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감수성과 고통감수성
폭력감수성과 고통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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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16)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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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멀고 폭력은 가깝다

“어릴 적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을 때는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의 아름다운 우정인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 읽으니 ‘폭력’이 두드러지게 보이네요. 제제가 이런 폭력에 노출되었는지 처음 알았어요.” - 문학 고전 강의를 듣던 부모님들 반응
요즘 어른들과 문학 고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어렸을 적에 읽어 봤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어린 왕자》 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를테면 ‘문학고전 다시 읽기’라고 할까요? 울림은 더 깊었습니다. 중학생 그룹과 고등학생 그룹도 같은 작품을 읽지만 삶의 무게감이 더해지니 다시 읽은 문학의 폭발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문학작품을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자기 읽기’가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째서 이게 가능할까요? 한 공공도서관에서 ‘부모를 위한 문학고전 산책’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도 예전에 읽었던 문학작품을 다시 읽었습니다. 놀랍고 흥미롭고 새로웠습니다. 아마 우연히 옛날에 읽었던 문학작품을 집어서 몇 페이지 읽는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한 어머니가 제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제제야 안녕 오랜만이구나
너를 중학교 때 만났었는데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야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만 너를 다시 만나게 돼서 기뻤어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나 하면서 당황하게 되더라
내가 기억하는 나의라임오렌지는 제제와 중년아저씨의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다시 읽은 너의 이야기는 세상에 네가 아빠에게 맞고 누나에게 맞고 너의 일상이 너무 폭력적이라 나는 정말 깜짝 놀랐어.  
그리고 되게 슬퍼졌어.
내게는 너와 비슷한 8살 아들이 있어. 얼마나 예쁘고 섬세한 아이인지 모른다.
지난 토요일에 한라도서관에서 음악공연이 있기에 가자고 했는데 가기 싫다고 하더라. 도티의 게임 동영상이랑 허팝을 봐야 된다고 안 간다는 거야. 나는 화가 났어. 누나랑 같이 가서 봤으면 했거든. 처음엔 설득을 했지만 나중엔 소리를 질렀지.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울면서 말하더라 "무섭게 말하지 마"  문득 생각했지. 이 나이에는 엄마가 큰소리로 말해도 무섭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제제가 아빠에게 허리띠로 맞고 누나에게 맞는 것만 폭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크고 무섭게 말하는 것도 내 아들에게는 폭력이겠구나. 우는 아이를 달래며 너를 떠올렸어. 
- 초등학생 아이들을 키우는 한 어머니
편지를 쓴 부모님은 ‘폭력’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작품 속 제제는 끔찍한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였지만, 일상에는 그런 폭력 말고도 섬세하고 조용한 폭력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청소년들에게 주문하는 것도 바로 ‘조용한 폭력’입니다. 몇 년 전에는 인권 감수성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이제는 ‘폭력 감수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인권은 멀고 폭력은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다 지나갔다, 얘야. 모두 다 끝났어. 너도 이 다음에 크면 아빠가 될 거야. 그리고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끝없이 절망스러울 때가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 아빠는 산뚜알레이슈 공장의 지배인이 됐어. 이제 다시는 크리스마스에 네 신발이 비어 있는 일은 없을 거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아빠가 제제에게 한 말
제제만 동의를 했다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제는 그럴 수 없었어요. 마지막 장면이 제 기억에 가장 남는 까닭은 제제 아빠의 모습과 두 아이 아빠인 저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제제의 눈으로 그 장면을 보려고 애쓰다가 너무 소름이 돋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때를 기억합니다. 둘째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제 분노가 터져버렸죠.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이 영원히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아이 가슴에도 그 때 그 장면이 새겨져 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저 사람은 뭣 때문에 날 무릎에 앉혔을까? 저 사람은 내 아빠가 아냐. 내 아빤 돌아가셨어. 망가라치바가 내 아빠를 죽였어.’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의 독백
준엄한 판사의 선고 같은 제제의 독백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 못할 사정도 있는 거니까요. 아이가 철부지 못난이처럼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아이가 부모의 고통을 알아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가 알아주는 모습을 보아야 아이 역시 남의 고통을 알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남의 고통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푸념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형제가 많지만 아버지의 실직으로 이사를 하고, 온 가족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가족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이 왜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부모님들과 진솔한 토론을 하고 나서 느낀 것은 우리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왜 부모님들은 당시 많은 폭력을 보지 못한 것일까요? 저 역시 어릴 적에 수많은 폭력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제처럼 폭력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그려진 수많은 폭력도, 어린 시절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폭력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버렸죠. 다시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수없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서로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드디어 우리 어른들이 ‘폭력’의 존재를 눈치 채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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