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광의 제주 산책] 9. 삶이 버거울 때 마음을 텅 비우자

며칠간 새벽이고 또는 늦은 밤이고 간간히 창밖에 비가 내렸다.

그때 마다 내 몸은 알아차렸다. 몸이 무겁거나 수술한 자리가 저리거나 했다. 인간에 태어나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또 수술을 한두 번을 하는 게 우리 삶이다. 

어떤 사람은 제왕절개수술 했던 자리가 비만 오면 가렵고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도 때로 힘들지만 몸의 상처는 더 힘들게 여기진다. 그것은 내가 끌고 다니던 모시고 다니던 형체로써 나를 받쳐주고 있는 몸이기 때문이다.

뭐든 대단하지 않는 게 없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또한 거룩한 일이고 기적이다. 어느 날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밤이 혹시 지구 와서 살던 인연과 마지막일수도 있어……. 그건 내 마음대로 못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야 그러니 지금 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점수를 준다면 후하게 줘야 해……. 그 이유는 나를 위해서야. 어린왕자의 꿈처럼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아침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동영상에 모 신부의 애교스런 설교에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으로 행복을 찾습니까. 행복을 정말 찾았나요?”

“부모님이나 형제나 돈 많은 사람이나 또는 예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학문적 명예나 교양이나 또는 본인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좋은 차나 이것이 정말 행복의 근원이라고 생각 합니까…….”

그러나 사실 그랬다. 그것은 삶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징검다리 였다. 돈을 싫어하는 것은 위선이다. 위(僞)란 거짓이란 뜻이고. 선(善)이란 착하다는 두 가지 뜻을 한 번에 쓰는 단어다.

거짓위에 착함이 함께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신기루를 쫏고 있는 나날은 아닐까. 좋은 차를 샀지만 어느 날 누군가 차를 고의로 훼손하고 도망쳤다면 갑자기, 짜증이 확 날것이다. 내 것에 대한 소중함이 침해받았고 남이 안 가진 행복감 훼손돼 버린 것처럼 기분이 복잡해질 것이다. 행복이란 변화무쌍하고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도 머뭇거렸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끝나고 나서 성취감과 자부심 그것이 어찌 보면 작은 행복감이 아닐까 하는.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어제는 교당에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를 위해 청소와 꽃꽂이를 하고 무더운 여름철이라 꽃을 담가놓은 물동이에 시원한 얼음도 넣어주고 하니 꽃들은 환한 듯 맑았다. 모든 게 정성이다.

류시화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말한다.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 안에 불순물을 태워버린다.

이 말은 모든 삶의 본질은 경험에서 일어나는 것이 희열이고 자부심이고 기쁨이며 행복이라 뜻. 인생은, 그 시절에 맞는 일을 하고 또 인연이 다하면 나그네처럼 떠나기도 하고 먼 고향을 찾아 나선 방랑자처럼 흔적이나 그림자가 조차 사라지는 일이다. 그일 마다 소중하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보면 깨우침도 깨달음도 멀리 있지 않다. 그래서 선이란 말도 오롯한 선(禪)이라고 표현한다.

삶이 버거울 때마다 생각나는 한 구절, 나의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 재주가 있는 사람은 남의 재주를 내가 빌려 쓰는 것이며, 또 하나의 더 큰 재주는 마음을 텅 비운 데서 나온다“ 했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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