들고 배달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먼 지방 같은 경우는 대형 신문만 배달되기 때문에 정치가 왜곡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먼 지방까지 끝내 배달되지 않았던 신문들을 거기 사는 시민들이 힘을 합해 배달하자 놀랍게 선거 결과가 바뀌었습니다.

젊은이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서 ‘노 보트 노 키스’(no vote no kiss : 투표 안 한 애인에게는 키스를 해주지 않는다는 선언) 캠페인을 한 것도 주효했습니다. 미국 젊은이들의 선거 캠페인이었던 ‘노 보트 노 섹스’(no vote no sex : 투표 안 한 애인과는 잠도 같이 자지 않는다는 선언)를 우리 실정에 맞게 바꾼 것이죠. 이런 선거 운동을 하고 언론 운동을 한 것은 시민들이 보다 나은 정치를 보여줄 것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캠페인에 이득을 보아 권력을 차지하게 된 당시 야당 정치인들은 결과를 당연한 듯 누렸습니다. 비단 정치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출판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민들의 뜨거운 참여를 통해서 뜻밖의 매출을 올렸을 때 그것을 ‘마케팅 결과’로 받아들이고, 시민들의 뜻을 어떻게 담아내고 보답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정치와 출판시장은 더욱 외면을 받고 말았습니다. 

제 경험 안에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정치권과 출판계를 소재로 담았지만, 어른들이 몸담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책이라는 매체는 정치보다 더 뜨거울 수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을 화산처럼 타오르게 했던 것도 책의 힘이었으니까요. 시민의 열망과 실천이 정치와 책에 뜨거운 불을 댕겼지만 오히려 사그라드는 것을 보고 저는 저의 어리석음을 자책했습니다. 공자가 현실 정치에 열정의 불을 댕겼지만 타지 않자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듯, 저 역시 10대에게 불을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2009년 겨울 조계사를 찾아 하루 종일 김장을 담그고 소리 없이 사라진 시민들의 고마움을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어른들이 수없이 헛발질하며 일을 그르치고 공기를 더럽혔지만 아직도 정치가 완전히 박살나지 않은 것은 소리 없이 묵묵히 일을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지 예산 삭감으로 정부 보조가 끊긴 전국 차상위계층 아이들의 공부방, 장애인시설·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 등 1000여곳에 전달할 김치 5000포기(15톤)를 만들기 위해 턱없이 부족했던 우리들은 신문과 인터넷 여기저기에 도움 요청을 했습니다. 그 때 생각지 못한 시민들의 호응으로 200여명이 비닐장갑을 입고 행사에 참여해 하루 종일 고생했습니다. 

당시 언론을 망가뜨리고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전국의 강을 오염되게 했던 권력자들에게 맞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분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잊지 않습니다. ‘덕(德)’이란 베푸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보답하려는 사람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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