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人터뷰] 제주대 미래융합대학 실버케어복지학과 1학년 이정오 씨 “꿈의 노인유치원 만들겠다”

“소외되고 나약한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유치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는다는 요양원이 즐거운 곳으로 인식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130학점, 대학교 공부가 쉽진 않지만 꿈의 노인유치원을 위해 젊은 학생들 못지않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듣느라 전공 강의실과 교양 강의실을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고 학과 친구들과 모여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기도 하는 대학 생활. 70의 나이에 캠퍼스 청춘을 만끽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대학교에 입학한 뒤 전공과 교양을 넘나드는 폭넓은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는 이정오(70) 씨가 주인공이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가난한 생활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를 다니며 근검절약한 생활로 치열하게 살다보니 어느덧 나이 칠순. 서울 강남에 거주할만큼 경제적으로 살만해진 청년 이정오 씨에게 2021년은 늦깎이 신입생으로 두번째 스무살을 맞이한 해다. 

청년 이정오 씨를 [제주의소리]가 만나봤다. 대학 기숙사와 서울을 오가며 대학생활 1년을 보낸 그의 표정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한 진짜 스무살 새내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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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실버케어복지학과에 입학한 이정오 씨. 그는 꿈의 노인유치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70년 만에 대학교에 진학해 청춘을 즐기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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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 학우들 가운데 최고령이라는 그는 다른 학우들이 과제물을 출력할 일이 있으면 일찍 과방에 내려와 대신 출력해주는 등 머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단다. ⓒ제주의소리

이 씨는 인터뷰 중 대학 생활 이야기를 할 때면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늦깎이 대학 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에게 70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취재 기자와 질문을 주고받을 때는 20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 설렘 가득한 모습으로 수업받는 과목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같은 과 학우들 가운데 최고령이라는 그는 요즘 ‘머슴’ 생활을 하고 있단다. 과제물을 출력할 일이 있으면 일찍 과방에 내려와 다른 사람들 것도 출력해 전해주고 수업에 필요한 자료도 챙겨준다는 것. 

“1년 동안 수업 듣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어요. 수업이 즐겁다고 하니 교수님께서는 다음 학기부터 괴롭히겠다고 농담도 하시더라고요. 130학점 중에 계절학기도 열심히 들어서 올해 총 44학점을 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업 중에 뭐가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제주해녀와 4.3, 문학스토리텔링 등 교양과목이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특히 제주4.3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제주4.3은 그가 어린 시절 서울에서 배웠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단다. 제주에서 처음 4.3의 진실을 마주한 그는 희생자의 죽음, 그 본질에 주목했고 앞으로 제주대를 다니며 도내 곳곳의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추모하겠노라 다짐도 했다.

그는 “상대를 죽여야 산다는 이론은 맞지않다. 조선 500년 시대부터 내려온 당파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좌우의 대립이나 남북 분단 없이 한민족으로써 단합된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민족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의 문학에는 우울함이 많이 배어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유머스러움은 잘 찾아볼 수 없고 우울하거나 뭉클한 문학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 그렇게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함과 동시에 제주를 알아가고 있었다. 

수업이 어렵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는 “외우는 과목을 싫어해 어릴 때부터 수학과 물리, 화학 같은 수업들을 잘했다”며 “그래서 외우는 시험이 많은 사회복지 과목들이 어렵긴 한데 한달 전부터 공부하고 외워서 남들보다 답안지도 많이 쓰곤 한다”고 웃어보였다.

이어 교수님이 시험 범위를 정해줘 놓고 다른 곳에서 시험을 내기도 하고, 시험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과목들도 있어 난감하다며 영락없는 대학생 모습으로 투정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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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신입생이 앞으로 들어야 할 과목은 쌓인 책처럼 많지만 그는 수업이 즐겁다며 취재기자와 인터뷰 내내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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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오 씨가 그린 작품 '행복'. ⓒ제주의소리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 했다는 그는 학업의 즐거움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려고 시험을 보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돈이 없어 결국 진학하지 못했던 아픔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모든 일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이제껏 자신이 대학에 가지 못한 아쉬움으로 조카들과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제주대 미래융합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도 같은 아내와 딸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아내가 실버케어복지를 공부한 뒤 소외되고 어려운 노인들을 돕는 일을 함께하자고 한 것.

부부는 돈을 벌기 위해 요양원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노인유치원’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치매 노인들이 행복한 요양원을 만들어보자는 꿈이다.

재산을 물려줘야 할 자식들이 눈에 밟혔지만, 부모님을 빼닮은 그들은 유산을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 원하시는 대로 다 쓰고 가시라고 말했다.

평소 다니는 교회에서 봉사활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한 부부는 이 씨의 제주대 졸업과 동시에 꿈을 펼쳐나갈 계획을 세웠다. 그의 아내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 내년 2월에 졸업장을 받게 됐다.

그는 “나중에 요양원을 인수해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을 보내러 오는 곳이 아니라 마음 편히 지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곳을 만들어보겠다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며 “꿈의 노인유치원을 위해 4년간 열정으로 다니겠다. 제주대는 유일한 친구이자 영원한 꿈의 돌파구”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와 수업이 있는 날이면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정오 씨. 그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기 위해 추상화를 그리기도 한다. 환희의 웃음을 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꿈을 그려나가는 그의 앞날은 여전히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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