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사는 연못 ‘용담’....한천교 돌난간에 용머리 없는 이유?
용이 사는 연못 ‘용담’....한천교 돌난간에 용머리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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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중심, 제주의 관문 ‘용담 도시재생’] ⑨ 용담 지명 유래

용(룡,龍)과 못(담,潭)이 합쳐진 명칭 '용담'. 그러나 용담이란 단어가 처음부터 지역을 대표하진 않았다고 한다.

2010년 국토지리정보원이 펴낸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먼 용담이란 명칭 이전에 어떤 용어들이 쓰였는지 상세하게 나열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독포(獨浦) ▲남사록에는 대독포(大獨浦)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대옹포(大瓮浦) ▲호구총수에는 대독포리(大獨浦里)로 표기했다. ▲제주읍지에도 대독포리(大獨浦里)라고 표기했는데 ……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대독포(大瀆浦) ▲제주삼읍전도,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에는 대독리(大獨里) ▲조선지형도에는 용연동(龍淵洞)으로 표기했다.

- 한국지명유래집 전라·제주편 

여기서 등장하는 ‘대독포리’에서 ‘대독(大獨)’은 ‘한더기’의 이두표기다. 대(大)는 ‘한(크다)’, 독(獨)은 ‘더기’ 혹은 ‘덕’을 의미하는데 ‘덕’은 고원(高原)의 평평한 땅을 말한다. 성종 12년(1481)을 보면 제주 서쪽 3리에는 한내(大川)가 있다“라는 기록도 남겨져 있다. 

‘용담동지’(2001)는 “예전부터 이 지역(용담동)을 사람들은 한두기, 한데리로 불러왔으나 이 또한 한더기가 바른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용연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용연 계곡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용연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용연야범의 풍경을 문화축제로 재현한 용연선상음악회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용담이란 명칭은 19세기부터 쓰였다는 분석이 다수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이 2018년 발표한 용담2동 유적(2779-15번지) 발굴조사 보고서를 보면 “용담(龍潭)이란 표기는 19세기 말부터 보인다…1896년 용담리(주민) 고운지가 관찰사 도주에게 1886년 12월에 그 처분을 바라면서 제출하려고 작성한 소지에 의하면 ‘용담리(龍潭里)’로 부르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용담은 용두 또는 용추·용연의 용(龍)과 취병담의 담(潭)을 결합한 표기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삼군호구가간총책(1904) ▲행정구역 통폐합(1914) ▲시제 실시(1955) 등 20세기 기록물에서도 용담을 확정해 사용하고, 그 뒤로 지금까지 공식 용어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용담동지는 용담이란 명칭은 한내 하류에 있는 명승지 '용연'에서 유래했다고 밝히면서, 지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전한다.

“처음에는 한독이라 하다가 마을이 커져 가자, 현재의 동·서한두기 지역을 통칭할 새로운 마을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큰 옹기처럼 생긴 갯가의 마을’이란 뜻으로 ‘대덕개·대독개’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대덕개, 대독개라는 마을 이름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는 이상하게도 액운이 겹쳤다. 살인 사건이 잦고, 용연 줄다리 동편 암벽에 있는 성제돌에서 투신 자살자가 속출했다. 이 무렵 육지에서 온 지관이, 대덕개·대독개라는 마을 이름 때문에 살인 사건이 많은 것이며, 앞으로도 마을이 부흥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용이 사는 못’이라는 뜻을 지는 용담으로 개명했다. 

- 용담동지

용담동에는 ‘용’이란 단어가 쓰이거나 ‘龍’이란 의미를 지녔던 흔적이 다수 남아있다.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는 용연, 용이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인 용두암을 비롯해 서문공설시장 정문 길 건너 맞은편에 위치한 비룡못, 용머리동산, 용화·원화·월라·동산마을을 합친 용화부락, 한천 하류에 있던 큰 물웅덩이 용수, 용두암 인근 바다밭인 용머리걸 등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 여러 지명이 전해진다. 

오랜 마을 역사 속에 서린 상상 속의 동물 ‘용’은 어느새 용담동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용담1동 한천교에는 아쉬운 사연도 등장한다.

45미터 길이의 한천교에는 좌우 돌난간에 기다란 용 조각이 장식돼 있는데, 자세히 보면 용의 몸통과 꼬리는 있고 무슨 영문인지 용머리는 없는 형상이다. 교량에 있어야 할 머리는 쌩뚱맞게 한천 하류를 따라 450m 가량 떨어진 용한로 소공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머리와 몸통이 나뉜 서글픈(?) 용 조각의 사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의소리
용의 머리는 없고 몸통과 꼬리만 돌난간에 새겨져 있는 한천교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용의 머리는 없고 몸통과 꼬리만 돌난간에 새겨져 있는 한천교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한천교에 있어야 할 용머리 조각은 용한로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제주의소리

2009년 3월 용담1동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지도자용담1동협의회 등 주민들과 주민센터가 한천교 용 조각을 완성했지만, 인근 주민 몇몇이 ‘용 얼굴이 무섭다’는 취지의 민원을 제기했다. 어쩔 수 없이 몸통은 다리에 그대로 두고, 머리만 떼서 소공원 입구에 가져다 놓게 된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10년 넘게 방치된 한천교 용은 최근 원래대로 완성하자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개편될 방침이다. 기존 소공원의 용머리 조각은 일부분이 훼손돼 그대로 쓰기 어려워, 용머리만 새로 제작해 다리 중앙에서 마주보게 보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머리 없이 한천교를 지킨 용도 10여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을지 자못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한천교 모습(위), 용머리가 추가된 한천교 예상도. ⓒ제주의소리
현재 한천교 모습(위), 용머리가 추가된 한천교 예상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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