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의 산물] 115. 판포리 엄수개와 너븐빌레의 산물

판포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배 형국'을 띄고 있다. 배의 배꼽 쯤에 해당되는 부분에 산물을 판 것이 배에 구멍이 뚫린 격이 되어 마을에 화를 자초케 됐다는 구전이 전해오는 '너른개' 또는 '널개'라 불린 마을이다. 그래서 판포리는 판(板)과 같이 넓은 포구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을 가졌다. 조선 초기에 ‘판을포’라 불리다가 조선조 말기에 판포(板浦)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는 한림읍에 속했지만 지금은 한림읍 경계 지점인 한경면에 편입됐다. 판포리 지경에 와서는 물이 귀했으며, 판포리에는 식수로 이용할 만한 산물이 많지가 않다. 그 중에서 엄수물은 판포리 신명동(엄수골) 바닷가 엄포라 했던 ‘엄수개’에서 사철 솟는 산물로 이 일대에서 제일 수질이 좋은 물로 알려져 있다.

엄수물(올레물)은 ‘파도가 험한 포구에서 나는 물’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물로 마을 올레에 있어 올레물이라고도 했다. 구전에 의하면 가뭄 시기, 이 산물에 물을 뜨러 왔다가 허벅을 깨뜨린 후 사람들이 물을 길러오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됐다고 한다. 이 산물은 마을의 식수뿐 아니라 어부들이 고된 피로를 풀어준 물로 산물터 돌담을 시멘트로 덧씌운 콘크리트 옹벽 형식의 산물 터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개조 전 엄수물. =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은 사랑에 대한 낙서가 있는 시멘트벽의 추억을 허물고 현대적인 노천 담수욕탕으로 개조하여 목욕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포구와 어울리지 않은 느낌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옛 추억을 살리려고 산물이 솟는 물통에 물길을 둘로 나눠 남녀 목욕탕으로 구분하여 놓았다. 이 산물은 바닷가에 있지만 간만의 차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고 이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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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한 엄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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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수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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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수물 내부(목욕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다행히도 옛 그대로의 모습을 한 산물들이 포구 동측에 있는 너븐빌레(넓은 너럭바위란 뜻의 제주어) 해안가에서 용출되고 있다. 이곳 빌레 세 곳에서 산물이 솟아나는데, 화상물, 트리물, 그리고 모쉬물이다. 그러나 만조 시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간만조의 물때를 잘 맞춰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화상물은 해녀탈의장이 있는 게스트하우스(해안관광휴게소) 앞 방파제의 용암경계에서 용출한다. 돌담으로 둘러싼 보호시설과 출입할 수 있는 계단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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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물(계단 밑).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물은 주로 해녀들이 몸을 씻기 위해 사용한 물이다. 왜 화상물이라 했는지 그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비유적으로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인지 유추해본다. 그러나 화상수는 정성을 비는 물인 정화수로 알려져 있다.

집안에 병이 나가나 불길한 일이 일어나면 어머니가 이른 새벽에 화상수를 떠다가 상에 올려 두 손 모아 빌고 빈 제수였다. 사찰에서 새벽 일찍 올리는 화향수(花香水)와 같다. 이런 물은 주민들은 매우 신성시 했다.(제주향토문화사전, 김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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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수 산물 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트리물은 화상물에서 동쪽으로 270m 떨어진 일주도로 버스정거장 뒤 바닷가에서 용출한다. 산물 이름에서 ‘트리’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간만조의 영향으로 용출 시간이 짧고 빨리 말라버리는 특징이 있어 이런 의미가 아닌가 한다.

이 산물은 주변의 빌레를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길을 내어 물이 흐름을 잡고, 빨래나 목욕 등을 할 수 있도록 자연과 조화롭게 바닥에 보호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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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물 .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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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모(마)쉬물은 트리물에서 동측 250m 떨어진 용암절리대 암반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솟는다. 마소용 식수로 사용했다. 모(마)쉬는 마소(馬牛)의 제주어로 이 산물은 아무런 꾸밈없이 용출되는 자연 그대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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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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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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